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천공스승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 하태곤 기자
  • 승인 2021.10.08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익멘토, 이 시대 진정한 메시아

 

 

우주 대자연의 법칙과 원리로 2025년은 남북통일의 기운이 도래할 것이라고 담대하게 주장하는 시대의 선각자가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정법시대 천공스승으로, 스승은 한때, 세속의 거러지로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만행(萬行)에 대항하는 납자(衲子)이자 거사였다. 산을 누비고, 산을 품었던 출가의 거러지이기도 했고, 그렇게 생활하기를 십수 년, 운수납자의 폼나는 수행도 아니고, 그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 풍랑의 파도를 헤치며,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그 과정이 곧 깨달음의 수행이었던가!
불교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53선지식이 등장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53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먼 길을 떠나는 선재동자에게 한가지 당부한 것은 오로지 ‘평상심’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삼라의 만상이 그대의 스승이니, 지위와 성별, 높고 낮음을 구분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문수보살의 채찍처럼, 당시 고아로 버림받은 젊은 거러지 천공은 이 또한, 분별의 사심이라 여기며, 밤과 낮을 넘나들며, 알 수 없는 화현에 끌려,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유·불·선의 경계 따위는 이미 거러지 생활로 타파했고, 거러지로라도 잡고자 했던 어린 천공의 화두 또한 허공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다시 또 십수 년, 어느 날 천부경 81자를 가슴에 품게 되니, 비로서 화경으로 세상이 보이고, 시대의 큰 스승으로 이 땅에 나투게 된다. 장엄한 신의 역사이자, 위대한 신인의 탄생이었다.

 

“나 같은 중이 무슨 인터뷰 할 자격이 있다고..”
“지나치시는 길에 편히 들려 차나 한 잔 하시고 가시지요!”

오랜 지인을 통해 범부의 문안을 받은 스님은 춘천에 주석하고 있는 모 스님이었다. 뼈대 있는 집안의 건아로 태어났으나, 세상사 부질없음을 깨닫고, 어린 나이에 동진 출가나 다름없는 절반의 동자승을 거쳐, 정통 교계 종단의 선승(禪僧)으로 한때는 숱한 안거를 성만하며, 절개가 충만했던 전형적인 운수납자(雲水衲子)였다. 익명을 요구한 종단 관계자의 스님에 대한 평이 그랬다. 내심 존경심이 일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숱한 화두를 참관했던 스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과정은 심오했고 각별하기까지 했다.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불법(佛法)이 그래서 좋던가!
춘천 스님과의 인연은 범부가 시대의 큰 스승, 천공스승을 친견할 수 있었던 하늘이 준 기회였다. 범부를 반갑게 맞이해 준, 스님의 첫인상이 범부에게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스님은 동자승의 맑은 눈을 지니고 있었고, 탁한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수행자로 청정 비구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직 수행과 기도로 정진했을 터, 절밥 30년의 범부도 그 정도쯤은 헤아릴 수 있는 내공이 있었기에 대충 짐작은 갔다. 스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교감에 소통의 폭도 넓혀졌다.
바로 그때였다, 스님에게 친견의 예를 갖추고, 담소를 이어갈 때, 문득 벽에 걸린 어느 도인의 초상화가 범부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하얀 두루마기를 걸친 영락없는 도인의 모습이 해탈의 경계에 든 대선사(大禪師)의 모습이랄까! 궁금증은 점차 호기심으로 변했고, 저 도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어디서 많이 본듯한 도인이긴 한데, 생각이 가물가물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천공스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내 범부의 몸과 마음은 천공스승을 향하게 된다.

천부경을 가슴에 품은 이 시대 진정한 홍익의 멘토
시대의 스승이기 이전에 깨달음의 화현(化現)이자 대선사(大禪師)

미개한 범부가 굳이 스승을 신격화하고 미화할 이유가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지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스승은 곧 깨달음의 화현이자 신인이고 대선사였다. 걸림이 있는 화두 따위는 필요도 없고, 단지 혜안의 지혜로 유. 불. 선의 경계를 타파한 신인의 모습, 그것이 스승에 대한 예우이자 정답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범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 확신에 대한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굳이 격을 갖추자면 스승의 품새에는 반야의 지혜가 묻어 있었고, 수처작주(隨處作主)로 입처개진(立處皆眞)하는 전사의 용맹함까지 깃들어 있었다.
스승이 실천하는 지족(知足)의 삶과 추상과도 같은 수행가풍은 또한 어떤가!
그 청초함이 절개로 굳어 있는 듯, 절로 고개가 숙연해질 뿐이다. 세월을 돌려 용맹정진했던 스승의 어린 시절은 대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공스승은 태어나 4세 때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부산의 쪽방촌 감천동 고아원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버림을 받았으니, 생활이 유연할 리도 만무했다. 스승은 불과 6살 때부터 노동력을 팔아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스승의 오랜 캐릭터와도 같은 거러지생활은 그렇게 십수 년 동안 점차 일상이 되어갔다.

