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문화원 뒤편 어린 백송 4년 걸려 이사가는 사연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9.08.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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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고 쓰린 역사라도 보존해야죠"

심원정 터 위 작은 나무 한 그루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4가에 소재한 용산문화원. 용산문화원은 1997년 서울 특별시장의 설립인가를 받아 문화관광부, 서울시, 용산구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용산지역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비영리법인이다. 그 뒤편에는 작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이 언덕은 소위‘심원정터’로 불리는 곳으로써, 몇 그루의 나무들이 이곳에 삼삼오오 모여 자생하고 있다. 인위적인 작업을 거치지 않아 나무들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상태로 서로 어우러져 있다.

그 중 다른 나무들에 비해 비교적 왜소해 보이는 나무 하나가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웅장한 나무(보호수 서3-8) 옆에 붙어 있어서 그런지 그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붙어있는 이 두 나무를 멀리서 함께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소한 나무는 마치 이쑤시개처럼 보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두 나무는 서로 간격이 너무 붙어 있어, 뿌리가 많이 얽혀있을 것으로 용산 구청은 추정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두 나무 모두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 왜소한 나무는 더 이상 크지 못하고 얼마 못가 죽음을 맞이하게 됨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자연적으로 났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법한 볼품없는 나무. 그러나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용산 구청은 발벗고 나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나무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연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에디터_이선영 lemontree59@kwma.net

이 작은 나무의 가치


1962년에 지정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6호는 500년에 가까운 수명을 가진 백송이었다. 이 나무는 본래 원효로 사유지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용산구는 이 나무를 구입하여 용산문화원 뒤편으로 옮겼다. 이 백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배경은 1593년 4월 심원정에서 맺어진 명나라와 왜나라 간의 강화협정과 관련이 있었다. 왜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솔 아래 조선을 침공하였고(임진왜란), 이를 혼자서 방어하기 어려 웠던 조선은 결국 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명나라는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대국. 명나라의 합세로 왜군은 패퇴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행주산성에서의 패배로 사기가 크게 꺾여 버린 왜군은 결국 휴전을 제의하게 되었다. 조선은 이참에 왜군을 더욱 몰아붙여 완전히 무찌르자고 명나라에게 제안했지만, 명나라도 힘이 부쳤나보다. 장기전을 염려했던 명은 공격을 지속하자는 조선의 의견을 무시한 채 한양에서 고립된 왜국과 강화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왜국 고니시와 명국 심유경 간에 진행된 강화협정의 요지는 ‘왜군 이 한양을 명군에게 내어주는 대신 명군은 왜군이 남해안까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였 다. 협상 과정에서 조선은 양국 모두에게 철저히 배제되어 버린 상태.

실제로 전쟁 중 조선을 괴롭혔던 역할은 왜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는 “명군은 참빗, 왜군은 얼레빗”이란 말이 돌았으며, “명군이 들어가는 마을에서는 소나 돼지, 개와 닭 같은 가축이 전부 없어진다. 명군은 닭을 가장 즐겨 먹어 피 한 방울이라도 버리는 것이 없다”는 흉흉한 소문까지도 돌았다. 명과 왜, 즉 조선을 무시하는 국가끼리 회담 맺는 굴욕적인 순간을 천연기념물 백송이 지켜본 것이다. 주목할 점은, 본래 당시의 백송은 조선에서 나던 나무가 아니라 중국에서 자라는 나무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과 해당 나무의 나이를 토대로 종합적으로 추정해 볼 때, 해당 백송은 왜명강화협정을 기념하여 명나라가 자국에서 옮겨와 심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근에는 약 1.7m 높이의 ‘왜명강 화지처비’가 조선 후기에 세워져서 지금까지도 전해 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천연기념물 백송은 2003년에 고사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천연기념물 백송의 씨앗이 자연 발아한 유일한 후계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에 이식하기로 결정된 작은 백송이다. 즉 이 나무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매우 가치있는 수목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해당 백송은 옆 나무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뿌리가 얽혀있다. 또한 석축 사이 협소한 공간에서 자라다보니 백송 줄기에서 병목현상까지 발생했다. 용산구는 지역을 대표하는 소중한 녹화자원을 보전하겠다는 목적 아래 이번 이식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식 작업은 2019년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5년 동안 진행된다. 그리고 5년간 투입되는 예산은 총 5,000만 원. 많은 시간, 많은 비용이 드는 까닭은 이식 작업 시 두 수목의 뿌리가 모두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식 작업의 가장 핵심은 바로 뿌리돌림’이다. 이 작업은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백송의 기존 생육공간이 협소했고 옆 보호수와의 양분경합, 수관경쟁 등으로 인해 수세가 쇠약한 상태다. 따라서 단기간의 이식 작업은 뿌리 활착률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므로, 뿌리 활착률을 높이고 이식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4년이라는 오랜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사지에 위치한 백송이 흔들릴 위험이 있으므로 로프 또는 와이어로 고정 장치를 설치할 것이며, 백송 이식으로 인해 주변 보호수들이 피해 받지 않도록 영양공급을 주기적으로 할 예정이다.

 

백송을 간직하고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이 백송을 바라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400여년 전 조선은 명국과 왜국에게 철저히 무시당했고, 당시 맺어진 왜명강화협정으로 인해 조선은 다시 한 번 풍전등화의 위기에도 놓인 바 있었다. 우리로서는 매우 부끄럽고 쓰디쓴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픈 역사도 결국 우리의 역사. 우리는 역사를 간직하며 역사 속에 남아있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용산구청장 성장현은 “왜명강화지처비는 임진왜란 당시를 회상하고 또 성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유물”이라며“부끄럽고 쓰린 역사라 할지라도 이를 감추기보다 제대로 알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프고 쓰린 역사를 담고 있는 건축물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 다들 예상하다시피 이는 바로 서대문형무소’다. 이 공간은 사람들의 방문과 관람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곳을 실제로 가본 사람이라면 일제의 악랄함과 우리 선조들의 불굴의 의지를 고스란히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유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조선총독부’건물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광화문 광장이 만들 어지고 경복궁이 복원되면서 우리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철거 문제를 두고 다양한 여론들이 있었다. 우선 해당 건물 자체가 한국에 지어진 몇 안되는 서양식 석조 건축 물이었기에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었다. 특히 이 건물은 독일인 건축가 게오르크 데랄란데의 유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건물이 가지는 근대 건축 문화유산으로서의 역사 적인 가치를 강조하며 철거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되며 우리의 역사 문화유산이 전시되고 있었다. 더 이상 조선총독부 건물에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전시할 수는 없던 노릇. 문화재들은 용산에 새로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했고, 조선총독부 건물은 철거되었으며, 대신 독립기념관 본관 서편에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이 조성되었다. 말 그대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며 나온 부재들을 전시하고 있는 공원인데, 전시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건물 부재들을 전시하되 홀대하는 방식으로, 죽이지는 않되 존중하지도 않으며, 존속시키되 경멸하는 방식으로 널브러뜨려 놓고 있다.

용산의 작은 백송 이식 작업이 완료되는 그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 백송이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되 교훈을 안겨 주며, 그 역사를 기억하게 하되 극복하고 진정한 청산의 길로 이끌 수 있도록 전시되고 적극 활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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