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재구성
  • 전재우 기자
  • 승인 2019.11.11 1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슴 난도질, 음부에 복숭아 조각…끔찍한 범죄 대해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태안읍 일대에서 여성을 상대로 총 10건의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태안읍은 2006년 행정구역이 사라진 지금의 병점역 주변이다. 피해자는 13살 중학생부터 71살 할머니까지 다양했다. 사건은 태안읍 일대 반경 2kn 이내에서 벌어지는 특성
을 보였다. 범죄 수법도 독특했다. 강간과 살인이 함께 이뤄졌고, 속옷을 안면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살해했다. 가슴을 9차례 난도질하거나 음부에 복숭아 9조각을 집어넣은 경우도 있었다.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빗발치는 여론에 경찰 병력을 200만 명이나 동원했으나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무려 3,000명에 달했고, 나중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영구미제로 남았던 사건이 지난 10월 1일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함으로써 마지막 사건 이후 33년 만에 범인임을 확인했다. DNA 대조로 9월 18일 이춘재가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되었고, 경찰의 끈질긴 추궁과 설득 끝에 이춘재는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부로 모두 완성되어, 이춘재가 진범으로 확정되더라도 처벌을 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DNA 감정 기법으로 범인의 정액을 분석한 결과 8차 사건과 10차 사건은 다른 사람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8차 사건의 범인은 검거됐다. 하지만 이춘재는 8차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춘재의 말이 사실이라면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구속한 셈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춘재와 경찰의 수사로 사건은 여전히 시끄럽다.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에디터_ 전재우 (healway@naver.com)

1. 범인 몽타주

7차 사건 이후 버스기사와 안내양의 증언을 바탕으로 처음 몽타주가 작성됐다. 목격자들은 20대 남성이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에 태웠고, 비가 오지 않았는데 바지 무릎 아래 부분과 신발이 흠뻑 젖어 있어 수상해 보였다고 증언했다. 버스 기사는 이 남자의 얼굴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후 범행 현장에서 누군가 400여 미터를 이동한 흔적이 발견됐고, 흔적이 끝나는 장소가 이 남성이 버스에 올라 탄 장소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범죄가 발생한 마을 주민을 상대로 탐문하던 경찰은 버스를 탄 마을주민이 없다는 점, 농수로나 풀밭을 헤치고 나와 옷가지가 젖은 점 등을 증거로 보고, 운전기사 등의 말을 근거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몽타주에는 이런 내용의 적시됐다.

 

•남성
•신장은 약 165~170cm 정도의 호리호리한 체형
•20대 중반 추정
•B형으로 추정
•손이 매우 부드러움

나중에 MBC 실화탐사대에서 이춘재의 얼굴을 처음 공개했는데, 이때 사진과 몽타주는 얼굴이 매우 유사했다. 용의자의 친모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들과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춘재의 모친은 당시 몽타주나 수배전단을 보지도 못했다며 마을에 경찰이 왔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자신의 집에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춘재가 과거 경찰조사를 3번이나 받은 적이 있다고 엇갈린 발표를 했다.

2. 낙후된 수사로 한동안 연쇄살인인 줄도 몰라

경찰은 4차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연쇄살인 사건을 인정하지 않았다.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할 경우 인사조치 등 불이익을 우려한 것이다. 경찰은 현장을 태워버리는 등 초동조치 기본을 지키지 않았고, 이로 인해 사건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5차 사건까지만 해도 경찰은 피해자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다가 6차 사건 이후 공개수사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당시만 해도 연쇄살인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때였고, 수사 기법도 낙후된 수준이었다. 사건 발생 지역의 당시 치안이 좋지 않아 강간살인 사건이 가끔씩 벌어진 것도 연쇄살인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는데 일조를 했다.

언론보도로 민심이 들끓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찰을 추궁했고, 이에 경찰수뇌부가 직접 대규모 수사본부를 설치하였다. 연인원 200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3,000여 명이 수사를 받았다. 직간접으로 용의자로 몰린 사람까지 합치면 2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주먹구구식 인원 배치에 탐문 수사 의존 등 과학수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DNA 감식이나 머리카락 채취 같은 과학 수사는 세계적으로도 1986년 즈음이다. 영국 레스터대학교 알렉 제프리(Alec Jeffrey’s) 교수의 DNA 신원확인기법을 처음 시도한 것이 화성연쇄살인 사건 발생할 무렵이었다.

