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전문가로 사는 화각(畵刻) 명장 전경영 작가를 만나다
  • 배세연 기자
  • 승인 2019.11.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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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통명장 전예제 18호 - 명 138호’로 화각 명장이자 서각 명인. 원광대학교 전통차 예술 전임교수 역임.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두 일을 하는 기이한 중년 작가. 바로 중정 전경영이다. 나무에 그림을 새겨 넣는 일을 서각(書刻)이라 하고, 나무에 그림을 새겨 넣는 일을 화각(畵刻)이라 한다. 

전경영은 서각과 화각 분야의 일인자로 정부로부터 서각 명장과 화각 명인으로 지정 받은 작가다. 당연히 나무에 글씨와 그림을 새겨 넣는 작업을 수행한다. 남의 작품을 새겨 넣기도 하고, 직접 쓰거나 그린 작품을 새겨 넣기도 한다. 자기 작품을 새겨 넣는 걸 ‘자팔자각(自筆自刻)’이라고 한다. 

20여 년 전부터 한국예술대전 23회 서각부문 특선, 대한민국 남북통일 예술대전 특선, 대한민국 남북통일 예술대전 금상 2회 등 수상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현재 한국수공예예술대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따라붙는 또 다른 이력이 있다. 바로 원광대학교 전
통차 예술 전임교수 역임. 서각 명장, 서화 명인이 난데없는 전통차 전임교수라니, 대단하고 놀라운 그의 작품 세계와 이력을 들여다보았다.

                                                                                                                

                                                                                                                     에디터_배세연 (pianobsy@hanmail.net)

커피를 못 마셔 마시게 된 녹차

다향만당 불상허례(茶香滿堂 不尙虛禮) 
다향만당에서는 허례허식을 받들지 않고 
주객상망 좌열무서(主客相忘 坐列無序) 
주인과 손님 가르지 않아 앉을 때도 서열이 없고 
<중략>
한담고금 정완산수(閒談古今 靜玩山水) 
조용히 고금의 한담을 나누고 경치를 감상하면서
전차분향 이요유취(煎茶焚香 以邀幽趣) 
차 달이고 향 사르며 그윽한 정취를 구할 뿐이네… 

전 씨가 차를 마시면서 즐겨 읽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 다향만당(茶香滿堂)이다. 시를 읽으면서 차를 탄다. 가슴으로 시를 만끽하는 동안 손은 자동으로 움직인다. 차를 타는 물의 온도는 85℃. 여기에 녹차를 서너 차례, 우려내 마신다. 이어 발효차를 우려내 마신다. 차 한 잔의 여유
다. 자신도 모르게 차향이 몸에 배는 착각에 빠져 든다.

전 씨가 녹차를 마신 건 20대 대학 시절. 친구들과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는데 이상하게 마실 때마다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찾게 된 것이 녹차였다. 처음에는 무슨 맛인지 몰랐다. 그저 풀 냄새 같기만 했다. 그나마 현미차는 구수해 좋았다.

그러다 성인이 된 후 원불교 교무 방에서 차를 접하면서 차 맛을 알게 됐다. 차의 향긋한 맛과 향이 혀와 코를 자극하는 동안 귓전에 울리는 감미로운 음악. 음악 탓인지 모르게 차의 맛과 향을 처음으로 느끼게 됐다.

차에 점차 빠져 들던 29살 청년은 손수 실내 장식과 원목 다탁, 의자 등을 만들어 ‘뿌리 깊은 차나무’라는 전통찻집을 열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르는 철부지는 문을 열고 2,3개월이 지나도록 찻집 허가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문을 닫고 말았다. 몇 달을 쉬다가 차를 향한 그리움의 열망을 접지 못해 ‘녹다향’ 이라는 전통찻집을 다시 개업했다.

전통차 전문가로서의 길

젊은 패기로 전통차를 알리고 보급하는 일을 밀어붙였다. 전통차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4개 대학교에서 동아리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일반인들과 차인회를 결성했다. 차를 마시면 중금속 해독에 도움이 되고, 폴리페놀이 지방을 분해해 준다는 내용을 공부해 차인회 회원들에게 가르쳤다. 이론만 달달 외워 교육하는 게 싫어 아예 원광대학교 차 문화 경영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원광대 동양대학원 ‘예문화 다도학과’를 다니면서 두루 차를 공부했다.