천공스승의 배움은 또한 어떤가!
초등학교 2학년이 스승의 최종 학력이다. 다행히(?) 싸움은 잘해 소년기에는 밴텀급의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에, 태권도는 2단, 당수는 3단으로 폼이 좀 나긴 했었지만, 골목의 어깨형들 4대 1의 싸움에서는 쪽수에 밀려 얻어터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비록 객기는 용감했지만, 돌아온 건 대학병원에서의 21일 동안의 혼수상태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스승은 볼품없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속세에서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스승에게 그리 만만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배신과 배반의 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결국 스승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승과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극단적 선택이야말로 스승에게는 유일한 탈출구라 믿고, 죽기 전 이 땅의 산하를 한번 둘러보고 가고자 만난 어떤 보살과의 인연으로 신불산 홍류폭포까지 가게 되고 보살과의 인연은 마침내 스승의 수행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지장보살의 화현이었을까? 보살이 냉혹하게 말하기를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 어차피 죽을 거라면, 100일간만 기도를 한 후에 죽어도 늦지 않으니, 일단은 죽음을 뒤로 미루시지요”
보살의 만류에 스승은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는 그때 비로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알고 나서 죽겠다는 생각에 죽음을 100일간 미루고, 그때부터 스승은 신불산에서 피골이 상쟁하는 수행으로 득도를 향해, 해탈의 긴 항해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스승은 천지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보내기를 또한 십수 년, 스승은 인간의 숱한 고뇌와 번뇌의 망상에 대항하며,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면서 묵언과 고난의 수행으로 산 생활을 하게 되고, 산신에게 올린 좋은 음식들은 먹지 않고 귀신들을 주기 위해 버린다는 명태 대가리 등 버려진 음식들을 주워 먹으면서 세상의 모순과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묵언 수행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고해성사의 참회 정진을 통해 회광반조(回光返照)를 거듭하니, 비로서 그것이 수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의 진리를 통해 터득하게 된다. 비로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천부경을 가슴에 품은 이 시대 진정한 홍익의 멘토
시대의 스승이기 이전에 깨달음의 화현(化現)이자 대선사(大禪師)

미개한 범부가 굳이 스승을 신격화하고 미화할 이유가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지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스승은 곧 깨달음의 화현이자 신인이고 대선사였다. 걸림이 있는 화두 따위는 필요도 없고, 단지 혜안의 지혜로 유. 불. 선의 경계를 타파한 신인의 모습, 그것이 스승에 대한 예우이자 정답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범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 확신에 대한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굳이 격을 갖추자면 스승의 품새에는 반야의 지혜가 묻어 있었고, 수처작주(隨處作主)로 입처개진(立處皆眞)하는 전사의 용맹함까지 깃들어 있었다.
스승이 실천하는 지족(知足)의 삶과 추상과도 같은 수행가풍은 또한 어떤가!
그 청초함이 절개로 굳어 있는 듯, 절로 고개가 숙연해질 뿐이다. 세월을 돌려 용맹정진했던 스승의 어린 시절은 대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공스승은 태어나 4세 때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부산의 쪽방촌 감천동 고아원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버림을 받았으니, 생활이 유연할 리도 만무했다. 스승은 불과 6살 때부터 노동력을 팔아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스승의 오랜 캐릭터와도 같은 거러지생활은 그렇게 십수 년 동안 점차 일상이 되어갔다.

