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어야 잘 사는 시대 ,잘 살아야 잘 죽는 시대
  • 유안나 기자
  • 승인 2019.09.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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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웰다잉(Well-dying)’
당신은 어떡하시겠습니까?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어느 철학자가 던지는 듯한 이 물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졌다. 이른바 100세 시대, 장수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잘 준비하고 잘 맞이해야 할 일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추석을 맞아 성묘를 하면서 한번 쯤 생각하게 되는 죽음, 그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하고자 하는 ‘웰다잉’을 집중 조명했다.
                                                                                   에디터_유안나 lovelyanna00@gmail.com

웰다잉이란?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

 

왠지 ‘죽음’은 낯설고 불편하다. 죽음에 대해 듣거나 말하는 것, 삶과의 이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두렵다. 부모를 떠나보내는 자식의 오열, 그렇게 슬픈 길이기만 한 것일까? 그렇게 기피해야만 하는 것일까?

생로병사(生老病死). 불변의 진리다.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늙고 병들어 죽게 마련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
고, 피할 수도 없다. 이러한 순리요 자연의 이치를 잘 준비하자는 움직임이 바로 웰다잉이다. 다시 말해 웰다잉이란 살아온 날을 스스로 아름답게 정리하며 평안히 삶을 마무리하자는,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하자는 일련의 사전 준비를 의미한다.

웰다잉은 잘 죽는 일, 웰빙은 잘 사는 일. 고로 웰다잉은 웰빙(Well-being)의 반대 개념이다. 웰다잉은 웰빙이 한동안 주목받으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 또한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생겨났다. 고령사회로 오래 사는 노인이 증가하면서, 병상에 몇 년씩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다 보니 반성이 시작됐다. “과연 저 모습이 살아 있는 것인가” 하는 반문이 시작이었다.

잘 사는 것만큼 삶을 잘 마무리 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는 것임과 동시에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한 배려다.

호흡기만 떼면 곧 숨이 끊어질 노인, 회복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노인, 이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자식들
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인들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떡하면 적어도 추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떡하면 자식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죽을 것인가?

중·노년 64% “미리 준비하고 주변 피해 없어야”

지난 달 19일 한국노년학회지(Journal of the Korean GerontologicalSociety)에 ‘웰다잉에 관한 전 국민 인
식조사’ 결과가 실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팀 (이선희·정경희)이 지난해 전국 40세 이상 79세 이하의 중노년층 1,500명을 대상으로 연구 분석한 논문 ‘중노년층의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의 연구 결과다. 논문은 우리나라 중노년 10명 중 6명 이상은 ‘좋은 죽음’(웰다잉)의 조건으로 ‘스스로 준비하면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사 대상자들의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 유형을 3가지로 나눴는데 △가장 많은 유형이 64.0%의 참여자가 속했던 ‘다층적 준비형’유형이었다. 다층적 준비형은 죽음에 대한 준비와 자기결정권,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죽음 등 좋은 죽음의 구성요소를 여러 측면에서 고려하는 유형이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거나, 사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는 인식이 타 유형보다 두드러지게 높은 게 특징이고 주변과 함께 준비하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인식하는 경향 역시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죽음과 임종시 가족에게 부
담이 되지 않는 게 좋은 죽음이라는 인식이 강한 ‘현세중심적 죽음준비형’이 21.2%였고 △죽음 준비에 관심이 적은 ‘소극적 인식형’은 전체 조사 대상자의 14.8%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오래 사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는 인식이 컸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전 유형에서 이 항목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죽음이 비단 노년층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나 죽음을 준비하는 필요성을 느끼는 연령대인 중노년층에서 이미 ‘좋은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다’ 존엄사법 시행 그 후

