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다잉(well-dying)을 준비하는 사람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찬송가를 부르며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고인에 대한 애도와 함께 죽음이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가족과 지인들이 평소 이 여사가 좋아하던 시편 23편을 낭송한 뒤 찬송가를 부르자, 이 여사는 따라 부르려고 입술을 움직이다가 이내 마지막 호흡을 했다고 한다. 어둠이 짙게 깔리는 찰나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저녁노을, 잔잔히 울리는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이 있다. 루게릭병을 앓다 숨진 모리 슈워츠 미국 브랜다이스대 사회학과 교수 실화다. 모리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서너 달 동안 매주 화요일 문병을 온 제자 미치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방송가이자 칼럼니스트로 바빴던 미치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죽음의 의미와 죽음에 임하는 자세를 생각할 수 있어야 잘 살 수 있다는 사실,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떠들어대는 그 어떤 것보다 타인을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걸 잊지 말라는 라틴어 경구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인생에서 정말 가치가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모리는 그것을 타인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할 시간이 없다. 사랑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죽음을 앞둔 우리는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있고, 용서를 구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 결국 잘 죽는다는 것(well-dying)은 잘 산다는 것(well-being)과 통한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일부라고 했던가!
정부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의 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년)을 최근 발표했다. 종합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호스피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10명 가운데 2명 정도만 충당됐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사실상 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말기 암 환자는 10명 중 1명만이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하고 있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병원들이 호스피스 시설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호스피스 서비스 대기자가 워낙 많아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가길 기다리다가 대부분 사망했다. 이번 종합계획으로 내년부터 호스피스 팀이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맞춤형 호스피스 제도가 도입된다. 국립암센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 60%가 가족이 지켜보는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하니 앞으로 집에서 임종을 지켜볼 가능성은 훨씬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잘 사는 것(well-being)은 잘 죽는 것(well-dying)으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는 판단, 웰다잉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없이는 참된 웰빙이 불가능하기 판단에 기인한다. 잘 살다가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거나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 앞에 서게 되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된 두 개가 아니라 손등과 손바닥처럼 한 인생의 양면이다. 언제 죽음을 맞이해도 잘 감당할 수 있는 삶이 참된 웰빙이며, 웰빙의 아름다운 마무리요 결과가 웰다잉이 아니겠는가?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얼마 전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醫) 오쓰 슈이치가 저술한 책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가 출판되어 일본과 한국에서 100만 권이 넘게 팔려나갔다. 이 베스트셀러의 내용은 죽음의 문턱에서 남긴 말들을 정리한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평소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의 마음을 글이나 말로 표현했더라면, 좀 더 겸손하게 인생을 살았더라면, 건강을 조금이라도 소중하게 여겼더라면, 신의 가르침을 미리 알았더라면, 죽도록 일만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말하는 인생의 후회거리는 사실 우리가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00년부터 우리의 화두는 웰빙(well-being)에 맞추어져 왔다. 어떻게 하면 삶을 더 풍요롭고 더 인간답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웰빙에서 웰다잉(well-dying)으로 관심이 크게 옮겨갔다. 이는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인생의 마무리를 밝고 아름답고 품위 있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지난해 소위 ‘웰다잉법’이 발효된 것은 매우 다행이다. 이 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의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법이 나와야 할 만큼 이제 개인의 죽음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한 방법으로 종교생활도 가능하다. 가령 기독교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신행의 근본 방식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했다. 자비와 내가 한 몸처럼 되는 것을 마지막 단계로 보았다. 모든 종교는 내세의 희망을 얘기한다. 내세는 사랑과 자비를 베푼 자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잘 살자, 그리고 잘 죽자! 행복한 죽음 곧 웰다잉을 위해,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 이런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사는 것을 ‘웰에이징(well-aging)’이라고 한다. 나이를 잘 먹어간다는 뜻이다. 우리 그리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