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9.09.11 1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맏며느리의 한가위

 

풍요로운 추수를 마치고, 조상님께 감사의 예로 올리는 미풍양속인 차례상. 요즘 젊은이들에게 과연 한가위가 ‘더도, 덜도, 말고’란 여유로움으로, 풍요로움으로 다가올까?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사이로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음을 믿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여러가지 고단함을 동반한 근심에 쿵쾅쿵쾅 심장이 뛰는 소리가 버겁게 느껴짐이 지금의 현실이다. 돌이켜 보면, 세월이 흐르지 않아 미래도 없을 것 같아 서러움과 절망감에 상심하며 살았던 철부지 며느리. 불편한 한옥 집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참 많이도 쏟아냈었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열심히 생활비를 충족시키는 일에만 전념하는 남편의 무뚜뚝함에 나는 매일 매일이 낯선 시댁 식구들 속에서 적지에 포로로 잡혀 있는 느낌이었다. 5남 2녀 중 3째 아들이셨던 친정아버지. 1년에 13번의 제사를 지내는 큰형님 댁을 다니며 맏며느리가 얼마나 고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아시는 인생선배로서, 고명딸이 맏며느리로 바뀌는 현실을 무척이나 가슴 아파 하시며 혼사를 결사 반대하셨다. 그러나 아뿔사! ‘제 무덤 제가 판다’는 속담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줄이야. 

연애시절 가끔 예비시댁에 놀러오면 한옥집 대문을 열어주시며 ‘우리 공주 왔구나.’ 시어머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콩 꺼풀이 겉잡을 수 없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남편과 헤어지지 않고 한옥집 대문으로 함께 손잡고 들어가고 싶었던 환상의 나라가, 공주에서 하녀로 전락한 나의 무덤이었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시할아버지 제사. 열흘 후 100포기의 김장. 체감온도 영하 100도. 이게 아닌데... 분명 공주라 하셨는데... 몰래 눈물을 훔치는 딸에게 우리 아버진 다시 말씀하신다. “양반집 자식이라며 남편이 좋을수록 네 남편을 나아주신 시부모님께 효도해라.” 네 자식이 보고 자라서 네게 효도할 것이다. 철부지 고명딸에게 늘 당부하시던 말씀을 들으며 해마다 명절을 맞아 정성을 쏟았다. 시작은 아버님 두 분께 각각 삼남매. 시누이 식구 4명. 시동생 식구 4명. 내 식구 6명, 이모님 식구 8명. 명절이면 작은 한옥 집에 30여명의 대식구가 모인다.

평소엔 소박한 밥상에, 알뜰하고 검소하시다 못해 짠순이로 유명하신 시어머니의 주머니가 유일하게 열리는 때, 며칠 전부터 종이에 빼곡히 적은 준비물로 두 손 가득 수차례 장을 봐다 나르고, 쌀을 빻아다 송편도 만든다. 가부좌 자세에 온 몸이 뒤틀리고 손가락이 쥐가 나게 주무른 산더미 같은 반죽이 어여쁜 모습으로 환골탈태되니 어랏! 누가 훔쳐갔나? 장시간을 투자한 노고의 결과물에 승복할 수 없는 마음은 송편을 만들어 본 자만이 이해할 것이다. 허리를 두드려가며, 짬짬이 부엌 귀퉁이에서 몰래 눈물을 찍어 내어가며 내가 만든 그 많던 음식은 차례상보다 방문하셨던 손님들의 손에 더 많이 바리바리 들려졌다.

내심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맏이로 태어난 남편. 그 남편을 사랑해 맏며느리가 된 것이 죄라면 아주 달게 그 죄를 받고 있는 중인가 보다. ‘내가 힘든데 왜 효도가 우선 순위인지요? 내 부모도 아닌데 왜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차례상을 차려요? 그건 어머님 몫이지요!’ 주변 며느리들의 주장과 태도에 나는 단호히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며 돌아서선 ‘엉엉 아버지 너무 힘들어요. 왜 효도하라 가르치셨어요?’ 혼자 설움에 울부짖고, 남몰래 가슴을 쳤다. ‘근호엄마! 복 받을거야! 아유 나도 저런 착한 며느리하고 한번 살아봤으면... 이구동성 주변 어르신들께서 하시는 말씀에 ‘복 안 받아도 좋으니, 나도 명절날 여행가고 싶다. 벌 받아도 좋으니 남편과 내 아이 둘 하고만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다. 장성한 아들이 있으니 나도 이제 곧 시어머니가 될 텐데... 그 시절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모르고 원망하며 살았다. 내 아들의 부인이신 며느리님께서는 시집이 싫어서 시금치도 안 드실 것을...

