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가 피워낸 장미로 전하는 생명 탄생과 존재의 근원
  • 양철승 기자
  • 승인 2019.09.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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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여 죽어버린 장미가 한지를 만나 새 생명을 분출시키다
자유로운 영혼, '생명의 작가' 로즈 박

장미를 너무 좋아해 이름마저 장미가 된 한지조형예술가 로즈 박. 그녀에게 한지와 장미는 생명이자 사랑이며 삶의 본질이자 불멸의 존재다. 20여년 이상 가장 동양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전통 한지를 소재로, 서양적 감성의 상징인 장미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작품활동을 통해 전 세계 화단에서 대체불가의 명성을 얻고 있다. 로즈 박 작가의 예술영역은 한계마저 거부한다. 한지와 오브제의 콜라주, 입체, 조형과 공간설치, 회화와 뉴미디어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예술혼을 불태운다. 오는 10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한지와 명장 세계를 열다’ 전시를 앞두고 있는 그녀의 장미축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에디터_양철승 cabbang1972@gmail.com

한지, 그리고 장미... 그 운명 같은 만남

“장미는 무한한 아름다움이자 여성성을 상징합니다. 수없이 번식하는 생명력이기도 하죠. 그리고 한지는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유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즈 박 작가는 한지와 장미라는 얼핏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두 소재를 융합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예술작 품으로 승화시킨다. 지난 20여년 간 1,00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끝없는 고뇌로 잉태하는 동안 많은 변화와 진화가 있었지만 한지와 장미라는 두 요소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왜 이토록 오랜 기간 한지와 장미를 중심으로 작품세계를 펼쳐 가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로즈 박이 추구하는 ‘생명의 순환’에서 찾을 수 있다. 한지는 물을 마시고 자라나는 나무에서 비롯돼 물에서 만들어지는 물의 종이다. 또 물을 통해 천연 장미 염료로 염색되고, 끝내는 물에 의해 풀어져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가지에서 꺾이는 순간 죽어버린 장미가 한지라는 소울메이트를 만나 그녀의 작품을 통해 새 생명을 얻으면서 생명의 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한지와의 운명 같은 만남은 그녀가 어릴 적 이뤄졌다. “아버님이 일본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당시 어머님께서 한지를 많이 다루셨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한지와 접하게 됐고, 한지를 가지고 놀면서 한지가 가진 다채로운 특징과 성질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 오래토록 한지와의 인연이 이어져갈 것이라는 건 알지 못했지만 말이 에요. 돌이켜보면 천 년의 수명을 가진 질기고 질긴 한지의 특성이 제 삶에 녹아든 것 같아요.”

로즈 박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일반 한지를 작품에 사용하지 않는다. 손수 장미를 숙성시켜 천연 염료를 만들고, 그녀의 손으로 직접 염색한 한지만이 충만한 생명력으로 피어오를 자격을 얻는다. 색감의 미세한 차이를 구현하기 위해 장미를 말리고, 썩히고, 생화를 삶아내기도 한다. 붉은색 이외의 색상들 역시 예외 없이 꽃과 나무 같은 자연에서 얻은 천연 염료로 염색하고 있다.

“백 번의 손길을 거쳐야만 한 장의 한지가 완성되고, 여기에 천 번의 손길이 더해져야 비로소 한 송이의 한지 장미가 피어납니다.”

때로는 한 송이 장미로, 때로는 만개한 수천 송이 장미 다발로, 때로는 사람보다도 큰 거대한 장미 꽃송이로 창조되는 로즈 박의 작품들이 오히려 생화보다 강력한 생명의 기운을 발산하는 것은 이처럼 작가가 혼신을 다해 불어넣은 생명력 때문이리라. 로즈 박이 자칭반 타칭반 생명의 작가로 불리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고정관념과 경계를 허무는 융합의 예술가

즈 박의 예술세계는 경계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메시지와 철학을 하나의 작품으로 구체화하는데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융합을 시도한다. 다양한 오브제와 조형물이 동원되기도 하고, 회화나 설치미술과 함께 입체 공간 속에 녹여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故) 백남준 선생이 그러했듯 빛과 소리, 향기, 내레이션, 미디어아트를 활용해 작품에 심오함을 더하는 동시에 마법에 가까운 변주를 일으키기도 한다. 심지어 로즈 박 스스로 작품을 입거나 작품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침으로써 미완의 작품이 완성되기도 한다. 그녀가 곧 작품의 일부이고, 작품이 곧 그녀가 되는 물아일체의 예술적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로즈 박은 사실, 한지조형예술가라는 하나의 타이틀로는 설명이 턱없이  모자라다. 시인과 퍼포먼스 행위예술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 고령 대가야체험축제에서 비보이 팀과의 환상적인 합동 공연이 유수 언론매체를 장식했을 만큼 세 분야 모두에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문학적 깊이도 심오해 여러 문학매체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문화칼럼니스트로서도 남다른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에게 내재돼 있는 방대한 예술 감성을 모두 쏟아내기에는 하나의 예술분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한지 조형, 시, 행위예술, 칼럼 모두 창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일맥상통하지만 한 가지 재주조차 인정받기 힘든 범인들에게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날 정도다.