당시 수사는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수원과 화성 지역 25~35세 남성 사진을 모두 목격자에게 보여주며 범인을 지목하도록 하는 수법까지 쓸 정도였으니까. 사진을 보고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춘재를 범인으로 특정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이춘재의 주민등록이 다른 지역으로 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화성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수사망을 빠져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은 한국에 제대로 된 과학수사 시스템이 자리 잡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범인은 잡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 사건 공소시효가 2006년경에 완성되었다. 2000년 8월 8일 살인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전면 백지화되긴 했으나 이전 사건은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

3. 살인의 추억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은 많은 부분 각색이 이뤄졌다. 영화에서는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범인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달랐다. 범인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머리카락 등 상당한 증거를 남겼다. 영화에서는 또 비가 오는 날에만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비가 오는 날 발생한 사건은 2건에 불과했다. 극적 긴장미를 더하기 위해 비 오는 날로 특정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4. 33년 만의 진범 특정은 과학기술의 성과

2019년 9월 18일 진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특정되었다. 경찰은 9월 19일 오전9시 30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브리핑할 예정이었으나 채널A가 특종보도를 하면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새로 개발된 ‘잔사 DNA 증폭 및 복원 기술’로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품에서 새로운 DNA를 2019년 7월 15일 추출했고, 그걸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다가 이춘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6)는 1994년 청주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이상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그간 경찰은 지난 2년간 들어온 수십 건의 첩보를 바탕으로 7월부터 이춘재를 상대로 두 달간 진범 여부를 조사했다고 한다. 경찰은 국과수에 의뢰한 9차(1990년)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으로 확인되자 추가 감정을 의뢰했으며 5차(1987년), 7차(1988년)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도 이춘재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경찰은 9월 19일 2, 3, 4차 사건의 증거물도 국과수에 의뢰했다.

경찰은 국과수 분석에서 사용된 9차 사건에서 확보된 용의자의 DNA가 한 사람의 것이며, DNA의 혈액형 O형이 이춘재 혈액형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번에 적용한 DNA 정보를 통한 동일인물 판정 방법은 이론적으로 단 한 명의 차이까지도 구별하는 신뢰도를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수형자 DNA 데이터베이스는 2010년에 만들어져 그 이전에는 DNA 대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5. 이춘재 수사대상 누락 미스터리

이춘재는 사건 당시 23~28세로 화성군에 살았음에도 수사대상에서 빠졌다. 그 이유는 혈액형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란 추정이다. 경찰은 범인이 B형이라고 보았고, 처제 강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는 것.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춘재는 당시에 3번이나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모두 풀려났다. 처음 조사를 받은 것은 6차 사건 이후인 1987년으로 탐문과 행적조사 등을 통해 이춘재를 용의자로 지목해 수사지휘부에서 조사를 벌였으나, 혈액형과 발자국이 달라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다. 또 8차 사건과 10차 사건 이후에도 2번이나 추가 조사를 실시했으나 끝까지 혐의점을 찾지 못해 결국 풀려났다.

6.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유

용의자 특정 이후 이어진 8차 조사까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이춘재는 2019년 10월 1일 처음으로 범행을 자백했다. 처음에는 화성살인포함 모두 14건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춘재는 모방범죄로 범인까지 잡힌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으며, 이외에도 5건의 추가범죄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 부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일지

1986년
9월 15일 오전 6시 20분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 이모(71)씨 숨진 채 발견
10월 20일 오후 8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박모(25)씨 피살
12월 12일 오후 11시 태안읍 안녕리 축대. 권모(24)씨 숨진 채 발견
12월 14일 오후 11시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이모(23)씨 피살
1987년 1월 10일 오후 8시 50분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모(18)양 숨진 채 발견
5월 2일 오후 11시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모(30)씨 숨진 채 발견

1987년

1월 10일 오후 8시 50분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모(18)양 숨진 채 발견
5월 2일 오후 11시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모(30)씨 숨진 채 발견

 

1988년
9월 7일 오후 9시 30분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안모(52)씨 숨진 채 발견
9월 16일 오전 2시 태안읍 진안리 가정집. 박모(13)양 숨진 채 발견
(별개의 사건. 피의자 검거)

1990년 11월 15일 오후 6시 30분 태안읍 병점5리 야산. 김모(13)양 숨진 채 발견

1991년 4월 3일 오후 9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 권모(69)씨 숨진 채 발견

1994년
용의자 이춘재(56), 처제 강간 후 살해 시신유기. 체포된 뒤 무기징역수로 수감
2006년 4월 2일 이 사건 마지막 10차 사건 공소시효 만료
2013년 6월 성폭력처벌법 개정-'강간 등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절-'모든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2019년 7월 경찰, 유력 용의자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씨 특정
2019년 10월 경찰, 9차례에 걸쳐 이씨 대면조사 진행
2019년 10월 1일 이씨, 9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5건의 사건 등 총 14건 범행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

 

경찰은 이춘재가 특정된 18일 이후 날마다 대면조사를 진행했다. 전국에서 선정한 베테랑 프로파일러 6명 등 총 9명을 동원해 9차례 조사를 실시하면서 심리적 방어벽을 허물었다. 다른 한편으로 DNA 등 증거물로 계속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때 동원된 프로파일러 중에서는 연쇄살인마 강호순에게 자백을 이끌어낸 공은경 경위, 정남규 사건 당시 고도의 프로파일링 기술로 자백을 이끌어낸 권일용 프로파일러 등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범행을 부인했던 이춘재가 자백한 것은 어차피 자신이 가석방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또 당시 사건이 모두 공소시효가 완성돼 범행을 자백한다고 사형을 받을 일이 없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백 하루 전 최면 수사에서 핵심 목격자 2명이 모두 이춘재를 범인으로 지목한 점, 4차 사건에서도 DNA가 발견된 점도 자백에 한몫했다. 이춘재는 자백을 하면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고 말했으며, 또 경찰이 DNA 분석 결과를 알려주자 “DNA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7. 주변에서의 이춘재 평가

