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를 통해 본 '대한민국 중요미제사건 재구성'
  • 전재우 기자
  • 승인 2019.11.0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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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손꼽혔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33년 만에 유력 용의자 이춘재의 자백으로 그 충격적 실체가 드러나면서,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는 장기 미제사건들에 대한 재수사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만큼이나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은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암매장 사건‘을 비롯하여, 이형호군 유괴사건 등 검찰과 경찰의 통계에 따르면,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 20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 경찰청은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으로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재수사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중의 관심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가 시민들의 제보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자료제공 경찰청)

 

1. 영화 그 놈 목소리, '故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
  

지난 1991년 1월 29일,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故이형호 군이 유괴되어 3월 13일 한강 공원 잠실지구 인근 배수로에서 시체로 발견된 영구미제사건으로, 2007년에 개봉된 ‘그 놈 목소리’가 이 사건을 토대로 제작되기도 했다. 사건의 발생은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살던 이형호
군이 1991년 1월 29일 저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고, 서울 경기도 말투를 쓰는 30대 남자의 협박 전화가 43일 동안 무려 60여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범인은 치밀했다. 협박 전화를 처음 걸고 난 뒤에는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어 ‘서초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좀 바꿔주세요’ 라는 말을 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치밀하게 행동했다. 범인은 이형호군의 부친을 서울 시내 곳곳으로 불러내 몸값을 받아내려 했지만, 정작 범인은 나타나지 않은 채, 연락을 끊어버렸고, 이 후 범인의 행방은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그러고는 범인의 마지막 통화로부터 한 달이 지난 1991년 3월 13일 한강 공원 잠실지구 인근 터널 옆 배수로에서 故이형호군의 시체가 발견되기에 이른다.

사망 시점은 유괴된 직후로 추정되었고, 유괴 당일 살해해서 이미 아이가 죽은 상태에서도 계속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을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범인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며, 범인과 대화를 나눈 은행원의 기억을 토대로 몽타주가 작성되고, 공개수사로 전환되어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수사는 끝내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한때 이형호군의 친척이었던 이모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되기는 하였지만, 살해 당일 알리바이가 증명이 되고, 심증은 가지만,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무혐의로 처리되며,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몇 차례 굵직한 제보가 접수되면서, 사건이 해결될 듯 했지만,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2. 대구 개구리 소년 다섯 어린이 실종 사건

지난 1991년 대구에 사는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 6개월 만인 지난 2002년 9월26일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자백) 과 故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과 함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린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특별지시를 내려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해 와룡산 일대를 포함해 전국을 수색하도록 했고,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은 700여 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리며, 담뱃갑과 상품 전단지에도 실종 사건의 어린이들을 인쇄하여 배포하는 등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특별지시, 현상금 4,200만원,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사 인력이 투입됐음에도 결국 개구리 소년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건의 전개 과정은 우철원군(당시 13살)을 비롯한 대구 성서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던 이들은 달서구 와룡산에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고, 아이들이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와 마을 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누볐으며, 이후 수많은 거짓 제보와 황당한 예언들이 잇따라 등장하기도 했다. 사건이 장기화되자 ‘외계인이 납치’, ‘북한공작원이 유괴’, ‘불치병 치료용 희생’ 등 온갖 낭설이 나돌기도 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1992년 8월 경찰은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들을 유괴해 죽였다는 소문을 믿고, 한센병 환자들의 정착촌을 강압적으로 수사해 한센병 환자들의 거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한 실종 5년째인 1996년 1월, 다섯 어린이 중 종식군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암매장했다는 엉터리 범죄 심리학자의 주장이 제기돼 굴삭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누명을 쓴 종식군의 아버지는 눈물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
다 지난 2001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2002년 9월26일, 마침내 네 구의 유골과 신발 다섯 켤레가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기에 이르고, 유골을 처음 발견한 50대 남성은 도토리를 줍기 위해 주위를 살피던 중 사람의 뼈를 발견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부검을 맡았던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은 타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러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70여명이 수사에 투입됐지만 2006년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전, 개구리소년 유족들은 2005년 말부터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소시효 연장·폐지’를 촉구했지만 공소시효 연장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사건의 시효 만료 전에 통과되지 못하고,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게 된다.

