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들이 펼치는 무용, “천사의 날갯짓”
  • 신상득 기자
  • 승인 2019.11.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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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스장애인무용단’ 임인선 이사장 인터뷰

18명 단원들 교도소 - 소년원 소록도 등지서 공연
장애인 지도자 양성 장애인문화예술학교 설립이 꿈

 

                                                                                                             에디터_ 신상득 twins0518@hanmail.net
 

안양 환경사랑나눔의 집 공연 실황

 

지난 9월 25일 오후 경기도 안양중앙시장내 (사)환경사랑나눔의 집 2층. 이곳은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평소 같으면 점심식사를 마치고, 귀가를 하거나 노래를 배우거나 할 노인들이 모두 강당으로 몰려들었다.

“무슨 공연이랴?”
“나두 잘 몰러.”

어눌한 발음. 대개는 그저 시큰둥한 반응. 개중에는 휠체어를 탄 노인도 있고,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도 있다. 얼추 200여 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50대 중반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공연에 관해 안내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공연을 향한 열정은 무대 가득 묻어났다.

공연을 안내하는 여성은 대림대학교 스포츠지도과 교수이자 ‘(사)필로스 하모니’의 임인선 이사장. 임 교수는 18명의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공연단을 13년째 이끌고 있다. 지적장애인을 불러 모으고 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쳐 교도소와 소년원, 노인회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공연은 궁중 무용 ‘진풍정’과 ‘프렐류드마주르카’, 한국무용 ‘사랑가’ 등으로 각각 15분 가량 진행됐다.

공연이 있기까지의 애환

주지하다시피 공연은 무대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공연이 있기까지 의상준비도 필요하고, 분장도 필요하다. 문제는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학부모가 이들의 열렬한 후원자로 나선다. 몸소 의상을 챙기고, 분장을 돕고, 무대에 나서기까지 무대 뒤에서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필로스장애인무용단 공연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공연 뒤편에서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는 이들은 또 있다. 바로 대림대학교 ACE봉사단.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은 임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필로스 하모니’ 소속으로 이번 공연을 주관했다. ACE봉사단은 이번 공연의 공동 주관단체이다. 그만큼 이들의 봉사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장애인의 특수체육활동지원, 무용교육접목지원 등을 통해 봉사요원들이 전문 기술과 기량을 습득해 장차 장애인스포츠 영역에서 최고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설립되었다. 현재 17명의 대학생이 봉사단원으로 자신들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 나아가고 있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와 안양시가 공동으로 주최하였고, 대림대학교와 삼성화재, 하나은행이 후원을 맡아주었다. 어찌되었건 안양중앙시장내 (사)환경사랑나눔의 집 2층에서 가진 필로스장애인무용단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이번 공연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뤄진 멋진 하모니 그 자체였다.

해마다 5~10차례 공연 이어가

“2007년 3월 국내 최초 장애인무용단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을 창단한 이후 해마다 다섯 차례에서 열 차례씩 공연을 열고 있지만, 지금도 공연을 앞두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임 교수는 무용단원들이 제대로 공연을 성공시킬지 늘 걱정이다. 무용단원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각도 불안하다. 앞에서는 다들 격려하고 위로하지만, 공연을 보지도 않고 “IQ80 미만의 발달장애인이 무용을 해봐야 얼마나 잘 하겠느냐?”며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10분짜리 공연을 위해 3년 이상 연습을 해야 하는 무용수들의 피땀이 너무 쉽게 폄훼 당하는 상황이 당혹스럽다.

단원들의 개인 스케줄 관리도 간단치 않다. 신상을 이유로 갑자기 한두 명만 공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공연 불가다. 대체할 자원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무용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보호해야 한다.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낭패이니 무용단은 물론이요 학부모까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은 창단 이후 희망이 필요한 곳을 방문해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성화 봉송 축하공연이나 2017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신한가족 만원나눔기부 공연과 같은 공식행사는 물론이요, 소년원 교도소 요양원 장애인복지관 등지에서도 매년 활발하게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발레 전공에서 현대무용 전공으로

임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발레를 하다가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원 시절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대가인 육완순 교수의 조교생활을 하였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듣게 된 주명희 교수의 무용요법(Dance Therapy)에서 자신의 진로를 가늠하게 됐다. 처음에는 조현병 환자를 상대로 무용요법이 보이는 효과에 관해 연구를 하다가, 1998년 서울대학교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하는 김의수교수를 만나 진로를 확정했다. 김 교수는 한국 특수체육 분야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김 교수의 특수체육을 보고 배우면서, 특수무용으로 대체할 생각을 갖게 된 것. 당시만 해도 특수체육은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특수무용은 완전 걸음마 수준이었다.

