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했다고 … 성범죄자가 ‘선처’ 받은 5가지 이유? ... 형량 강화 필요
  • 신성아 기자
  • 승인 2017.06.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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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의 첫 정식재판이 열린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는 첫 재판을 방청하려는 시민들(사진 왼쪽)과 같은 시각 태극기를 들고 구속 철회 구호를 외치는 지지자들의 모습으로 대조를 이뤘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부터 2008년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성폭행했던 ‘조두순 사건’과 2011년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광주 인화학교 장애인 성폭력 사건까지 잔혹한 성폭력 사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죄질에 비해 처벌이 가볍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새 양형 기준을 만들었으나,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솜방망이 처벌’이 잇따르면서 ‘엄벌 없는 엄벌주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2012년 양형 기준이 강화됐음에도 2014년 성범죄 집행유예 선고율은 66.5%에 달했다(김혜정 영남대 산학협력단 연구원 ‘양형기준제의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 2012년 43.6%, 2013년 52.3%로 집행유예 선고율은 오히려 증가추세다.

법원은 원칙에 따라 선고를 했다고 하지만, 양형 사유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도 있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해 임신까지 했는데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가해자가 대학생이라 형량을 깎고, 초범이라 줄여주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감형된다. 이해하기 힘든 법원의 갖가지 ‘선처’의 이유를 들여다봤다.

1. 세 남자가 공모해 성폭행했으나 피해자와 합의해서

신안 섬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성폭행한 학부모 3명이 항소심에서 최대 8년형을 감형 받았다. 지난해 5월 전남 신안군의 한 섬마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이른바 ‘섬마을 교사 성폭력 사건’으로 불리며 논란이 됐다.

학부모들이 서로 공모해 초등학교 관사에 머무는 여성 교사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은 사회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가해자 3명은 항소심에서 모두 감형 받았다. ‘피해자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선처를 원한다’는 것이 감형 이유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처벌불원’은 대표적인 양형 감경 사유 중 하나다.

하지만 아직도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에 피해자는 일이 더 이상 커지기 전에 합의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처벌불원을 노리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2차 피해도 야기하기도 한다.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노경필)는 지난달 20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학부모 김모(39)·이모(35)·박모(50)씨 등 3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각각 징역 10년, 8년, 7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은 그대로 유지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징역 18년, 13년, 12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이들에게 각각 징역 25년, 22년, 17년을 구형한 것과 비교하면 법원 판결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거를 종합하면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판단은 모두 정당하다”며 “다만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 모두와 합의하고 피해자들이 선처를 희망한 점을 고려했다”고밝혔다.

2. 여성 183명의 몰카, 500장 찍었지만 학생이고 우발적 범행이니까

여성 183명의 치마 속을 카메라로 몰래 찍은 ‘몰카범’이 과연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을까. 검찰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

2015년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던 김모(당시 27세)씨는 2014년 1월부터 8개월간 여성 183명의 치마 속을 500여차례 몰래 촬영한 혐의로 검거됐다. 김씨를 신고한 것은 그의 여자친구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법정으로도 가지 못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입건된 김씨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성폭력 사범 재발방지 교육 프로그램 이수 조건부 불기소 처분만을 내렸다.

김씨의 범죄가 우발적이었고 학생 신분이며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183명에 이르며 500장이 넘는 몰카 사진이 증거로 나온 상황에서 우발적 범죄라는 검찰의 판단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에선 가해자가 벌금형 이상의 선고를 받을 시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제적 처리될 수 있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의전원생을 몰카범으로 만들면 의사라는 보장된 앞날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온정주의 속에서 몰카 성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2412건에서 2015년 7623건으로 3배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 범죄 기소율은 2012년 69.7%에서 2015년 7월 32.1%로 감소했다. 몰카 범죄는 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처벌 받은 경우는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3. 속옷 바람에 허벅지 마사지 시켰지만 폭행·협박 없어서

회사 사장이 팬티만 입고 갓 입사한 20대 여성 직원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켰다. 직원에게 다리 위쪽을 만지라고 했고 여성의 허벅지에 자신의 다리를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강제추행’이 아니라며 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려면 폭행이나 협박 등이 있어야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여직원이 사장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으며 허벅지를 다른 사람 다리 위에 올려놓은 것을 추행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2015년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강제추행혐의로 기소된 업체 사장 B 씨에 대해 강제추행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13년 한 업체에 갓 입사한 20대 여성 A씨는 사장 B씨의 호출을 받았다. B씨는 사무실에 들어선 A씨에게 손님이 올 수도 있으니 문을 잠그라고 한 뒤 더우니 반바지로 갈아입어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앉았다.

이후 사장은 고스톱을 쳐서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자며 A씨를 자신의 옆에 앉게 했다. 내기에서 이긴 사장은 A씨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켰다. A씨가 종아리를 주물러 주자 B사장은 오른쪽 다리를 A씨의 허벅지 위에 올리고는 “더 위로, 다른 곳도 주물러라”라고 요구했다. B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강의 80시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B씨가 다리를 A씨의 허벅지에 올리고, 다른 곳도 만지라고 말한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면서도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강제추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형법 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다른 사람을 추행한 경우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다리를 B씨의 허벅지에 얹은 것만으로는 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B씨가 사장을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폭행 또는 협박의 수준이 약하더라도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 혹은 혐오감을 느끼면 성추행이 맞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상당하다. 게다가 갓 입사한 여성직원이 단 둘 뿐인 사무실에서 나이 지긋한 남성사장의 요구를 과연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4. 장애인 성폭행했으나 후회하고, 따뜻한 물로 씻겨 데려다 줬기에

10대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50대 남성은 “깊이 반성했다”는 이유로 감형 받고 풀려난 사례도 있다.

2012년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모(54)씨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 보호관찰과 함께 4년간 정보공개와 240시간의 사회봉사 및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을 명령했다.

이씨는 경기 가평군 길가에서 지적장애 여성 10대 A씨를 자신의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가 내린 징역 3년도 석연치 않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아예 집행유예를 선고해 이씨를 그대로 풀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나이와 장애 정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후 곧바로 후회하고 피해자에 대한 연민 등으로 피해자를 부둥켜안고 울고 따뜻한 물로 씻겨준 뒤 집 주변까지 데려다 준 것으로 보여 범행 경위 등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어머니가 이씨 부인의 헌신과 노력을 보고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까지 제출했고, 구금과 재판 과정에서 이씨가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속죄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5. 아내 친구 강간했지만 초범에, 피해자에게 용서받았으니

아내의 친구를 강간해도 초범에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으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기도 한다. 강간죄 양형 기준을 보면 기본 형량은 징역 2년 6월∼5년이다. 참작할 요소가 있으면 1년 6월∼3년으로 감경할 수 있고, 죄질이 나쁘면 4년∼7년까지 형량을 주도록 정해놨다.

판사들은 이 양형기준에 따라 피고인들의 형량을 정한다. 감경해줄 수 있다고 쳐도 강간 사실이 입증됐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2016년 5월 서울고법 춘천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재호)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A씨(32)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 160시간의 사회봉사와 8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A씨는 강원 원주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 B씨와 아내의 친구 C씨와 함께 소주 3~4명을 나눠 마셨다. 아내와 자던 안방에서 A씨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자던 A씨는 잠에서 깬 후 아내의 친구 C씨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작은방에 들어가 C씨를 강간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이 강간하고 상해를 입게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면서도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피해자에게 용서받은 점, 우발적인 범행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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