3. 한국판 OJ 심슨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

일명 한국판 OJ 심슨사건으로 불리는 은평구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대한민국 법체계와 낙후된 법의학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아니라,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만 7년 8개월 동안 사형(1심, 1996년 2월) → 무죄(2심, 1996년 9월) →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대법원 상고심, 1998년 11월 13일) → 무죄(고법 파기 환송 2001년 2월) → 무죄(대법원 재상고심, 2003년 2월) 등으로 여러 차례 판결이 뒤집힌 사건으로, 지난 1995년 6월 12일 아침 서울 은평구 불광동 모 아파트 외과전문의 이도행씨 가족의 집에서 원인 모를 흰 연기가 새어나오자, 인근 주민이 바퀴벌레 약을 뿌리는 줄 알고 경비실에 항의했고, 경비원이 전화(인터폰)로 연락을 해도 대답이 없자, 오전 9시 7분경 철제 방범창을 뜯어내고 내부를 살폈다. 그제야 화재 때문에 연기가 발생했음을 발견한 경비원이 소방서에 신고하였고, 오전 9시 30분경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10여 분만에 불을 껐다.

소방관들은 현장을 살펴보다가 치과 의사였던 부인(당시 31세)과 딸(당시 2세)이 죽은 채로 욕조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발생한 날은 남편 이도행씨(당시 33세)가 외과병원을 개원하는 날이었고, 당시에는 출근한 상태였다. 화재는 안방의 장롱에서 시작되었으며 장롱 등만을 태웠을 뿐, 크게 번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훗날 이 화재는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남편 이도행씨는 아내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1995년 9월 2일 구속되었다. 당시 검찰의 주장은 남편 이도행씨가 출근하기 전인 오전 7시 이전에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시신을 물에 담근 다음, 서서히 불이 타도록 장롱에 불을 지르고 출근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남편 이도행씨가 출근한 오전 7시 이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목격자도 없고 지문, 혈흔 등 직접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결국 이 사건은 실제 사망에 이르게 된 시간이 언제인지, 불은 언제 질렀는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단서들을 수집하는 초동 수사에 있어 많은 허점을 보였다. 일례로 사체와 욕조, 물의 온도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조사조차 시행하지 않아, 살해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놓치기도 했다. 결국 변호인단은 스위스의 유명 법의학자 토마스 교수를 증인으로 내세워 검찰에서 주장한 법의학적 자료는 증거 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밝혔고, 모의 화재 실험에서도 화재가 오전 7시 이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았음을 증명해 보였다. 결국 이러한 정황들이 모두 인정되어 최종적으로 남편 이도행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이 사건은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사건 초기 법의학적인 증거 수집이 미흡하여, 미해결 상태에 빠진 사례로 유명하다. 언론에서도 냉정하게 사건을 접근하지 않고 '한국판 OJ 심슨사건'이라며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 사건은 1996년 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과 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수사가 필요함을 시사해 준 사례로 남게 된다. 한편, 본 사건의 2심 재판부터 최종 대법원 재상고심 재판까지 변호를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는 한 남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8년간의 지루한 싸움은 승리로 끝났으나, ‘이것이 정말 승리일까? 남자는 정말 행복할까?’ 라는 여론의 질문에 '모르겠다!'라는 말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4. 대구 팔공산 캐디 토막살인 사건

1991년 5월 9일 오후 6시20분경 대구 팔공산에 위치한 둔덕미골 골짜기에서 골프장의 캐디 이봉이양(당시 26세)이 토막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발견 당시 시신의 상태는 매우 참혹했다. 옷이 모두 벗겨졌으며 피해자의 양손은 모두 잘리고, 유방과 국부가 매우 날카롭고 정교한 도구로 절단된 채, 암매장되어 있었다. 현장 부근에서는 1.8 리터짜리 뱀술 1병과 담배꽁초, 흩어진 검은 머리끈들이 발견되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대구시내 주요 용의선상에 오른 40인의 남성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까지 임의 동행해 밤샘 조사를 벌이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으로, 용의자가 빠져나간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띄기 때문에 곧 해결이 될 것 같았지만, 좀처럼 실마리나 단서가 잡히지 않아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당시 경찰은 아마도 범인이 다른 곳에서 여성을 살해하고 이곳 둔덕미골로 찾아와 시체를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특히 살해된 사체의 간과 신장에서는 플랑크톤이 검출되었는데, 아마도 그녀가 팔공산 주변 연못에서 살해를 당한 뒤, 이곳에 암매장 했을 가능성만을 추정했을 뿐, 결국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은 채,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5. 천안 여고생 박수진양 실종 사건