“아마도 제가 가진 풍부한 예술적 DNA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 같아요. 한지를 잘 다루셨던 어머님에 더해 아버님도 시와 그림, 음악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셨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은 선(線)적인 요소나 색채감만으로는 따라할 수 없어요. 단순한 손재주로 장미의 형태를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제 자랑 같지만 예술적 창의성과 함께 문학, 철학, 역사를 아우르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로즈 박의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예술작품은 그녀 이전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다. 국내외 예술계가 로즈 박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결과, 로즈 박은 지난 2011년 국가브랜드위원회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한지 조형작가’로 선정됐고, 같은 해 세계 7대 아트쇼로 꼽히는 뉴욕 스콥 아트 페어전에서는 호평 속에 화단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2년에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한국여성아트페스티벌(Korea women’s art festival) 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틀을 깨는 독창적 예술성과 한지를 이용해 한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2016년 국립극장 하늘극장의 6m 한지 조형, 2017년 가톨릭 성의회관의 100m 한지 무대는 아직도 설치미술의 혁신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렇게 로즈 박은 예술의 경계를 넘어선 것처럼 국가의 경계마저 넘나들며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홍콩 등지에서 200여회의 전시와 250회 이상의 퍼포먼스 공연을 쉴 틈 없이 이어왔다. 지난 9월 1일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된 ‘종이 충격전(Paper Shock)’에서도 로즈 박은 자신의 이름값을 여실히 증명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4.2m의 초대형 한지 장미 작품을 통해 글자그대로 관람객들을 충격 속에 몰아넣은 것이다. 그녀는 이 초대형 장미 위에 영상을 투사하고 빛과 어둠, 강렬한 사운드를 곁들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여성만이 가진 생명 탄생의 비밀을 극대화된 미(美)로 표현했다. 전시회장을 찾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경이로움에 감탄을 자아내며 발길을 멈춰 세우는 것뿐이었다.

 

 

목숨하고도 바꿀 수 있는 열정을 작품에 담아야

즈 박은 진정한 예술가라면 작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설령 목숨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제 작품은 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얻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에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정말 목숨하고 바꿀 만큼 혼과 열정을 쏟았는지 제 자신에게 되묻죠.”

낮지만 강한 어조로 말하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시회 팸플릿이나 언론 인터뷰에 등장하는 로즈 박의 모든 사진과 무대 위의 모습에서 보인 일관된 공통점의 근원을 찾은 듯 했다. 활짝 웃는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강한 자신감과 에너지가 그것이다. 어떻게 모든 사진에서 그토록 당당한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혼을 쏟아부었기에 자신의 작품과 무대에서 무한히 자신이 넘쳤 던 것이다.

그래서 로즈 박은 예술가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도 모든 것을 걸라고 주문한다. 또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로 틀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자유로운 사고에는 성실함 이 겸비돼야 해요. 성실함 없는 자유로운 사고만으로 탄생한 작품은 혼이 담기지 않은 단순한 일탈과 파격에 불과 하죠. 아무도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알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요. 눈 앞의 현재만 생각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돼야 합니다. 저 역시 천 년의 종이인 한지처럼 천 년 후를 생각하면서 제 작품을 구상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어요. 그렇게 천 년 후에도 후손들이 제 작품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입니다.”

아직까지 로즈 박의 작품이 전해주는 충격적 감동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그렇다면 오는 10월 서울 인사동으로 발길을 잡아보자. 경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한지와 명장 세계를 열다’ 전시를 통해 그녀의 작품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어쩌면 로즈 박과 함께하는 이 전시회에서 장미의 꽃말처럼 ‘얻을 수 없는 불가능한 사랑’을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로즈 박 작가 이력

  • 2019.10  경인미술관 ‘한지와 명장 세계를 열다’ (예정)
  • 2019      양평군립미술관 ‘종이충격전’
  • 2019      스타벅스 홍콩, 2018 스타벅스 미국 협업
  • 2019      성주생명문화축제 주제관 전시
  • 2018      갤러리 다미아 초대전, 버질아메리카 단체전
  • 2017      원효깨달음박물관 개관 초대전, 성의회관 100m 한지 작품·조형 설치,  진도국립국악원 ‘조우’ 무대 한지 디자인 협업
  • 2016      버질아메리카·스코츠데일 초대전, 국립극장 하늘극장 20피트 한지 조형 설치
  • 2015      디노체 무대 설치전, 가톨릭 성애병원 100m 무대작품 설치
  • 2014      문화재보호재단 ‘한글세상을 물들이다’ 전시, 한국문화재단 초대 기획전시
  • 2013      울산현대예술관 현대미술관 초대 개인전, 문화재보호재단 인천공항 전시
  • 2012      국제펜대회 로즈박특별초대전, 한국여성미술제 올해의 우수작가 초대 그룹전
  • 2011      한국을 대표하는 한지조형작가 선정, 뉴욕 스콥 아트페어전
  • 2010      광주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아트페어
  • 2010      원주 한지문화제 세계종이조형작가협회(IAPMA) 회원 초대전
  • 2009      상하이 국제 아트페스티벌 등 개인전 및 국내외 초대전 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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