웰다잉의 대표적인 움직임이 연명의료결정법 발효다. 연명의료결정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의미한다. 원명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며 ‘존엄사법’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2018년 2월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지난달 11일 보건복지부는 '존엄사법'이 도입된 뒤 1년 6개월이 지나 실태조사를 벌여, 법이 시행된 후 존엄사를 선택한 환자는 6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가족의 치료비용 부담을 줄이고,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를 선택한 임종기 환자들이었다. 존엄사법이 도입된 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미 없는 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겠다는 존엄사 의사를 밝히는 경우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나중에 회복하기 어려운 중환자가 되었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결정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한 사람도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자신이 미래에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정 등록기관을 통해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 둘 수 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자신의 의사를 아프지 않을 때, 스스로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건강할 때 작성하겠다는 의
지의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존엄사법 시행중인 해외의 사정은?안락사를 돕는 스위스 비영리 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

우리나라보다 존엄사법을 먼저 받아들이고 실행 중인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유럽에서 의사가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지난 2002년, 룩셈부르크는 2009년 안락사 관련법안을 시행해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조력자살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조력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고통이 개선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확하고 △환자가 심사숙고한 끝에 자발적으로 조력자살을 요청하고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상의해 처치기준을 결정하고 △결과를 지방 검시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반면 같은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영국, 독일 등은 조력자살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최근까지도 조력자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이어졌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영국은 자살법 2조 1항을 통해 타인의 자살, 또는 자살미수 행위를 조장하거나 도운 사람의 형사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환자의 자발적인 요청이 있으면 처벌이 무겁지는 않은 편이다.

다른 국가들에 앞서 조력자살에 해당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대표 국가는 스위스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비영리 단체를 통한 안락사와 이를 돕는 조력 행위를 허용했다. 이후 논쟁이 지속되다가 지난 2006년 연방 대법원 판결로 안락사를 최종 허용하게 된다. 스위스에는 현재 3곳의 안락사 기관이 존재하는데 스위스인이 가장 많이 찾고, 외국인 중에는 독일인들이 뒤를 잇는다.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는 현재까지 2명의 한국인이 해당 기관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2016년, 2018년 각각 1명씩이다. 디그니타스는 경찰관이 입회한 상태에서 약물, 주사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안락사를 실시하며, 건강한 상태에서 스스로 안락사 결정을 내렸다는 증명이 요구된다. 디그니타스는 국적을 불문하고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회원 가입에서 장례를 치르기까지 비용은 한화 1,000만~1,40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회원의 경제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다소 유동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다. 지난해 2018년 말 기준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은 32명이다. 이는 2013년 한국인 가입자 수가 단 3명이었던 것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죽음에게 삶을 묻다, ‘죽음을 공부하자’는 움직임 확산  

“인간은 임종을 눈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같은 질문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성장의 기회’다. 해외여행 가는데도 준비를 하는데 중요한 죽음에 대해선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하다. 책을 통해 공부하고 성찰고 자기만의 철학을 지녔을 때 이승을 떠나는 순간이 두렵지 않게 된다.”

10여 년 전, 한국죽음학회를 출범하고 40년 가까이 한국인의 의식과 죽음을 연구한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의 말이다. 그는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등 죽음과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펴내며 죽음을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그는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정리하고 가는 것이다. 유산 같은 물질적인 정리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가졌던 원망, 원한 등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고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이별한 뒤에야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며 “오랜 시간 죽음을 연구해오며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을 배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죽음에도 학습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고령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에 지난해 말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사단법인 웰다잉시민운동이 공식 출범했다.

웰다잉시민운동은 삶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를 지원하고 웰다잉 전문가 양성, 정보지원센터 운영, 연구 및 정책개발, 입법 지원 등의 사업을 펼치는 단체다. 이들은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고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전하며 웰다잉을 우리사회 문화와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 밖에도 각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웰다잉 관련 프로그램들이 호평가운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장년층의 지지는 물론, 성
별과 연령을 뛰어넘어 죽음을 배우기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 메멘토모리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오늘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현재를 잘 즐기기 위해
서는 죽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죽음연구자들과 웰다잉 전문가들은 우리가 죽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삶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고 말한다.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은 분명 슬프고 힘든 일이다. 즐거운 일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적어도 고통스럽지는 않을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으로 당사자와 가족에게 부담을 주거나 고통스럽게 한다면 존엄한 죽음을 미리 논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웰다잉 움직임은 커져갈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존엄함은 죽음 앞에서 가장 밝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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