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외강내유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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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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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지켜낸
재외동포들에게
엄마, 친정집 찾아주기
세계한인여성협회 이효정 총재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동포사회 역량이 커졌다. 거주국에서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리더가 늘어나는 등 인적 네트워크가 커졌다. 신장한 동포사회의 역량을 모국과 잘 연결하면,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전에는 동포사회를 지원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모국과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한인여성협회의 이효정 총재는 “한민족공동체 번영을 위한,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위해서라도 해외에서의 강력한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를 가진 재외동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궁화 꽃처럼 강인한 총재의 첫 인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대담 / 본지 발행인 박영숙 (한국여성언론협회 총재)
정리 / 에디터_이선영 lemontree59@kwma.net

피죽을 끓여 먹던 1960년대. 배 삯이나 비행기 값만 달랑 들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남미로 떠난 이민 1세들.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에 갔다가 정착한 이주민들. 이들을 포함해 세계에 흩어져 사는 통칭 한인은 어림잡아 750만 명. 피땀 흘리며 슈퍼마켓이며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자식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기를 어언 60여년. 해외에서 고향을 그리워 하다가 쓸쓸히 이승 저편으로 사라지는 노인들, 외로움에 심지어 자살까지 감행하는 노인들. 한때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살았지만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사이 자식들은 자기가 사는 나라의 국민이 되고. 이들만이 광야를 떠돌고 있다. 조국도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때, 광야에서 외로이 한인 1세대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여성이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효정 세계한인여성회장. 2014년 세계한인여성회 전신인 세계한인여성회장 초대 총재를 역임한데 이어, 지난 2월 단체 명칭이 변경된 뒤 다시 세계한인여성회장에 취임하면서 일성이 “광야에서 떠도는 한인 1세대를 구원하자”는 메시지였다. 너희가 소리치지 않으면 광야의 돌들이 일어나 외치리라. 이런 각오로 한인 귀국 사업에 각오를 다지는 이효정 총재. 고국에 사는 사람들은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며 가족 친지가 만나지만, 광야를 떠도는 추석이 되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 쓸쓸히 눈물어린 탄식만 쏟아내고 있다. 본지가 특집호로 이효정 총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세계한인여성협회란 어떤 단체인가요?

세계한인여성협회는 재외동포 여성들의 현황을 공유하고 미래를 향한 제도적 정책 마련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2014년 설립됐습니다. 2014년 설립 당시는 세계한인여성회장협회(World Korean Women Association) WKWA였습니다만 올해 2월 세계한인여성협회(United World Korean Women) ‘UWKW’ 라는 새 명칭으로 변경,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주요사업으로는 초창기 WKWA가 추구했던 세계한인 여성 글로벌 네트워크 구성과 세계한인여성회관 건립 등입니다. 이중 후자는 세계 한인여성들의 창구 역할을 통해 재외고령한인들이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이른바 ‘친정집 찾아주기’ 운동을 진행하는 단체입니다.

설립 당시부터 총재직을 계속 연임하셨나요?

2014년도 설립 당시 초대 총재를 맡았습니다.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세계한인여성회장단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죠. 3대는 김소희 총재가 맡았습니다. 김 총재는 미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미국 시민권자로 미주총련 수석부회장, 노스캐롤라이나 한인회장, 재미동포 언론인을 역임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한 세계한인 여성 원로리더입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단체 이름이 변경되면서 제가 다시 4대 총재를 맡게 되었습니다.

세계한인여성협회로 명칭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2017년 3대 김소희 총재가 바통을 넘겨 받아 그 해 가을, 제4회 세계한인여성회장단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단체 위상을 높였지만, 내부 파벌 등 갈등 요인으로 인해 어려움 속에서 지난해 제5회 세계한인여성회장단 대회를 치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난 난관을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 창립 5년 만에 명칭을 세계한인여성협회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취임사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창립 시 초심을 담고 있는 이름인 ‘WKWA’를 잘 다독여 단합(United)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단체 영문명에 알파벳 ‘U'를 가장 앞에 표기한 것입니다. 창립 당시 목표인 세계 한인 글로벌 네트워크 구성과 세계한인여성회관 건립 등을 ‘세계한인여성협회(영문약자 UW)’로 새출발하면서 더욱 힘차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결의를 한 것이지요.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요?

