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한국화단의 거목, 송암(松巖) 강종래 화백
  • 박미경
  • 승인 2022.03.2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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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초월한 독창적 예술세계 구축
송암(松巖) 강종래 화백
송암(松巖) 강종래 화백

 

척박한 지역 화단 여수에서 독창성을 확보하면서
대한민국 미술계의 큰 나무가 된 송암 강종래 화백.
한국화의 전통적인 화론(畵論)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 의지로
한국적인 풍경과 산물을 토대로 미적 관심을 솔직하게 표현해낸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강 화백은 전통 회화의 불모지였던 여수 미술계를 오늘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평생 여수라는 향토 화단을 지키면서 지역과 중앙의 매개 역할을 자처한 그는 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근면성으로 인해 후배 작가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물론 큰 자극을 주고 있다.
미술을 향한 그의 60여 년의 열정은 대한민국 미술계의 거목으로
그가 펼쳐낸 넓은 그늘은 대한민국 미술계에 큰 발자취로 남아 있다.


화가의 길, 예술 미학의 길
전통적 화론(畵論)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
송암 강종래 화백은 1947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다. 여수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여수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송암이 그림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 고교 입학 당시 미술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할 정도로 그림에 두각을 보였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30대 초반까지는 주로 수채화를 그렸다.

이후 여수가 한국화의 불모지라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화가로서 여수의 명예회복을 위해 한국화로 전환했다.

한편 강 화백은 한국화라는 외형적 틀의 고착에서 과감히 벗어나 한국화 작가라기보다는 회화작가로서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서양화적 사실주의에 근거하여 분석적으로 대상을 재현해냈고, 특히 전통적인 재료인 수묵담채나 진채로 표출해냄으로써 독특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지난 1981년 제39회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 첫 출품한 작품 꽃게 그림 『해변의 정』이 특선(그 당시는 대상이 없고 특선이 최고의 상)의 영예를 얻었다. 수년간의 실험정신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후 송암은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고(故) 천경자 화백의 칭찬과 조언을 통해 채색화에 더욱 매진했다.

이후 송암은 ‘꽃게 화가’라 불릴 만큼 유난히 꽃게를 즐겨 그렸다. 바닷가 자갈밭 물속에 사는 꽃게들을 사실적으로 담백하게 작품에 담아냈다. 자연주의적 접근방식은 과장 없는 담담하면서도 진실한 묘사를 통해 지역화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한국 리얼리즘의 한 지평을 연 극사실주의 회화는 물론 추상적 절대미를 보여주는 비구상 회화에 이르기까지, 송암의 작품세계는 동시대의 미학적 관념을 선도하기 위한 자기성찰의 과정이었다.

동·서양화를 접목한 한국화의
새로운 장르 개척
송암은 수묵지향의 한국화의 틀을 깨고 채색화의 한 장르를 개척한 화백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3년부터는 지역에 있는 해변의 소재, 갯냄새 나는 소재 등 생명의 소재를 그려오고 있다.

특히 나이프로 밑 작업을 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 오브제를 활용한 캔버스의 변용을 추구하면서 기존의 평면을 뛰어넘은 마티에르 작업을 하는 등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화의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또한 송암의 작품은 한국화와 서양화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설화, 자연의 신비, 겨울 들판, 눈 속의 동백, 생명, 환희 등 형이상학적인 선과 색의 변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 체험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가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송암이 만난 자연은 구상과 비구상을 연결 짓는 통로이다. 자연을 통해 현상과 초월을 함께 아우르면서, 왜 우리의 삶이 자연 속에서 가능하며, 왜 자연이 우리 삶의 영원한 원형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괴리를 묵인한 채 살아가는 인간을 자연 가까이에 세우려는 송암의 진술법이다.

◇ 자연과 생명에 관한 원형적 포즈
21세기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관리하고 소비하는 시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도 알고 보면 모두가 이미지(시뮬라크르)일 뿐이다. 진짜 세계는 숨어있고, 그 숨어있는 진짜 세계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생각 혁명이다. 그래서 송암은 원형적 가치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계승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아가 대상을 어떻게 읽고 이미지화 할 것인가를 고민해온 작가다.

따라서 그의 미술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하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이는 구상이며, 다른 하나는 풍경 속에 감추어진 삶의 의미 체험을 발견해 냄으로써 한국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비구상이다.

이 둘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작가의 대상 체험을 재현해내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그림은 구상화이면서 초현실적인 비구상인 셈이다. 꽃게를 통해 채색화의 개념을 모색했고, 바다와 파도를 통해 포용과 힘, 무한한 삶의 동력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다면, 후자는 겨울 동백과 설경 혹은 선과 색의 무한한 변용을 통해 원형적 생명에 대한 탐색, 여수의 섬을 통해 고독과 그리움을 미니멀리즘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유롭고 꾸밈없는 사유는 느낌이 좋을 때 만날 수 있는 순간의 진심이다. 이 점에서 송암의 회화는 여행이 아니라 그 속에 안겨있는 삶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암행으로 이해된다.

◇ 송암의 여수 그리고 인연의 미학
송암은 한국화의 불모지인 여수에서 60여 년 넘게 터를 닦고,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냈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라는 설움을 견뎌내고 대한민국의 거목이 되기까지는 여수의 바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여수에 살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영광이고, 또 여기는 수많은 작품을 할 수 있는 소재가 많다. 그래서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는 타 지역의 작가들도 여수 출신이라고 하면 다르게 본다. 작품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사실 여수 작가들의 위상이 달라지기까지는 송암 강종래 화백의 영향력이 컸다. 그는 여수작가들이 그림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작품의 소재가 독특했고 지리적인 특성도 있을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송암의 예술세계를 논할 때 언제나 따라다닌 것은 고향인 ‘여수’와 ‘인연’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60여 년간 여수에서 작업을 쉬지 않았던 송암의 생활, 사고, 심미의 전면에는 여수의 바다가 있다. ‘설화’, ‘해변’ 시리즈는 바로 여수의 풍경이자 송암이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다른 하나는 ‘인연’이다. 굳이 ‘상생’이라는 말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의 작업에는 자연의 우연한 형태, 인간과 인간의 사이, 모든 것으로부터 이어지는 인연에 대한 남다른 신조가 있다. 이러한 연유는 그의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50년 동안 끊임없는 발상과 전환 시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최고의 항구도시 여수에서 나고 자란 송암 강종래 화백. 그는 가장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열정을 작품세계를 통해 밝혀나가고 있다.

여수 최초 한국화 창시자로 독창적인 채색화 등으로 한국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동양화와 서양화, 구상과 추상, 풍경과 정물 등 고른 기량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암은 3남 2녀의 장남으로 형제간에 우애가 남다르다.

한국화단의 큰 거목인 그와 함께 동백꽃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강종열 화백과 여수 스파랜드 강종철 대표 그리고 유명한 한복디자이너인 여동생 강종순과 한국화를 전공한 여동생 강복순이 있다.

송암은 “화가들끼리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며 우애가 깊은 형제들은 서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제안하는 등 각 분야에 전문가로 활동 중인 형제들은 서로 많은 힘이 됐다고 한다.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지역예술계의 원로로서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송암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송암은 앞으로도 작업을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여수의 바다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의 예술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화폭에 색으로 풀어내고,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 화단의 거장 송암 강종래 화백의 활동에 앞으로도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