천공스승의 배움은 또한 어떤가!
초등학교 2학년이 스승의 최종 학력이다. 다행히(?) 싸움은 잘해 소년기에는 밴텀급의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에, 태권도는 2단, 당수는 3단으로 폼이 좀 나긴 했었지만, 골목의 어깨형들 4대 1의 싸움에서는 쪽수에 밀려 얻어터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비록 객기는 용감했지만, 돌아온 건 대학병원에서의 21일 동안의 혼수상태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스승은 볼품없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속세에서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스승에게 그리 만만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배신과 배반의 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결국 스승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승과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극단적 선택이야말로 스승에게는 유일한 탈출구라 믿고, 죽기 전 이 땅의 산하를 한번 둘러보고 가고자 만난 어떤 보살과의 인연으로 신불산 홍류폭포까지 가게 되고 보살과의 인연은 마침내 스승의 수행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지장보살의 화현이었을까? 보살이 냉혹하게 말하기를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 어차피 죽을 거라면, 100일간만 기도를 한 후에 죽어도 늦지 않으니, 일단은 죽음을 뒤로 미루시지요”
보살의 만류에 스승은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는 그때 비로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알고 나서 죽겠다는 생각에 죽음을 100일간 미루고, 그때부터 스승은 신불산에서 피골이 상쟁하는 수행으로 득도를 향해, 해탈의 긴 항해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스승은 천지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보내기를 또한 십수 년, 스승은 인간의 숱한 고뇌와 번뇌의 망상에 대항하며,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면서 묵언과 고난의 수행으로 산 생활을 하게 되고, 산신에게 올린 좋은 음식들은 먹지 않고 귀신들을 주기 위해 버린다는 명태 대가리 등 버려진 음식들을 주워 먹으면서 세상의 모순과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묵언 수행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고해성사의 참회 정진을 통해 회광반조(回光返照)를 거듭하니, 비로서 그것이 수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의 진리를 통해 터득하게 된다. 비로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천지 아래 무엇이든 물어 보라!
대선사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이 시대 진정한 메시아로 불리고 있는 천공스승은 오는 2025년 마침내 남북통일의 기운이 열려, 그 서막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다소 무모한 예측이라 여기겠지만, 확신에 찬 천공스승의 일갈은 거침이 없다.
거침이 없으니, 막힘도 없을 터, 본래 불가(佛家)에서 대선사들은 매사의 외침에 걸림이 없다지만, 천공스승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에는 필시 무슨 일가견이 있으리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남북통일의 기운은 스승이 하늘로부터 받은 계시라고 했다. 정법(正法)이라는 대우주 자연의 법칙과 신념 사상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고, 정법(正法)이란 말 그대로 우주 대자연의 이치를 터득해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법칙을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깨닫게 된다는 일종의 훈육으로 천공스승이 주창하는 정법시대 사상은 기존의 종교와는 전혀 다른 맥락을 취하고 있다. 기도하고, 절하며, 매달리고 애원하는 발복의 기복적 신앙을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일종의 일체유심조와도 같은 유교적 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깨달음의 사상은 어떠한 종교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는 대우주의 법칙을 인용하여, 그 이치를 정법으로 풀어주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환경이 옳고 틀림이 없듯, 작금의 시기는 홍익이념으로 인류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후천 정법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던진 질문 중 하나로, 철학 등 인문학이, 또 문학과 예술이 재현하고자 했던 문제다. 그런 가운데 홍익인간을 기반으로 한 정법의 도를 설파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선지식이 바로 이 시대 진정한 큰 스승이자 메시아로 나툰 천공스승이다.
스승은 천지 아래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화두를 던지며, 홍익인간 천부경 사상을 바탕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이슈를 주제별로 묻고 답하는 선문답의 형식으로 대중들과 소통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이 시대 진정한 선지식이자 대선사의 품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정법(正法)의 창시자이자 멘토

시대의 대선각자, 천공 스승은 과연 누구인가?
천공 스승을 마주하다 보면 친견하는 내내 대사각활((大死却活)이라는 옛 선사들의 화두가 떠 오른다. 크게 죽어야 비로서 살 수 있다는 옛 선사들의 가르침처럼, 천공스승은 이 시대 진정한 메시아로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진리로 이 땅에 나툰, 신인이자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혹자는 다소 스승을 신격화함에 경계하겠지만, 적어도 범부의 눈에 비친 스승의 모습은 분명히 그랬다.

특히, 그 증명은 춘천의 모 스님과 스승의 유일한 제자이자 정법시대 문화재단의 신경애 이사장의 신의(信義)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로부터 불가에서 부처님 법은 스승을 통해 제자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방식은 가르침과 인가(認可)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스승 앞에서 자격을 갖추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선사들은 깨달음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강사들은 학문으로 이를 증명했다.
반야의 반열에 든 그들이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니, 범부야 오죽하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부모 얼굴도 모르고, 죽으러 신불산에 들어갔으나 죽지도 못하고, 고행과 해탈을 통해 천부경 81자를 가슴에 품게 되었으니, 이는 곧 우주 대자연의 이치에 따른 순응의 법칙으로 결국 스승은 화경(化境)으로 자신을 보고 미래를 투시하는 영적인 체험까지 득도하는 신인의 반열에 든 것으로 그렇게 평가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 했던가! 진흙에서도 유유히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디어 냈을 스승과 그를 따르는 사부대중 모두에 대한 경의가 새삼 느껴졌다. 그것은 곧 목무설설(木無說說)로 대변되기에 충분했다. 신불산 중턱의 소나무 한 그루가 증명하고 있다. 나무는 말없이 서 있음으로 이미 많은 말을 건네고 있다.

 

 


발행처│한국여성언론협회  |  발행인 : 박영숙  |  총괄편집국장 : 하태곤
서울 영등포 라 00586  |  본사 편집국 :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11
대표전화 : 02 – 780 – 7816  |  팩스 02 - 780 - 7819  |  회장 : 방은미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하태곤
여성시대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에 따라,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1 여성시대. All rights reserved. mail to 24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