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나는 하나예요.”
  • 황인정 기자
  • 승인 2019.09.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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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할 뿐
연습벌레 국악인 ‘정미야’

 

사람들은 누구나 꿈꾼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를. 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호구지책 때문에 하고 싶은 일과 돈벌이를 따로 하고 살게 마련이다.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는 건 더욱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반드시 잘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한꺼번에 이뤄내며 사는 국악인이 있다. 어릴 적 어머니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자라다가, 그 일이 천박하다 싶어 잠시 떠났던 여인, 일시 배회를 정리하고는 몹시 빠져 사는 여인, 어느덧 50줄에 접어들어서는 ‘소리는 자신과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여인. 국악인 정미야를 만나 그의 행복한 삶을 들어보았다.

에디터_황인정 injung6262@gmail.com


 

국악을 전공하게 된 배경은?

집안이 4대째 국악을 했다. 어릴 적 엄마는 내게 소리 하길 원하셨다. 하지만 싫었다. 왠지 모르게 소리가 천하게 여겨졌다. 당연히 소리꾼 엄마의 삶이 귀히 보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노래는 잘했다. 엄마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흥얼거렸고, 저절로 배워가고 있었지만, 꿈은 따로 있었다. 가수가 근사해 보였다. 학창시절 작곡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배우 하겠다고 학원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일시 트로트를 하게 됐다. 소리를 하다 보니 목소리가 트로트에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트로트 가수로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려니 무대의상이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류 같은 느낌이랄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소리를 다시 해야겠다 싶어 소리를 시작했다. 긴 방황을 끝내고 20대 들어서야 어려서 배웠던 소리를 나의 평생 길로 정하게 되었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전공이 서도소리라고 들었다. 서도소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어려서 집에서 접한 소리는 남도소리다. 당연히 소리 하면 남도소리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서도소리를 배우다보니 맑고 청아한 소리가 좋았다. 마음껏 지르는 직구와 같은 남도소리와 달리 서도소리는 감아서 절제하는 소리다. 서도소리를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소리가 아주 고급지게 들리면서 선비 정서를 느끼게 되더라. 남도가 한으로 폭발하는 소리라면, 서도는 속으로 삭히면서 흐느끼는 소리다.

국악인으로서 가장 행복하거나 보람될 때는 언제인지?

무대에 서는 것보다 연습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수업을 받으며 배울 때 아주 설렌다. 잘 못 해서 혼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습할 때가 더없이 재밌다. 물론 공연도 즐겁다.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그래서 연습에 많은 욕심을 낸다. 밤새도록 소리를 하고, 아침이 되면 또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소리를 좋아했다. 욕심만으로는 그렇게 열정을 가질 수 없었을 거다. 아마도 그러고 싶은 욕구가 나를 꿈틀거리게 했을 것으로 본다.

국가무형문화재 예능 이수자로서 삶은 어떠한가?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지금보다 더욱 소리를 잘 하고 싶은 갈망이 크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소리에 대한 욕심이 커져간다. 특히 꾸준히 연습을 하고 난 뒤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다 보면 못마땅한 부분이 정말 많다. 죽을 때까지 못마땅하고 자기만족이 없으니 계속 연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에 관한 한 지금도 늘 목마르고 배가 고프다. 학생들이 가끔 선생님도 연습하느냐고 묻는다. 사실 학생들보다 더 많이 연습하는 것 같다. 정말 잘하고 싶으니까.

좋아하는 명창은 있다면?

남도창법을 쓰면서 경기소리를 하시는 김영임 선생님이다. 그분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너무나 설렌다. 선생님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 가슴이 벅찬다. 선생님과 작은 인연이 있다. 20년 전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선생님이 무대에 설 기회를 주셨다. 아리랑TV 무대에 선생님과 함께 섰다. 선생님이 메인이었고, 나와 다른 한 명이 뒤에서 서브를 했다. 그게 TV 첫 출연이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선생님과 함께 한 유일한 무대 기억이다.

국악학원 원장으로서 바람은?

아무래도 후학 양성이다. 제자들이 나를 롤모델로 삼을 만큼. 이미지나 마음까지 닮게 하고 싶다. 특히 후배들이 나를 보고 열심히만 하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가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

노래를 한다. 사실 계속 노래를 한다. 딱히 여가시간이랄 것이 없이 사는데, 시간이 남으면 늘 노래다. 가끔 집 근처 관악산을 가는데 가면서도 소리를 하거나 녹음된 내 소리를 듣는다. 등산하면서 소리하고 들으면 더 집중이 돼서 즐겁다. 운전할 때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노래하고 녹음하고 듣고 실망하고, 또 연습하고 노래하고 녹음하고 듣고 실망한다. 무한반복이다.

생각해보면 내게 소리는 나와 한 몸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내게는 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진다. 주말까지 거의 일주일 내내 수업이 있어도 전혀 힘들지 않은 이유다.

한국여성언론협회와의 인연, 홍보대사로서의 활동 및 포부는?

내가 너무 소리만 하고 사니까 남편이 소리에서 좀 벗어나라고 하더라. 봉사하면서 사회활동을 좀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면서 봉사활동을 할 만한 좋은 단체, 멋진 분이 있다며 한국여성언론협회를 소개했다. 모임에 나가면서 지난날 너무 가족만 챙겼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더 늦기 전에 소외된 계층을 위한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총재님이 좋은 마인드로 협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보며 나도 도움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나를 참여시켜 줘서 지금은 열 일 제치고 참석한다. 협회 홍보대사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계획 및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박사 과정 중인데 소리를 좀 더 잘 하고 싶다. 명창으로서의 지성도 쌓고 싶다. 소리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더욱더 교육을 받고자 한다. 소리가 첫 번째이지만 소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이론도 잘 무장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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