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가족같이 최선을 다했죠"
  • 배세연 기자
  • 승인 2019.09.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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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시니어들의 희망 아이콘!
학교 위탁급식 전문기업 ㈜우영에프엔디 조성숙 대표

 

상품개발부장, 카드 고객관계관리(CRM) 팀장, 상현동·역삼동·분당·이매동 지점장. 지난 1979년부터 2015년까지 36년간 외환은행에 몸담았던 우영에프앤디 조성숙 대표의 이력이다. 조 대표는 퇴직을 2년 앞둔 2013년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집안일보다는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인지 퇴직 후에도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조 대표는 문득 남편이 운영하고 있던 구내식당(단체급식) 사업을 떠 올렸고, 무리한 창업 대신 남편과 함께 음식사업으로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1년 6개월만에 급식기업으로 우뚝선 조 대표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에디터_배세연 pianobsy@hanmail.net
자료제공_㈜우영에프앤디

외환은행 지점장의 인생 2막 도전

“결심이 선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어요. 퇴직 1년전 서울대학교 식품영양산업(FNP) CEO 1년 과정에 등록한 뒤 은행 퇴근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식품업계 대표들과 함께 공부하며 사업가로서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FNP 수료 후 조 대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신청했다. 한 회사의 대표가 된다는 책임감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철학관을 찾아 사업 운을 알아 본 결과, 남편보다는 조 대표에게 운이 더 트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다. 꼭 믿어서가 아니라 좋다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 대표의 남편이 반월공단에서 운영하던 아파트형 공장 구내식당은 처음 인수했던 2011년만 해도 하루 500~600명의 고객이 찾아왔지만 1층에 전문식당과 단체급식형 식당이 생기면서 점차 고객수가 줄어들어 200명 내외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반월공단 입주기업의 주축을 이뤘던 자동차 관련 부품기업들이 경기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화성이나 평택 등지로 회사를 이전하는 경우도 많아 앞날은 더욱 불투명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조 대표는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는 평범하지만 불변의 진리를 믿고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자금회수가 안정적인 학교급식 시장이었다.

“곧바로 입찰 기준에 맞춰 사업체계를 정비했어요.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실적을 채우지 못했을 때 여러 회사들을 직접 방문해 실적을 올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모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2017년 11월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식품제조가공업 시설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투자를 단행해 이듬해 1월 우영에프앤디가 세상에 탄생했습니다.”

 

진정성과 성실함으로 고객을 감동시키다

학교급식은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학교 식당에서 직접 조리를 하는 위탁운영과 외부에서 조리한 요리를 학교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벌크형(도시락) 이동급식이 그것이다. 우영에프앤디는 후자에 속한다. 그것도 하루 최대 2,500식을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라 조 대표는 고등학교 기숙사를 타깃으로 입찰을 제안했다. 제안서 작성과 프레젠테이션 자체는 조 대표에게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은행 본점 마케팅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제안서나 기획안를 만들 기회가 잦았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연수도 자주 진행하며 체득한 노하우 덕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진실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면 반드시 알아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회사를 소개했어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가족같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정성을 전하는데 주력했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첫 도전이었음에도 조 대표의 진정성에 감응한 3곳의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벌크형 이동급식 업체로 우영에프앤디를 선택했다. 우영에프앤디가 학교위탁급식 전문기업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후 조 대표는 성심성의를 다해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그 노력은 올해 재계약으로 이어졌다.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급식의 품질을 높이고, 위생적인 운영에도 만전을 기했던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이 같은 우영에프앤디의 역량이 업계에 소문나면서 올해 3개 학교에서 추가 낙찰을 받는 쾌거도 올렸다.