김의수 교수를 모시고 ‘무용-체육 활동(Dance-Physical Activity)’을 연구하는 동안 임 교수는 서울대학교 장애아동체육교실에서 발달장애인들에게 무용을 가르쳤다. 결국 대학원 논문도 이 경험과 자료를 근거로 ‘무용요법이 다운증후군 아동의 신체이동기술 및 정서에 미치는 영향’
이란 제목으로 2004년 쓰게 됐다. 말하자면 김의수 교수를 모시고 공부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지적장애인 교육으로 방향을 정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림대학교와의 남다른 인연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대림대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사회체육과에서 3년간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댄스스포츠 실기를 지도했고, 사회체육이론도 강의했다. 이어 1년간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중 사회체육과 여교수 임용 공고를 보게 됐다. 마침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과학과 체육학 박사 과정을 이수한 상황이어서 겸임교수를 사직하고 응모했는데 고맙게도 교수로 임용되었다. 교수 임용이야 대학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지만, 1988년 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 식전행사 지도강사로 ‘태초의 빛’을 지도한 경력, 1988년 8회 장애인 올림픽대회 개회식 식전행사 현대무용 지도강사 경력 등이 인정을 받은 듯했다.

임 교수의 눈은 자연스럽게 애초 관심 가졌던 장애인 체육으로 향했다. 그래서 2008년 개설한 과목이 ‘특수체육론’. 특수체육을 가르쳐서 학생들이 특수체육국가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한다는 것은 연구를 전제로 한다.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 혹은 시민단체와는 전연 다른 분야로서 연구 분야가 존재한다.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 그것을 논문과 저서로 엮어내야 한다. 연구에 소홀하면서 대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임했던 시간이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중대 당시 안양시장을 만나 장애인에게 무용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지적장애인을 모아달라고 부탁해 도움을 받았고, 다시 대림대학교 이정국 총장을 찾아가 대학 내 체육관 에어로빅실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아냈다.

장애인 무용단 창단까지 사연

2005년 11월 25일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무용 교실인 ‘대림대학교 장애아동 무용체육교실’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매주 월요일 1시간 반씩 가르치는 무용교실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용체육교실을 운영하다보니 너무 많은 지적장애인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어쩔 수 없이 1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수료를 시켜야 했다.

 

 

“아이들이 중도에 무용을 그만두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수료식이 끝나고 학부모 세 분이 임 교수를 찾아와 당부를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그들은 매우 간절했다. 아이들이 다시는 눈물짓지 않도록, 떠나가지 않도록, 평생 쫓겨나지 않도록, 무용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그리 해 달라고 애원했다. 난생 처음 무용을 배우고 체험한 지적장애인들. 그들과 학부모의 소망을 꺾여야 한다는 말인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임 교수는 장애인무용단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약속했다.

“무용단 이름은 ‘필로스장애인무용단’으로 하죠.”

이름부터 지었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장애인무용단을 만들기로 했으면 출발을 해야 했다. ‘필로스(Pylas)'는 '상대의 바람을 채워 주는 사랑’이라는 의미다. 필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Eros)나 인류를 향한 신의 무한한 사랑 아가페(Agape)와 달리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이다. 장애인을 무용수로 배출해 장애인의 성공과 바람을 이루어 내면서 동시에 세상 어둠이 깃든 곳에 희망을 찾아주자는 의미를 바탕에 깔았다. 어둠이 깃든 곳은 장애인단체나 교도소, 소년원 같은 곳을 막연하게나마 떠올렸다.

갓 만든 단체에 정부 지원은 있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은행에서 6,700만 원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그 돈은 지금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다. 단원을 공개모집했더니 무려 60명이나 몰려들었다. 심사를 거쳐 스무 명을 선발했다. 지적장애인도 지능수준이나 감성수준이 아이에 따라 달랐기 때문에 오는 아이를 다 받아줄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단법인을 만들고, 공연을 지속하다보니 벌써 14년이 흘렀다.

 

임 교수는 필로스장애인무용단 창단을 통해 보다 한 차원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 하나는 앞서 밝힌 대로 지적장애인을 예술가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차 장애인문화예술학교를 설립하는 일이다. ‘장애인 문화예술 지도자 양성 과정’은 장차 장애인들도 문화예술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문화예술학교’ 설립 필수과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립무용단은 있는데 왜 국립장애인무용단은 없는가? 이것이 필로스무용단을 창단한 최종 목표인 것이다.

임 교수는 자신이 설립해 운영 중인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이 장애인문화예술학교 설립의 디딤돌이자 징검다리라고 자부한다. 언젠가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이 밑거름이 되고 씨앗이 되리라 믿는다.

“이 디딤돌을 디디고 많은 장애인들이 예술가로서 활약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임 교수는 “필로스장애인무용단이 뿌린 씨앗인 머잖아 꽃피고 열매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맑은 가을 햇살 아래 임 교수의 미소가 해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