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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할 고정관념 만드는 애니메이션, 달라질 수 있을까“청소·요리는 여자가” 만화에서 봤어요
박성조 기자 | 승인2017.09.26 15:05

“요리는 여자들이 잘하잖아” “남자가 왜 이렇게 힘이 없냐?” 여성과 남성의 역할 경계가 무너지는 사회인데도 여전히 ‘남자답다’ ‘여성스럽다’는 말들이 흔하게 쓰인다. 넘어서야 할 성역할의 장벽은 어린 아이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에서부터 설정된다. 벽이 더 높아지기 전에 그릇된 ‘벽돌 쌓기’를 멈춰야 한다.

 

 

“아빠 펭귄이 망치질을 한다, 뚝딱이 뚝딱 뚝딱이 뚝딱. 엄마 펭귄이 빨래를 한다, 쓱싹이 쓱싹 쓱싹이 쓱싹. 오빠 펭귄이 공부를 한다, ABCD ABCD. 언니 펭귄이 화장을 한다, 뚝딱이 오호 뚜딱이 오호”

유치원에서 불리는 손유희(손가락을 움직이며 배우는 놀이교육) 노래 가사다. ‘펭귄’을 손가락이나 다른 동물로 바꿔서 부르기도 하면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가사가 아빠와 오빠, 그리고 엄마와 언니의 역할을 고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노래를 배우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요리는 공업은 남성의 몫,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이해하게 된다. 또 남성이 공부를 하는 동안 여성은 화장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다.

이 문제를 지적하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별을 바꿔 부르는 놀이를 병행하는 유치원들도 있지만, 기존 가사를 그대로 유지하며 가르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성평등 의식 수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진행되는 셈이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남녀평등 및 여성차별 문제에 대한 인식조사’(2016) 중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성고정관념 유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절반 이상이 성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는 74%에 이르고, 20대도 58.4%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고연령층에서 고정관념이 견고한 것은 이제까지의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나 20대에서도 해소되지 않는 것은 교육의 문제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요리만 잘하는 여성?
뽀로로와 맥스터핀스의 차이
 

유아 애니메이션은 사회를 배워나가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TV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쉽게 자주 접하는 만큼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표본이 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대표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뽀롱뽀롱 뽀로로’는 성역할 표현과 관련해 오랫동안 비판받아 왔다.

뽀로로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중 여성은 루피와 패티, 둘 뿐이다. 단순히 수적으로도 남성이 두 배(4명)다. ‘통통이’와 ‘뚜뚜’ 등 비중이 높은 조연까지 포함하면 성비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캐릭터에 특징에서 생긴다. 분홍색 치마를 입은 루피는 요리가 특기다. 에피소드들의 스토리로 보면 다른 분야는 잘하는 것이 없다. 운동은 마법의 힘을 빌리고 싶어할 정도로 못하고 리더십은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줍음 많은 성격이 부각될 때가 많다. 루피가 캐릭터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요리를 할 때뿐이다.

패티는 뽀로로 시리즈가 성역할과 관련된 비판에서 조금 벗어나는 유일한 캐릭터다. 운동을 잘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그런 패티를 특이하고 놀랍게 바라본다는 설정상 ‘특이한 여성’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다른 캐릭터들이 두 여성 캐릭터 중에 패티를 ‘예뻐서’ 좋아한다는 설정까지 나온다. 여성의 운동능력이 장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국산 애니메이션 ‘냉장고 나라 코코몽’에서 달걀을 캐릭터화 한 ‘아로미’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자신을 꾸미고 거울을 자주 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주인공인 코코몽이 발명을 좋아하고 완력을 가진 로봇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지상파에서 방송되지 않지만 어린이들이 자주 보는 디즈니채널은 성역할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디즈니채널에서 방영되는 인기 시리즈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의 주인공은 흑인 여자아이다. 엄마는 전문의, 아빠는 요리사로 설정되어 있다. 장난감을 고치는 의사인 맥스터핀스는 장난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때 장난감들의 성별은 불분명하게 그려진다. 대신 ‘덜렁대는 용’ ‘겁 많은 눈사람’ ‘지혜로운 간호사’ 등 기존 동화의 공식을 깨는 역발상 캐릭터들로 채웠다. 맥스터핀스의 능력은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모계를 따라 이어지는 것임을 명확히 하기도 한다.

