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선원사 연승 성원스님의 '김치와 연(蓮)의 만남'
  • 하태곤 편집국장
  • 승인 2019.11.0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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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향기를 뒤로 하고, 산을 벗 삼아, 산을 노래하기를 45년, 참선과 수행을 통해 번뇌를 체험하고, 자아성찰을 위한 화두참선의 경계를 타파하며, 숱한 세월 스님은 산을 노래하고 산을 품었었다. 일찍이 동자승으로 문 밖을 나온, 동진출가(童眞出家)의 스님이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정진으로, 평생 외길 지족(知足)의 삶을 실천해서일까! 불교중흥의 꽃, ‘팔만대장경 판각’의 성지로 유명한 절의 주지답게 스님과의 담소는 늘 그렇듯, 담백하고 거침이 없다. 통렬한 수처작주(隨處作主)랄까! 장엄한 화두타파도 스님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이제는 거의 각 분야에서 만물박사가 되어버린 지금, 스님은 어느 날 갑자기, 김치와 연(蓮)의 만남을 통해, 우리네 식단에 도움을 주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스님과 선문답을 나누다 보면, 스님의 거침없는 평온함에 어느 덧 범부(凡夫)는 몸과 마음까지도 보살(菩薩)이 된다. 도대체 스님은 누구일까!

                                                                                                                     에디터_하태곤 (tkha715@hanmail.net)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세계인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는 고려 팔만대장경. 몽골군에 밀려 강화도로 천도한 고종은 몽골의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하는 고려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1236년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판각을 시작, 1251년 즉위 38년까지 16년에 걸쳐 불사를 회향한다. 이 팔만대장경 판각의 성지가 바로 강화도 땅이요. 그 중심지가 바로 강화 선원사다. 선원사(禪源寺)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우가 1245년(고종 32)에 창건한 사찰로 선림의 칼(禪林之劍)로 몽골군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은 위대한 원찰이었다.
    
강화 선원사는 불교중흥의 꽃, “팔만대장경”의 판각 원찰

하지만 선원사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폐사됐다. 이 터를 동국대학교 강화학술조사단이 1976년 강화도 일원의 지표조사를 하면서 처음 발견했고, 당시 건물 주춧돌과 보상화무늬 전돌ㆍ범자(梵字)가 새겨진 기와ㆍ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이 출토됐다. 세계적 보물이 탄생된 곳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높아 1977년 사적 제259호로 지정됐다. 700여 년 간, 황량한 절터로 남아 있던 선원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불사는 1993년 연승 성원스님에 의해 시작됐다. 스님은 현재 사적지 바로 밑에 땅을 매입해 터를 다지고, 2년간 불사를 한 끝에 대웅전을 낙성하고 불법(佛法)을 다시 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25년, 아직도 선원사 복원불사에 매진하고 있는 스님은 “선원사는 팔만대장경 판각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려 양대 선종 사찰로서의 의미가 더 깊은 곳”이라고 했다. 스님은 현재 복원불사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키 위해, 몇 년 전부터 선원사 인근에 논을 빌려 조성한 연(蓮)밭에서 ‘논두렁 연꽃 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다. 또 연잎차ㆍ연국수ㆍ연김ㆍ연근두부 등 다양한 연(蓮)관련 식품을 개발하여, 판매해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중창불사에 매진하고 있지만, 그 또한 재정마련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것 같다. 상황은 어렵지만 선원사 복원
불사에 대한 스님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그동안 스님의 삶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부모를 떠나 절에 들어와서도 출가(出家)를 거듭했다. 세상 밖에서 고생도 많이 했다. 공장에 다녀보기도 했고, 몇 필지의 농사를 머슴처럼 혼자 짓기도 했다. 나무를 하러 수락산 꼭대기를 오르내리다 굴러 떨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복을 타고났는지, 지금도 여전히 일이 많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 하듯이,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는 불가(佛家)의 불법(佛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 성원스님의 연(蓮)과
김치의 만남, 담백한 맛 일품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유유히 피어난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씨앗을 맺는 까닭에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강화 선원사의 연(蓮)꽃지, 넓은 잎 위에 꽃잎들을 다소곳이 오므린 연꽃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릴 때면, 연꽃은 은은한 향을 풍긴다. 그리고 그 향과 멋은 연꽃 축제의 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선원사 연꽃 축제에는 정갈하고 담백한 맛의 연꽃요리들이 전시된다. 연잎 피클과 연잎 차와 같은 친숙한 음식과 함께 연잎 가루를 넣어 반죽한 송편과, 각종 야채를 섞어 빚은 연잎 전병, 연근에 녹차, 비트, 치자 등으로 색을 입힌 밥을 채운 후, 쪄서 자른 연근 찜 등 갖가지 음식이 등장한다. 스님은 음식을 만들 때, 연잎가루나 연근가루를 넣으면 더 차지고 냄새를 제거해 주어 좋다고 한다. 또 연은 피를 맑게 하여, 소화 작용을 돕고 면역력을 증진 시켜준다며, 연의 효과를 강조했다.