한인회가 지금은 많이 자리 잡혀 가고 있지만, 초창기 한인회는 동포 여성 1세대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집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해 오면서 단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런 희생과 봉사가 있었기에 오늘날 한인회가 명맥을 유지하거나 새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1993년부터 독일 뮌헨에 살면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뮌헨 한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독일인 남편이 사업차 2004년 한국에 오게 되어 지금은 국내 체류동포 신분으로 동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재외동포 중에서도 고령동포여성들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령 동포여성문제’ 란 어떤 내용입니까?

고령동포여성은 대부분 80세를 넘긴 노인입니다. 이들에게 인사말로 “어떻게 사세요?” 하고 물으면 지체 없이 ‘죽지 못해 산다’고 답합니다. 연금 등 복지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경제적으론 어렵지 않지만 현지 외로움이 극에 달한 분이 많습니다. 자식이 한국으로 귀국하고 연락이 두절되거나, 외국에서 살면서 외국인으로 귀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들이야 자기가 자란 나라가 고향일 수 있어도, 한인1세대는 수구초심이라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죠. 현지에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분도 참 많습니다. 이들을 구하는 게 고령동포여성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어떤 계기로 있나요?

독일 뮌헨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 한 병원에서, 한국말만 하는 치매노인이 도무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면서 연고자를 찾아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서 치매노인의 연고자를 백방으로 찾아보려 애썼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어요. 그 순간 “아하 친정집이 없어졌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들을 대하면서 아! 저분들을 누가 돌볼 수 있으며 누가 제자리에 서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뇌를 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도 아주 많겠군요?

할 말이 태산 같습니다만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에 아들을 두고 결혼해 독일로 온 유xx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독일 시골에 가서 남편과 자리를 잡은 후 여느 어머니처럼 아들 공부시킬 생각에 독일로 초청했어요. 워낙 똑똑하고 심성이 착한 아들이라 공부해서 사회학박사를 땄고, 뮌헨에서 10년간 생활하면서 교회에서 많은 봉사활동도 했어요. 한국에서 온 손님들 공항픽업부터 숙소 안내까지 뮌헨에서 이 분 신세를 안 진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부지런하고 봉사정신도 강하고 아주 정말 잘 생겼어요.

그러던 중 할머니 독일 남편이 돌아가시고, 아들은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큰 기업체 중견 간부가 되었죠. 아들이 “어머니 제가 꼭 한국으로 모시고 갈게요” 했는데 그만 한국에 돌아와 2년 후 아들이 간경화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겁니다. 며느리는 마음이 돌변해 완전 남이 되었지요.

한국의 아들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던 이 할머니는 결국 뮌헨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돌아가셨어요.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할머니가 아주 잠시 한인회 회장도 했어요. 그래서 한인회 회장이 하얀돌에다 할머니의 이름을 새겨 묘비를 만들고 해마다 할머니 기일에 찾아가는데, 회장님도 벌써 70세가 넘으셨으니 내가 죽으면 누가 돌보느냐고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실제 경험하고 어떻게 그냥 보아 넘길 수 있겠습니까?

애환이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남자 분들은 공감하기 어려울는지 몰라도 여성에게 친정집이란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이에요.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거든요. 그런 고령동포여성이 해외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이렇게 쓸쓸히 숨을 거두고 있단 말입니다. 친정집 없는 고령동포여성들에게도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니냐고요? 정말 대한민국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독일로 한인이 이주해 간 것은 1960년대 초입니다. 광부와 간호사로 갔어요. 당시 한국은 대학을 졸업해도, 간호사 자격증이 있어도 취직하기 매우 어려운 때였잖아요. 그 시절 그 분들이 서독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독일에서 돈을 빌려 그 돈을 한국 경제개발에 썼단 말입니다. 땅 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야 했던 광부들, 밤새 시체를 닦아야 했던 어린 간호사들. 어떻게 그들을 나몰라라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 당시 독일로 간 한인들 나이가 이미 70대를 넘겼어요. 다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가지 못하고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외로 나간 한국인 여성들의 친정은 50여 년 전 딸자식조차 거둘 능력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친정집이 없어 모국에 가보고 싶어도 못 간다는 겁니다. 몹시 가슴 아픈 일이죠.