맥스터핀스의 진보적인 설정은 이뿐아니다. 그가 고쳐주는 장난감들은 심한 곱슬머리로 놀림을 받는 인형부터 처음부터 팔이 없던 원숭이(장애), 엄마가 둘인 아이(성소수자)까지 다양한데 이를 통해 소수자들을 폭넓게 표현한다. 각 에피소드는 그들과 화합하고 어울려 지내는 메시지를 전하며 끝난다.

달라진 디즈니…
마녀 아닌 ‘강력한 여왕’의 시대
 

여성이 부각되는 또 다른 디즈니 시리즈로는 ‘아발로 왕국의 엘레나’를 들 수 있다. 십대 소녀가 여왕으로 왕국을 다스린다는 내용인데, 이 여왕은 기존의 공주서사처럼 왕자님을 만나서 도움을 받거나 아름다운 성품만으로 왕권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표범을 타고 맹렬히 싸우고,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포섭하는 여왕이다. 배경을 설명하는 극장판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 : 엘레나와 비밀의 아발로 왕국’에서는 엘레나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마녀가 차지한 왕권을 민중봉기로 되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디즈니는 오랫동안 ‘공주 스토리’로 남성에 의해 구원받는 여성을 다뤄왔다. 그러나 시대에 맞춰 세계관을 수정하고 이전의 설정들을 바로잡는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영화 ‘라이온 킹’의 외전격인 TV시리즈물 ‘라이온 수호대’는 심바와 날라의 자녀들 이야기를 다루는데, 주인공인 아들 카이온 대신 누나 키아라가 여왕으로 왕위 계승자가 된다. 카이온은 여왕의 계승권을 인정하고 수호대로 활약한다. 디즈니의 대표작 ‘미키마우스’ 시리즈에서 과거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던 미니와 데이지는 최근작인 ‘미키의 카레이서클럽’에서 ‘해피 헬퍼’라는 해결사팀으로 활약한다.

미국 사회운동가 토니 포터는 책 ‘맨박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 규범인 맨박스를 통해 소년들은 ‘진짜’ 남자란 이럿 것이라고 배운다. 맨박스의 가르침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배운 대로 행동하는 이들 대부분은 사실 평범하고 착한 남성일 확률이 높다.” 어릴 때부터 견고하게 형성된 젠더 박스(Gender Box)는 본래의 성품과 관계없이 성역할 고정관념대로 행동하게 만든다.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성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다. 안전교육 애니메이션 ‘강철소방대 파이어로보’에 등장하는 세 명의 특수소방팀 로봇들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로봇을 여성 캐릭터가 조종한다. 이전까지 액션물에서 여성캐릭터의 역할이 늘씬한 몸매에 날렵함을 무기로 하는 것에 치중됐던 데에 비하면 큰 변화다. 또 숲속 동물들의 모험을 다룬 ‘두다다쿵’ 시리즈에서는 인간 여성 캐릭터인 ‘다다’가 도전적이고 지혜로운 탐험가로 등장해 참신한 모습을 보였다.

아빠 펭귄도 요리를 하고 엄마 펭귄도 망치질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역할은 성별로 정해지지 않는다. 아빠가 가사를 담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는 딸이 더 성공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 모습을 본 딸이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지 않으면서 유리천장에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학자 크리스토퍼 벨은 TED 강연에서 영화 ‘어벤져스’ 캐릭터 상품에 ‘블랙 위도우’와 같은 여성 히어로가 빠져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렇다 할 여성 히어로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우리 현실에서는 ‘선진국의 비판’마저 부럽게 느껴진다. 갈 길이 멀다.


박성조 기자  parkoon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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