청주 처제 살인사건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이춘재는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이나 한번 터지면 매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하혈할 정도로 아내를 폭행한 것은 물론 두 살 배기 아들까지 멍이 들 정도로 때렸다고 한다. 또 심각한 성도착증으로 아내가 강간을 당했다며 울면서 경찰에 호소했다고 한다.

이춘재는 가족들조차 범인으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춘재의 동생은 “형이 조용한 성격이었으며 포악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했다”고 밝혔다. 이춘재의 친모 역시 “처제 살인사건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화성 연쇄살인사건에서 아들의 DNA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이춘재가 살던 동네에서도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춘재 가족이 거주했던 진안동의 한 주민은 “가족들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다”며 “주민들 대부분이 믿기지 않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춘재는 수감된 이후 20년 간 단 한 건도 돌발행동을 보이지 않는 1급 모범수였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교도소 관계자들이 “조용하고 말없는 대표적인 모범수였다"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지 않았더라면 이미 가석방이 됐을 것"이라 전했다. 09년과 10년에는 교도관을 보조해 다른 수형자들을 관리하는 반장(방장)까지 맡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춘재는 용의자 특정 이후 독방으로 이동 수감됐으며, 이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2006년부터 면회가 가능해졌는데, 매년 2~3차례 남동생과 어머니가 면회를 오거나 영치금을 넣어줬다고 한다. 또 이춘재의 어머니는 자신이 갖고 있던 넓은 농지가 화성시 재개발로 땅값이 엄청 올라 100억 원대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8. 보강 수사에 오랜 시일 걸릴 듯

이춘재가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건은 1986~1991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 9건, 같은 시기 화성에서 저지른 추가범행 3건, 1993년 4월 청주로의 이사 후부터 처제 살인 건으로 잡힌 1994년 1월 이전 사이 청주에서의 2건이며, 강간 등 추가 범죄 30건이다.

경찰은 이춘재의 추가 범행 주장의 사실관계를 면밀히 조사할 계획이다. 범행 검증이 끝나면 33년을 끌어온 미제사건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화성과 수원 및 청주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미제 사건들 역시 이춘재가 범인으로 확인되면 바로 해결된다.

하지만 사실관계 확인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최소 40건이 넘는데다 대부분 사건이 30년이 넘은 오랜 일이기 때문이다. 이춘재 본인도 가물가물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확인됐지만, 공소시효 완성으로 무기징역수인 그를 풀어주지 않는 방법 외에 달리 처벌 방법이 없다. 국민감정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딱히 도리가 없다.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한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 그게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결론인 셈이다.

9. 화성 8차 사건 진범은 누구?…강압·부실수사 논란

한편, 이춘재가 범인이 잡혔던 화성 8차 살인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당시 경찰이 강압·부실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경찰의 강압·부실수사가 현실에서도 있었던 것일까? 1988년 9월 8차 사건이 발생했고 이듬해 범인 윤 모 씨가 붙잡혔다. 경찰은 모방범죄로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감형이 돼 2010년 출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호 / 더불어민주당 의원] “화성사건 때문에 억울한 죽음도 많습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 중에서 트라우마로 시달리다가 자살한 사람도 있고 고문 후유증…”

[민갑룡 / 경찰청장] “이제라도 진실을 발견하는 길을 열었으니 희생자분들이 그런 피해를 어떻게 회복하고 한을 풀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경찰은 일단 이춘재 진술의 신빙성을 신중하게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자백을 시작한 김에 허세를 부린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춘재의 도발인지, 수사의 부실인지 경찰의 고민이 깊어 보인다.


발행처│한국여성언론협회  |  발행인 : 박영숙 (여성시대 미디어그룹 회장)  |  등록번호 : 서울 중, 라00702  |  본사 편집국 : 서울시 중구 삼일대로 301 영미빌딩 8층 전관
대표전화 02 – 786 – 0055  |  팩스 02 - 786 - 0057  |  총괄편집국장실 :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11 (여의도동) 프린스텔 빌딩 907호
제보 (문의) 02 – 780 - 7816 | (재)창간등록일 : 2015 – 03 - 22  |  여성시대 미디어그룹 운영위원회 상임위원장 :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회장 : 고시환  |  사장 : 이재희 (지구촌선교회 이사장)│주주대표 : 송강면 박사 외 2인 | 명예회장 : 송태홍
일본어판 총괄책임 : 미야모도 마사오(宮本正雄)   |  총괄편집국장 : 하태곤   |   편집장 : 이지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하태곤
여성시대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에 따라,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9 여성시대.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dsoft.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