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대째 300년 가업, 중요 무형문화재 이학수 장인 인터뷰
  • 하태곤 편집장
  • 승인 2019.11.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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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보석으로 만드는 장인, 흙은 생명의 원천이고 목숨이 있는 것은 모두가 흙을 의지한다. 그리고 흙에 감성을 불어 넣으면 보석이 된다. 흙과 물과 불로 보석을 만드는 무형문화재 이학수 장인, 그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생활도예의 꿈이 담긴 그릇을 빚는다. 바다와 흙이 만나는 곳, 타고난 손길로 흙을 주무르는 그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적송의 불꽃을 피우는 장작더미도 그의 손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내 도공의 생태적 본능은 삽시간에 흙을 보석으로 만들어 버린다. 

                                                                                    에디터_하태곤 (tkha715@hanmail.net)

 

그는 21세기 도자문화의 주역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신의 선율이 느껴지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도 했다. 소박한 형태의 인간미가 가미된 작품. 고요한 자연이 숨 쉬고, 불의 혼이 노래를 부르는 장인의 정신을 옹기사발에 담아, 시늉만 내는 도공이 아닌, 이 시대 최고의 예술가로, 흙으로 혼을 부르는 영혼의 마술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물과 불의 혼으로 꿈이 담긴 그릇을 빚다

9대째, 300년 가업을 잇고 있는 무형문화재 이학수 장인의 작품은 조형물의 성향이 매우 실용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흙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해 왔고, 작품의 대부분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과학적인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제대로 된 옹기는 도공의 혼과 불이 일치하여, 유약과 태도, 문양에 혼이 담겨져 있어야만 그 생명력을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학수 장인이 만드는 옹기는 그 도예 감각이 일품이다.

고난도의 다양한 표현을 연출하고 있고, 생활도자기 특유의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이 성형. 유약. 그림. 채색에 이르기까지 투박하지만 정갈하여 세련미가 넘쳐난다. 전시회에 출품했던 그의 작품들을 보면, 다양한 표현기법이 전통과 현대의 연결고리를 적절하게 표현했으며, 유약과 기법에서 한국의 도자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토속적인 감성이 묻어난다. 그 형태 또한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대와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집착과 분별이 빚어내는 수많은 번뇌와 끊임없는 삶의 여정을 옹기를 빚는 열정과 철학으로 승화시킨 옹기장인 이학수. 9대째, 300년 가업을 잇고 있어서일까! 그가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을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중을 향한 새로운 예술의 한 장르로 옹기도자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키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공예 기술이 모티브가 되어 옹기도자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고 했다. 가마에서 구워진 도공의 소중한 혼이, 한 작품 한 작품 만들어져 도자기가 될 때, 그때 비로소 도자에서 붓을 놓고 싶다는 이학수 장인은 늘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날씨와, 나비, 벌들에게도 감사하듯, 흙과 물과 불을 창조한 신의 전능함에 감사 한다고 했다.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의 작은 카페에 앉아 음악과 다기에 차 한 잔을 즐겨 볼 일이다. 그는 도공의 장인정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그 열쇠는 역시 물과 흙, 불과 바람 소리가 어우러진 도자기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도자에 생명을 불어넣다

 

청자, 백자, 독, 옹기, 항아리, 단지, 질그릇, 오지그릇…그 이름도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흙을 구워 만든다는 것이다. 우아하고 세련된 고려시대 청자와 조선시대 백자는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예술성이 탁월한 고급 도자기이지만, 나머지는 대개 김장독이나 간장독처럼 생활용품으로 쓰였다.

독이 우리말이라면 옹기(甕器)는 한자어다. 옹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원 낸 질그릇과 유약을 발라 구워낸 오지그릇의 통칭. 그 중 30cm 이하 작은 항아리를 단지라고 부른다. 또 간장 된장 고추장 따위를 담아 두거나 담그는 독을 장독이라고 한다. 거칠고 투박한 빛깔과 불룩한 몸통. 어릴 적 시골에서 흔히 보았던 독
의 모양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독은 뭐니 뭐니 해도 김장독, 간장독, 고추장독과 같은 장류를 담거나 보관하는 독이었다.

