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난민정책, 아직은 설익은 국민 수준
  • 양철승 기자
  • 승인 2019.09.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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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 난민 사태, 제노포비아 되풀이하지 말아야”
외교부 라이베리아 비자 면제 협정 정지 두고 쓴 소리

최근 외교부가 라이베리아와의 ‘비자 면제협정’을 정지했다. 정부는 비자 면제제도를 악용해 입국한 라이베리아인들의 과도한 난민 신청, 반사회적 범죄 증가에 따른 공공질서 유지 차원이라 설명했지만 아무래도 마뜩찮다. 우리나라의 비인도적 난민 정책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아프리카의 난민국 라이베리아와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하건 말건, 대부분의 국민들은 먼 산 구경하듯 바라보기 십상이다. 구체적으로 몸에 와 닿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이 뉴스를 남다르게 바라보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이영호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장. 맞닥뜨린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얼굴에 깊은 그림자기 드리워 있었다.

에디터_양철승 cabbang1972@gmail.com

 

그가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지난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금세기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예멘 내전을 온몸으로 겪었던 예멘 대사 출신이다. 그는 예멘 시민들의 탈출 러시를 몸소 체험하면서 난민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정통 외교관료로서 쌓아온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현재 전북의 국제교류활성화와 글로벌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 센터장. 외교부의 라이베리아 비자 면제 협정 정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매서웠다. 북한 이탈주민이 난민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의 난민 정책, 설익어 제욕심에 겨운 국민수준을 바라보는 그의 가슴이 시릴 정도였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돌아보며 우리나라 난민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5,000만 국민을 분열시킨 500명의 난민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소속,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합리적 근거를 가진 공포 때문에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 공포를 이유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 유엔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에 명시된 난민의 정의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태국 인구와 맞먹는 무려 7,080만 명의 사람들이 타국에서 난민 또는 강제 실향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계 인구 108명 중 1명이 집을 잃고 피란 상태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예멘 대사를 지냈던 이영호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장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러한 난민 문제에서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독일의 경우 지난 2015년에만 12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을 받아들여 약 90만 명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2017년에도 18만5,000여 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죠. 반면 우리나라는 1991년 난민협약에 가입해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았지만 지난 5월까지 신청자 수는 4만9,000여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이중 난민으로 인정받아 보호받고 있는 비율은 세계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인 3.9%, 연장 가능한 1년 간 국내 체류 자격을 주는 인도적 체류자를 포함해도 12.3% 정도예요. 정말 극소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2015년 3월 발발한 예멘 내전을 피해 제주특별자치도로 무비자로 입국한 예멘인 500여 명이 동시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이다. 익히 잘 알려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가 그 사례다.

이들의 수용을 놓고 우리 사회는 극렬한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난민 수용 찬성측은 우리나라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인 만큼 인권과 인도주의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이는 매우 당연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반대측 주장은 매우 거셌다. 브로커 개입설, 가짜 난민설, 치안·경제 악화설 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국민 불안은 증폭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난민 신청 허가 폐지’ 청원까지 올라왔다. 무려 70만 명의 시민이 동의했다.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이 ‘난민은 곧 잠재적 범죄자’라는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로 이어져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예멘 난민들은 일순간 제주의 불청객으로 전락했습니다. 과격 이슬람 테러단체 연계 가능성, 향정신성 준마약류 까트(Khat, Qat) 음용, 무슬림 문화에 대한 인식차이 등 일부 부정적 언론보도도 이방인에 대한 배척과 편견을 키우는데 일조했죠. 포용과 인간존중의 인도주의 목소리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희가 정말 건강한 사회였다면 단지 500여 명의 난민 신청이 5,000만 국민에게 이토록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호주의 백호주의를 어찌 비난할 것인가? 우리 민족은 단일 혈통이므로 어림없다는 생각은 가당한 것인가? 양심에 비추어 죽음을 피해 제주도에 온 난민을 과연 내치는 게 타당한다. 과도하게 비뚤어진 민족주의는 아닌가?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전 대사가 바라보는 최근의 라이베리아 비자 면제 협정 정지는 더욱 아프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지의 이유와 방식이 예멘 사태 때와 판박이였던 것이다.