"연(蓮)김치를 아시나요?" 연(蓮)과 김치가 만났다. 우리 식단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김치와 불교의 상징이자 '부처의 꽃'인 연의 뿌리를 말려 빻아 연근가루를 섞은 새로운 김치가 만들어졌다. 이 연(蓮)김치 또한 스님의 작품이다. 이렇듯 스님은 언제, 누구에게라도 연(蓮)의 효능 자랑에 여념이 없다.

연과 김치의 만남, 스님이 연과 함께 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신도들과 함께 천여 포기의 연(蓮)김치를 담가 나눠먹었던 것이 시초다. "김치 맛이 살아 있다"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연(蓮)김치 담그기에 나섰다고 한다. 연(蓮)김치는 일반김치와 달리 쉽게 무르고 시는 것을 방지해 아삭아삭한 맛을 오랫동안 느낄 수 있는 등 저장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고기에 연(蓮)가루를 뿌리고, 구우면 냄새는 물론 연기도 나질 않습니다. 숨이 죽은 채소도 다시 살아나고, 연을 많이 먹으면 혈액 내 지방을 분해하여 피를 맑게 하지요!” 스님은 연의 홍보를 위해 연꽃축제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지난 2009년에 열렸던 세계연꽃음식축제에는 일본, 중국,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5개 나라에서 참가해 국가별 연(蓮)요리를 선보였고, 작품전, 사진전, 연잎 대에서 실뽑기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소의 몸을 벗고 사람으로 태어나 잘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구제역 파동으로 스님이 애지중지하던 ‘우보살’ ‘신우보살’ ‘광양우보살’ 등 소 3마리가 살(殺)처분 되자, 스님은 며칠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스님은 선원사 뒷산에 구제역에 걸린 염소 4마리를 같이 묻었다. 자식과도 같았던 우보살과 8년을 함께 했다며, 형제를 잃고 자식을 잃은 것 같은 애통함에 한 동안 식음까지도 전폐했다고 한다.

선원사 목탁을 치는 “우보살”들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

목탁 치는 소리를 낸다고 장안에 입소문을 타고, 내방객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던 ‘목탁소’ 라는 불리던 ‘우보살’들은 스님이 지난 2002
년 경남 고성군에서 소가 목탁을 치는 소리를 낸다는 소식을 듣고, 송아지를 밴, 두 살 배기 소를 선원사로 데려왔다. 불자였던 전 주인이 사
람의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고 해 ‘우보살(牛菩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을 스님이 법명으로 정해 수계의식까지 치러주었고, 그 후 ‘우보살’처럼 목탁소리를 내는 다른 소 2마리를 고성과 전남 광양에서 데려와 ‘신우보살’, ‘광양우보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느 날 갑자기 ‘우보살’과 ‘신우보살’의 코가 마르고 입가에 거품이 생기는 등 구제역 감염 증상이 나타나 직접 면사무소에 신고해서, 살
(殺)처분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한다.

선원사가 구제역 발생 농가에서 3km 안에 포함돼 소들이 살(殺)처분 위기에 처하자, 스님은 안양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까지 찾아가 살(殺)처분을 피해갈 수는 없는지 알아보기도 했지만, 스님은 다른 가축까지도 감염돼 죽임을 당할 수 있어, 이유를 불문하고 살(殺)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워, 구제역으로 죽은 가축들을 위한 49재를 봉행해 주는 것으로 그들을 그렇게 보내야 했다.

“팔만대장경”의 판각 성지로 유명한 선원사는 비록 깊은 산 속 산사는 아니지만, 범부의 생각과 달리 세속의 향기가 그곳에는 없었다. 도량은 허름하지만, 법당에는 불법(佛法)의 향기가 진동했고,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아우르는 듯, 스님의 수행과 정진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스님의 티 없이 맑은 심성이 범부의 뇌리에 잡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깥세상이 지척임에도 스님은 거리를 두고, 전형적인 생활불교의 수행자로서 도리를 다하고 있었다.

 

문득 불이(不二)라는 말이 떠오른다. 법과 수행은 불이의 관계로 다민족 다종교 사회에서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불교이고 보면, 스님의 성불과정은 오탁악세의 혼탁한 공기를 뒤로하고, 평생 외길 지족(知足)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스님은 그 동안 불사에 여념이 없다보니 보살행을 실천하는데 다소 미약한 부분이 있었다고 참회한다고 했다. 사찰의 재정이 허락하는 한, 소외계층과 지역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도 앞으로는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으로 종교의 사회적 책무에도 최선을 다 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 했던가! 진흙에서도 유유히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디어 냈을 스님과 그를 시봉하는 신도 모두에 대한 경의가 새삼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과 그들에게 한국불교의 새로운 희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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