 

명절증후군!

명절증후군, 어느 백과사전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명절을 보내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매스컴에서는 신종 병명이라고 떠들어댄다. 명절이 다가오면 심장이 조여오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통에 시달린단다. 명절날 시댁에 다녀온 후 싸움이 불거져 이혼한 신세대 커플이 많단다. 며느리 사표내고 나를 찾아가겠단다. 깊은 한숨 한번 몰아쉬고, 서른다섯 해 째 명절을 보내는 내 마음은 격세지감 중재위원회 위원장이다.

어느덧 흐른 세월 앞에 나도 딸아이가 결혼을 하여 여느 젊은이처럼 시댁의 불평불만을 털어놓는다. 칠순의 사돈이 하시는 ‘우리 때는 말이야...’ 행동은 당연 이해하고도 남음이지만, 달나라엔 옥토끼가 없음을 아는 똑똑한 신세대와의 갈등을 어찌 융화시킬 수 있을까? 가정을 이루었으니 자식의 도리로 책임과 본분에 충실하며 살아온 60대와 20대, 30대 세대 간의 격세지감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달래는 주지만 내 청춘을 돌아보는 마음은 무겁다.

"올 추석엔 시아버지가 설거지 다 하마. 내려만 오너라!"

명절이면 인터넷에서 떠도는 고향집 어귀의 플랜카드가 애잔하다. 해마다 명절 무렵에 다루는 다큐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가슴이 찡하다. 손주가 보고파 허리가 굽은 노부모 두 분이 담장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아들의 자동차 소리. 한달음에 뛰어가 맞는 환한 웃음도 아주 잠시. 머물렀다 돌아가는 헤어짐에 서운함을 감추고 트렁크에 참기름, 고춧가루, 유기농야채를 바리바리 담아주곤 차가 안보일 때까지 서서 연신 손을 흔드신다. 돌아서는 얼굴에 푹 파인 주름살이 뭉클하다.

대한민국의 며느님들, 농사짓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고춧가루로 김치나 담가 드십니까? 풋고추가 빨갛게 익어서 그 고춧가루 한 사발 만드느라고 시부모님의 손길이 몇 번이나 가는지 아십니까? 대한민국의 착한 며느님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따뜻함과 풍요로움을 공감하고 소통합시다. 명절증후군이란 말도 안 되는 단어 따윈 버리고 함께 아우르며 따뜻하게 살아봅시다.’ 그렇게 불평불만을 토로하던 내가 가난했지만 소박하고 뜨거운 정이 넘치던 명절 풍경을 그리워하며, 이제는 모든 시어머니들의 대변인이 되어가고 있다. 

‘한가위 음식, 예약만 하세요.’ 광고가 씁쓸하게 와닿는다. 물질만능시대에 도래해 바쁜 식구끼리 한자리에 모여 밥 먹기도 어려워진 현실. 명절연휴이면 해외여행 인파로 메어 터지는 공항 풍경. 콘도에서 차례를 지내는 신세대와 시간의 간격은 내 마음이 좁혀 가리라 마음먹는다. 나의 기도. ‘바라옵건데 조상님들!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주소 드리면 내비게이션 켜시고 경치 좋은 곳으로 명절 나들이 오십시오. 요즘은 외식이 대세이니 주문한 음식이라도 맛있게 드시고 돌아가십시오.’ 시대가 변했음을 내가 먼저 받아드리리라. 올 추석에는 귀요미 외손주 녀석과 옥토끼가 떡방아 찧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겠다. ‘달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