 

난민, 이주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필요

“저는 예멘 내전 발발 당시 아덴만 해역에 파병된 해군 청해부대가 운용하고 있는 ‘왕건함’으로 대사관을 재배치해 업무를 수행하면서, 4개월간 역대 최초의 함상대사관을 책임진 바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멘 국민들의 고통을 바로 곁에서 목도했죠. 최근 발표된 유엔 전문가들의 조사에서도 예멘 내전을 통해 무분별한 폭격과 공습, 총격, 살인, 구금, 고문, 성범죄 등 무수한 반인륜적 행위가 자행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를 피해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 예멘 국민이 7만여 명에 이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의 특별한 시기에 고향을 더욱 그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민족 고유 명절인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지난해의 제주 예멘 난민 사태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예멘 내전 상황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예멘은 약 3,000년 전 솔로몬 왕과의 교류로 유명한 시바여왕 왕국의 수도가 있었던 중동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초콜릿 맛이 감도는 원조 모카커피의 생산지이며, 농업 경작과 고대문명이 발달해 한때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맞서 용감히 대항했던 석해균 선장의 활약과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더 유명하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예멘은 남북분단 상태에서 1994년 통일을 이룬 국가로서 우리에게 남다른 시사점을 주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런 예멘과 제주도는 직선거리로 8,000㎞ 가까이 떨어져 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사회적·문화적 접점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난해 이례적 숫자의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들어와 대거 난민 지위를 신청하게 된 걸까?

“기존 서구 유럽 선진국들의 난민 수용 심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난민법 시행 초기단계였던 우리나라가 난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됐습니다. 또한 2017년 12월 예멘인들의 무비자 체류가 가능했던 말레이시아와 제주도를 잇는 직항편이 개통되면서 제주로의 무비자 입국로가 열린 것도 예멘 난민들이 제주를 선택했던 한 요인으로 판단됩니다.”

국민들의 의견 대립 속에 이뤄진 법무부의 예멘 난민 심사는 지난해 12월 최종 매조지됐다. 후티반군에 의해 납치나 살해 협박을 받았고, 향후에도 정치적 박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 언론인 2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412명은 추후 심사를 통해 기간연장이 가능한 1년간의 인도적 체류 허가, 65명은 단순 불인정 처리됐다. 이 센터장은 낮은 난민 인정률이라는 비판 여론도 있었지만 대다수 예멘인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 조치가 이뤄져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탈북민이라는 난민 아닌 난민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국제법상 난민으로 분류되는 탈북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난민법과 난민협약이 반드시 필요한 국가입니다.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번 라이베리아 난민 이슈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제주 난민 사태를 시금석으로 삼아 제노포비아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겁니다. 아울러 외국인 난민에 더해 다문화 가정과 이주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립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삼락농정’으로 농업 한류 일으킬 것

난민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뒤로하고 이 센터장의 현재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 센터장은 지난 2017년 전북국제교류센터의 제2대 센터장으로 선임돼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정통 외교관료 출신의 지자체 출연기관장 선임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던 데다, 전북에 연고조차 없었던 인물이 낙점됐다는 점에서 아직도 파격으로 회자되는 인사였다. 그만큼 전북도는 이 센터장의 역량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외무고시(22기) 합격 후, 외교부 동남아통상과장, 재외국민보호과장, 재외동포영사국 심의관을 거쳐 홍콩 부총영사, 북경 총영사, 주 예멘 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축적한 풍부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전북의 민간 교류협력과 2023년 새만금 세계잼버리의 성공적 개최에 최적이라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전북국제교류센터는 전북의 공공외교 선도기관으로 지난 2015년 출범 이후 국제교류 네트워크사업, 도민 글로벌 역량 강화사업, 외국인·유학생 지원 사업 등 민간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전북도에게 민간 국제교류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출범 4년을 맞은 센터가 걸음마 단계를 지나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만큼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들이 지속 창출될 수 있는 굳건한 기반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지난 2년여 간 이 센터장이 가장 많은 공을 들인 프로젝트 중 하나는 바로 ‘삼락(三樂)농정’이다. 전북도의 핵심 도정정책인 삼락농정은 농민, 농업, 농촌이 모두 즐거운 농정을 표방한다. 이를 위해 농민의 경영안정과 복지·생활편익시설 확충, 제값 받는 농업 생산·유통체계 마련, 많은 사람들이 찾는 활력 넘치는 농촌을 3대 모토로 삼고 있다.

“오랜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9월 전북의 삼락농정 모델에 기반한 ‘전북-네팔 농촌 역량 강화 사업’이 외교부 공적개발원조(ODA) 프로젝트에 선정됐습니다. 오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국비 40억여 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을 통해 센터는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와 함께 네팔에 삼락농정모델 기반 농업기술을 전수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전북이 가진 농업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농업분야의 한류를 선도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 이영호 센터장 프로필
1984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8 외무부 입무 (외무고시 22기)
1992 미국 터프츠대학 외교법률대학원(플래쳐스쿨) 연수
1997 남아공 1등 서기관
2003 영국 1등 서기관 겸 영사
2007 홍콩 부총영사
2009 중국대사관 베이징 총영사
2013 예멘대사
2017 재한동포총연합회·국제인적자원개발전문가협회 고문
2017 외교부 외교문서공개 예비심사위원
2017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2019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
2017~현재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장
□ 서훈
1993 외무부 장관 표창
2003 국무총리 표장
2006 근정포장
2011 대통령 표창
2012 외교부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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