여기에서 녹차 발효차 만들기, 홍차 대용 차(감잎, 연잎차, 뽕잎차) 등을 연구하면서 이론과 실기를 고루 갖추어 나갔다. 차를 공부하다보니 자신의 장기인 서각 화각을 적극 활용하게 됐다. 활용 범위를 넓혔다. 찻잔 받침은 물론이요 찻그릇을 놓는 다탁, 보이차를 마실 때 물이 잘 빠지게 하는 다해, 다실을 꾸미는 가리개, 병풍, 서각 작품 걸이 등 다양한 적용이 가능했다. 무작정 비싼 차와 다구(茶具)만을 고집하는 이들을 향한 나름 배려였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서각 화각을 작업하는 공방이 찻집이 돼 버렸다. 중국의 6대 차(백차, 녹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 일본의 말차(가루녹차), 영국의 홍차(완전 발효차)를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적정한 것을 골라 마시게 했다. 두통을 앓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고객 반응에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차를 마시면 울분이 해소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입을 모았다, 공방에 몰려드는 손님과 벗이 갈수록 늘었다. 찻값 감당이 어려워지거나 차를 비비는 유념기와 차를 덖는 가마솥을 아예 구입하고, 야생차를 직접 따고 제다(製茶)하여 마시도록 했다. 

차에 몰두한 나머지 서각〮화각 미루기 일쑤

차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서각 화각 작품 만들기가 차질을 빚기 일쑤였다. 전시회 날짜를 잡아놓고 50점을 전시하기로 하고는 차 대접에 빠져 25점만 제작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밀려드는 후회에 열심히 작품을 하기로 수도 없이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작품을 하려고 하면 지인이 차를 마시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실 전 씨는 서각 화각보다 먼저 차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녹다향’ 간판을 서각으로 새긴 게 계기가 되어 취미로 지인들에게 서각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서 공모전에 참가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자신 만의 독특한 구절초 화각을 선보여 특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서각 전업 작가로 작품을 시작하였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글과 그림을 새기는 수준 높은 화각 서각 작가가 되었다. 서각 작품을 보노라면 꽃들이 웃고 달려오는 환희를 느낀다. 서각 화각을 하는 동안 전 씨는 몰아지경(沒我之境)에 빠진다. 곁에는 반드시 전통차가 준비돼 있다.

“서각 화각은 나무를 선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전 씨는 느티나무, 가죽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의 무늬와 생김새 등을 잘 살펴 목재를 선별한다. 새기고자 하는 글귀나 그림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결이 아름다운 10년 이상 자란 느티나무를 가장 많이 쓴다. 서각은 서각도(書刻刀)로 서예가의 필력을 그대로 담아내는 게 핵심이다. 필치가 살아야 생명력이 빛을 낸다. 다음으로 중요한 절차가 글씨 크기와 나무 크기와의 조화다. 여기에서 타고난 작가의 안목이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염원이 담기고 기도가 녹는 서각〮화각!

“서각 화각에는 염원이 담기고 기도가 녹아들죠.”잘 마른 느티나무를 신중히 고르고, 사포로 표면을 다듬고, 섬세하게 글자 하나, 꽃 한 송이를 새길 때마다 작품 주인의 행복을 염원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 이렇게 정성이 투입되어야 작품이 좋은 기운을 발산하기 때문이다.서각이나 화각은 사실 서예처럼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붓으로 쓰고 표구만 하면 되는 서예와 달리 서각은 이를 다시 나무에 새기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더 투입되게 마련이다. 전 씨는 최근 우리 유물 연구, 조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유물을 작품으로 만들어 전통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전통문화의 뜻을 알리고 맥을 잇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각 명인으로서 그는 후학 양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양성을 뛰어 넘는 대한민국 수공예 문화 발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서각 화각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치 있는 일보다 돈 돼는 일에 매진하려는 젊은이 취향이 사람답게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임을 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전 씨의 얼굴에서 차 향기가 사르르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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