한편, 도자기 하면, 일반적으로는 경기도 이천 지역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에 자리한 미력옹기.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곳은 300년 전통을 갖고 있다. 이곳은 이천 지역과 달리 오로지 서민과 동고동락을 함께한 옹기를 만든다.

9대째 이어진 가업. 300년을 이어 옹기를 굽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옹기 굽는 일이야 기술만 있으면 되지만, 이걸 팔아 ‘먹고 살아야’ 하니 그게 더욱 힘든 일이다. 특히 60년대 이후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용기 출현으로 옹기는 거의 퇴물처럼 되어 버렸다. 무거워 운반이 용이하지 않고, 깨지기 쉬우니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었다. 옹기 굽는 곳이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를 굽고 있는 미력옹기 대표 이학수(59) 장인. 그는 왜 남들이 모두 떠나간 곳에서 옹기를 굽고 있는 것일까? 근래 들어 플라스틱의 폐해가 부각되고, 옹기의 우수한 저장성과 발효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다시 찾는 고객이 늘어가고 있지만, 남들이 모두 떠나던 힘겨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는 9대째 도자를 굽고 있다.

“옹기는 고운 흙으로 만든 청자나 백자와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점토로 만들기 때문에 가마에서 소성될 때 점토가 녹으면서 미세한 숨구멍이 생기죠. 이곳을 통해 공기가 드나든다고 해서 숨 쉬는 그릇, 살아 있는 그릇이라고 부릅니다.”

미력옹기는 면적 3,300㎡(1,000평)로 옹기 생산 국내 최대 규모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100여 종의 각종 옹기가 먼저 불그레한 웃음을 짓는다. 장독, 항아리, 술독, 식기, 다기, 찻잔 등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종류가 많다. 그는 대뜸 그릇의 생명력을 거론한다. 그릇에 생명력이 있다니. 곧바로 이어지는 그의 말이 바야흐
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옹기 속 김장은 몇 해를 지나도 고유의 맛을 유지합니다. 2급수 물을 담아 놓으면 1급수가 됩니다. 과일이나 채소도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넣으면 얼마 못 가지만 옹기에 넣으면 훨씬 오래갑니다."

옹기를 찾는 주부 갈수록 느는 추세

옹기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첫 번째는 통기성. 굽는 과정에서 높은 온도가 가열되면 옹기(甕器)의 기벽에 머금고 있던 결정수가 빠져 나가면서 기공이 생성되고, 이 기공을 통해 옹기가 안팎으로 숨을 쉰다는 것. 그래서 옹기는 예로부터 숨 쉬는 그릇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저장성으로. 옹기 기벽의 기공이 불순물을 밀어내는 작용을 함으로써 내용물이 부패하지 않고 장기간 저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바로 발효성이다. 우리나라 식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발효식품이라는 점인데, 옹기가 식품발효에 최적의 공간이라는 것이 새삼 이채롭다.“근래 들어 주부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옹기를 찾는 분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방송 등 언론매체의 영향 등으로 옹기의 정화능력과 방부 역할이 소개되면서, 최근 김치 냉장고에도 플라스틱 사각 통을 빼고 대신 옹기를 넣는 가정이 늘고 있단다. 옹기가 우리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품고 있음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조선 중기부터 아버지까지 8대째 옹기를 빚는다는 건,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일이었지요.” 그럴 법도 했다. 무형문화재 제 96호로 부친 또한 기능보유자였던 아버지 故이옥동(1913~1994)선생은 이학수 장인에게 옹기와의 연을 끊게 할 요량으로 아들에게 공부를 시켰단다. 하지만 끝내 피를 속일 수 없어 학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비법 전수가 아니라, 아들이 만든 옹기를 가지고 나가 팔아 보라는 주문이었다. 그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리에서 옹기를 파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옹기를 쓰는 부인들을 통해 옹기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절대 좋은 옹기를 빚을 수 없다는 아버지의 근엄한 옹기 철학의 반영이었다.