2004년 천안의 모 여고, 당시 오전 수업만 마친 1학년 수진 양은 서점을 들렀다가 무슨 영문인지 학교운동장으로 다시 되돌아온 후, 잠시 후 학교를 다시 나섰으나 그날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와 집만 오가던 수진 양이 연락이 두절되자 가족들은 하루 만에 실종신고를 한다. 이날 저녁 학교 인근 골목에서 수진 양의 유류품이 발견되고, 속옷 등은 물에 씻어서 버린 듯 젖어 있었다. 시력이 나쁜 수진 양의 안경까지 발견되자, 범죄 피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다. 천안의 모든 곳에 수진 양을 찾는 전단지가 붙었고, 방송을 통해서도 사건이 알려진다.이후 제보를 통해 한 명의 유력 용의자가 지목됐지만 사건과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당시 천안에선 잇따라 여학생 살해·성폭행 미수 사건이 일어났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괴담까지 돌았지만 범인의 행적은 물론 수진 양의 행방은 묘연했다. 이 사건은 현재 11년 넘게 오리무중으로, 공소시효의 제한이 없지만 현재로선 큰 반전이 일어나야 수진 양의 행방을 알 수 있을 듯하다.

6. 김포 가정주부 피살 사건 [공개수배] 용의자는 홍덕표

지난 2006년 경기도 김포시에서 발생한 가정주부 살인사건으로. 목에는 수건이 감긴 채로 흉기에 여러 차례 피습된 모습으로 숨져있었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제 3자의 옷을 발견했고, 피해자 집 주변의 CCTV를 살펴본 결과, 범행 추정시간 피해자의 집 쪽으로 향하는 거동이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다. 용의자는 당시 46세(1961년생)의 홍덕표로 범인은 피해자의 이사를 도와주었던 이삿짐센터의 일용직 노동자로 밝혀졌다.경찰은 용의자의 범행동기가 카지노를 드나들며 생긴 거액의 빚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경찰은 홍덕표를 유력한 용의자로 공개수배를 했지만, 범인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현재범인의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고 있지만, 다행히 2000년 8월 이후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범인이 잡힌다면 마땅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인 평범한 주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 홍덕표를 공개 수배한다.

7. 전주 여대생 이윤희양 실종 사건

2006년 6월 6일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윤희양이 덕진동의 한 호프집에서 강의종료를 기념한 종강 총회에 참석하고, 다음날 새벽녘에 자신이 자취하는 금암동 원룸으로 귀가 한 후, 행방이 묘연한 사건으로, 경찰은 자택 수사 도중 이윤희씨의 인터넷 사용기록을 발견했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 새벽 3시경부터 1시간 정도 포털사이트를 이용했는데, 검색한 단어는 "112","성추행" 또한 네이버 지식인에서 검색한 내용은 "어떤 남학생과 여학생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진 내용, 여학생에게 어떤 아저씨가 따라와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내용을 끝으로, 컴퓨터는 4시 21분에 전원이 꺼진다.

경찰은 실종신고 즉시 위치추적을 시도하려 했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수일 전에 노상에서 날치기를 당해 휴대전화와 신분증 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사건 발생 4일 후,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가 이윤희양의 계정으로 음악 사이트를 접속하고, 메일을 확인한 흔적이 확인되어, 접속 장소를 추적한 결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에서 112와 성추행을 검색한 흔적, 방안에 있던 찻상과 망치가 함께 사라진 점, 나흘 후 서울에서 인터넷 접속 흔적이 발견된 점 등 수많은 의문점을 남겨둔 채, 사건은 현재 13년째 장기미제 실종사건으로 구분되고 있다.

8. 방송인 김은정 아나운서 실종 사건

이 사건은 지난 1991년 당시 TBS 교통방송의 아나운서였던 김은정씨가 현금 100만 원을 들고 사라진 사건으로, 실종 전날 자취하던 집 근처의 고모 집에 들러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추석 특별 생방송이 새벽 5시부터 있기에 일찍 가겠다고 하고 사라진 것으로,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평상복 차림으로 현금 100만 원을 갖고 사라졌으며, 지난 1993년 공개수배 사건 25시를 통해서도 수소문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현재까지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9.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 사건의 의혹과 진실은?

대한민국 최고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 사건은 5촌 조카이자, 사촌이었던, 박용철과 박용수가 같은 날, 북한산에서 사망한 사건으로, 박용철은 살해된 채, 박용수는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의사한 채로 발견된다. 특이 사항은 이 사건에 의문을 갖고 파헤치려는 사람들조차도 행방이 묘연해 지거나, 사인을 알 수 없는 시체로 발견되면서 언론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성역으로 여겨다. 사건 5년 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최초로 다루었으며, 여전히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협박이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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