현재 우영에프앤디는 학교급식과 산업체 이동급식, 주문형 도시락 판매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고교 기숙사 5곳과 단기간 급식이 필요한 학교들을 고객으로 확보했으며, 산업체의 경우 10개사 정도와 거래 중이다. 하지만 조 대표는 추가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 ‘나라 장터’를 통해 회사로부터 30㎞ 이내의 학교를 대상으로 입찰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안산 반월공단 내 자체 식당을 보유하지 않은 100명 이하 기업들을 대상으로 산업체 이동급식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다.

조 대표는 회사가 차츰 안정화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사회 환원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제안설명회를 마치고 낙찰의 기쁨을 맛 볼 때를 제외하면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우영에프앤디의 대표가 된 이후 가장 큰 보람이에요. 얼마 전에도 재활치료를 받는 장애아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과 협력해 작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했는데 너무나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퇴직 4~5년 전부터 관심 분야를 정해 공부하세요!

물론 대표로서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 특히 조 대표는 직원들의 실수로 예기치 않게 고객에게 불편을 끼쳤을 때가 내심 가장 힘들다고 한다. “한번은 배송기사가 식기류를 챙기면서 수저세트를 두고 가서는 급하게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곧바로 수저세트를 가지고 학교로 찾아갔지만 학생들은 20분 이상이나 줄을 선채 급식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 난감하 더라고요. 이 사실을 알게 된 교장선생님이 대표인 제게 전화를 해서 주의를 주었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36년간을 대기업 조직에서 당찬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온 조성숙 대표. 이제는 어엿한 사업가로서 어떤 꿈을 키워가고 있을까. 조 대표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했다.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 은퇴 이후 직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규모가 크던 작던 사업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자신처럼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예비 여성 기업가들에게 조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퇴직 4~5년 전부터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를 정해서 미리미리 공부를 해놓으라고 얘기 해주고 싶어요. 저만해도 은행 지점장 신분을 유지한 채 기업인들이 대부분인 서울대 FNP 과정을 수료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사업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관련기업 대표들과 관계를 맺었던 것이 너무나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1년 정도에 그쳤지만 4~5년을 미리 준비한다면 훨씬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겁니다.”

조 대표는 이어 비즈니스는 많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 속에 성공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운동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 대표의 경우 천성적으로 운동을 좋아해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스포츠센터에서 헬스와 수영을 하고 나서야 회사로 출근을 한다. 월 4회 정도는 골프동호회 월례회에 나가고 있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승마에도 손을 댔다.

“운동은 제가 회사를 경영하는데 활력소가 돼요. 사업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은데 운동으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고 있죠. 또 운동은 업계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수단입니다. 운동을 잘 하면 사업에 도움이 돼요. 직장 생활에서 얻은 편안한 대인관계 형성 능력에 더해 골프와 같은 운동을 함께 하며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제 장점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80세까지 현역에서 일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살고 싶어

조 대표는 늦깎이 야간 대학생 시절,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시간강사 남편을 친구 소개로 만나 29살에 결혼했다. 은행에서 인정받기 위해 아들 1명만 낳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남편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베푸는 멋진 사람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엄마와 부인 역할을 제대로 못했는데 남편이 그 빈자리를 다 메꿔줬죠. 지금도 제가 새벽에 운동을 나갈 때면 과일을 싸주고, 휴일에는 가족에게 일품요리를 만들어서 먹이는 게 취미예요.”

대화가 사업에서 가족으로 넘어가자 조 대표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팔불출처럼 남편 이야기를 이어갔다. “출산했을 때는 제 몸조리와 아이를 돌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줬어요. 그런 덕분에 아들이 잘 성장해서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영주권자로서 며느리와 손녀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가족 자랑을 했나요?” (웃음)

남편의 외조로 보람된 36년간의 직장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남편을 사업 파트너로 삼아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조 대표는 오래토록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요즘 한 가지 고민에 빠져 있다. 노동집약적인 현재의 사업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사업을 모색할 생각이에요. 여건이 허락한다면 80세까 지 현역에서 일을 하면서 매력적인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좋아하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시간이 나면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소중한 추억을 쌓으면서 말이죠. 인생 뭐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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