“지금도 모든 제품을 수작업으로 직접 빚습니다. 그걸 ‘쳇바퀴 타래 기법’이라고 하는데 별도의 동력 없이 오로지 발 물레로 옹기를 빚는 것이죠. 세계 유일한 방식입니다.” 흙을 반죽해서 응달에서 약간 건조시킨 뒤 떡메로 쳐서 판자모양의 타래미로 만든 다음(판장질) 물레 위에 올려놓고 돌려가며 타렴질(다듬는 일)을 하
는 공정은 매우 힘겹다. 하지만 물레의 속도, 손놀림에 따라 갖가지 옹기가 만들어져 나오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철분이 많은 찰흙을 물속에 넣고 휘저어 불순물을 걸러내야 하고, 그런 다음 받아둔 고운 앙금에서 물이 빠지면 그릇을 빚어 햇볕에 말려야 한다. 말린 그릇에 잿물을 먹인 다음 또 한 번 말려서 유약을 바른다. 유약은 잿물통에 철분이 섞인 흙과 나뭇재를 비슷한 비율로 섞어 넣은 뒤 고루 저어 체에 쳐서 걸러낸다. 그릇에 유약을 먹인 다음에는 몸통에 난초나 풀 무늬를 그려 충분히 말린 다음, 가마에서 구워 완성하게 된다.

평생의 꿈은 배우는 공간 만드는 것

옹기장 사이에서는 ‘1건아 2성형’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모양을 만드는 성형보다 말리는 건아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어떻게 건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미력옹기 공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건아실’이 눈에 띈다. 물레 작업을 끝낸 다음부터 가마에 들어가기 전까지 말리는 공정이다.

옹기를 빚어 완성하는 기간은 얼추 한 달 가량. 흙을 선별하는 퇴토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잿물을 입혀 문양을 넣고, 다시 건조시키기 전까지 전 과정이 건아 작업이다. 가마에서 굽는 기간 일주일을 빼고는 나머지가 모두 건아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평생의 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옹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학을 가르치고 전통을 이어나가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것. 그 꿈은 보성에 옹기대학을 세우는 일이다. 그는 이곳에서 옹기장으로 못 채운 여망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다.

그는 옹기대학에 앞서 오래 전부터 사설 옹기학교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에게 우수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1년에 4기로 나누어서 대학처럼 16주 동안 쉼 없이 교육을 한다. 학생들이 매우 자발적이란다. 1기 과정을 거치고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스스로 2차례 이상, 심지어 다섯 차례나 옹기학교에서 배우기도 한단다.

60년대 처음 옹기의 위기가 찾아 왔다.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그릇의 등장 때문. 정부는 질그릇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1989년 5월 옹기 제작 기술을 중요무형문화재 96호로 지정하고, 1990년 그 기술을 보유한 아버지 옹기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지금은 자신이 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옹기장인으로 살아가는 건 여전히 궁핍의 대물림이다. 1984년 부업으로 보성읍에 차린 안경점 수익으로 지금도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학수 장인의 미력옹기는 90년대 초반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울 경복궁 전통공예관, 인사동 통인가게를 비롯해 지방 곳곳에서 그의 옹기가 팔려 나간다.

이학수 장인의 아내 이화영씨도 옹기제작 기능전수자다. 부인 이씨는 조소과 출신으로 도예가다. 이씨 부부는 요즘 자녀(2남 1녀)에게도 전통옹기 제작법을 틈나는 대로 가르치고 있다. 숨 쉬는 옹기, 과학문명도 잡을 수 없는 선조들의 슬기를 잇고자 함이다. 그는 "그나마 목사인 두 아들이 목회를 마치면 옹기를 배우겠다고 약속했다“며 ”10대째 가업을 이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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