한국전 이후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도 많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혼 당하여 홀로된 할머니들도 부지기수인데 이들도 고향과 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언젠가는 이들 할머니들도 조국이 품어야 할 겁니다. 저도 한국에 친정집이 없는데, 다행히 부산에 친언니가 살고 있어, 지난 추석명절에는 남편과 함께 언니 집에서 보냈습니다. 여성이라면 친정이 얼마나 그립고 포근한지 다 아시잖아요?

한국이민 초기 역사를 잘 아시죠?

한국 이민사의 뒤안길에는 필설로서는 다 말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세계 속의 한인은 공식 750만 명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60~70년대 이민을 떠났습니다. 당시 이들이 이민 갈 때는 단돈 1,000달러도 허용되지 않아서 당시 이들을 ‘보따리 이민’이라고 불었어요. 낯선 타국에서 누구나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갔죠. 이들은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지키면서 강한 모성애와 높은 교육열로 훌륭한 동포 2세대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쏟아가 나이가 든 겁니다. 고국 땅은 이들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리워도 갈 곳이 없는 쓸쓸한 고령동포여성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이들에게 최소한 한국방문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외동포라서 다문화 가정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정말 매우 그렇습니다. 제가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 여성들도 똑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외국인 며느리에게 따듯한 한국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겁니다. 외국인 며느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고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서둘러 고쳐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문화강국이 될 수 있어요. 제가 작은 힘이나마 2010년 4월 국제로타리 3640지구 다문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4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결혼 이주여성 22쌍을 시작으로 두 차례 합동결혼식을 열어주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참 뜻있는 행사였다고 자부합니다.

큰 상도 받으신 적이 있지요?

2016 글로벌미래창조공헌대상 시상식에서 글로벌교류공헌부문 상을 수상했습니다. 상 이름이 참 길지요? 사회, 문화, 예술, 과학,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미래창조경제 활성화를 통해 건강한 나라 건설과 세계 속에 국위를 떨친 개인과 단체를 선정해 수여하는 상입니다. 외우느라고 한참 걸렸습니다. (웃음)

지금까지도 잘 해오셨지만 각오가 있으시다면?

노후를 외롭게 보내는 1세대 어른들을 정성껏 보살피고 지원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민족 여성의 힘을 결집해 모국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고령여성동포들에게 한국으로 리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줄 것이 훨씬 많습니다. ‘리사이클’이라 할까요? 100년의 이민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 세계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그들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창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전 세계가 놀란 기적의 나라, 한류를 주도하는 모국의 위상 거기에 걸맞게 그들은 움직일 것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일, 그게 제가 해야만 할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몇 살에 독일로 가셨나요?

개인적인 사생활을 다 밝혀야 하네요. 나이 계산은 알아서 하십시오.(웃음)

26세에 싱가포르로 가서 14년 동안 아주 잘 나가는 성공한 사업가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40살 늦깎이 나이에 남편을 만나 독일로 갔지요.

총재 재임기간 가장 큰 보람이 있다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왜 내가 고독하지?’ 고독의 원인조차 못 찾는 사람들이 조직에 들어와 스스로 만족도를 느끼면 화합하고 융화하면서 개인 삶에 자존감을 찾게 됩니다. 특히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가정에만 있다가 사회에 나가면 흐름을 몰라 허덕이게 됩니다. 한국에 돌아왔다가 문화차이를 느끼고, 다시 독일로 돌아간 사람도 많습니다. 돌아가서는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합니다. 한인여성 고향찾아주기 운동은 그런 면에서 자그마한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제가 하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효정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재외동포 모두가 내 가족이라 생각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까지 중요한 자산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정부가 앞장서고 민간 차원에서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준 여성시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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