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4주년 특집] 다시 짚어보는 광복절의 의미
  • 송준호 기자
  • 승인 2019.08.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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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국경일은 대개 국가가 성립한 건국기념일이나 국왕의 탄일, 혹은 특정 종교인 탄일 등에 지정된다. 한국에서는 1949년 10월 1일 제정해 공포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해 해마다 기념식과 함께 경축하고 있다. 물론 다섯 개의 국경일이 모두 중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3·1절과 광복절은 한국인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지난 G20 정상회의 이후 우리 정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 정부의 행보는 광복절을 앞두고 전 국민적 반일 정서를 초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광복절은 그 어느 해보다 우리 국민들에게 특별한 하루로 기억될 전망이다.

                                                                                                                                                                                                                               에디터_송준호 junhoism@daum.nett


광복절, 해소되지 않는 동아시아의 앙금


1945년 8월 15일은 비단 우리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동아시아 현대사의 기점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일본인에게 이날은 패전 일이다. 반면 한국이나 중국 등 식민지배나 침략에 시달린 나라들에게는 해방과 독 립을 가져다준 경축일이다. 동아시아는 이 날로부터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가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후 70여 년이 지나고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일본제국주의 지배와 침략전쟁의 유산 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상태다.

광복절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운 순국선열을 추념하고 해방을 경축하는 날이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상황은 이 날을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머무르지 않게 한다. 오늘날의 광복절은 우리에게 한반도의 통일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기념일의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해방’과‘독립’‘, 광복’은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용어들이다. 좌익과 우익으로 갈려 기념식이 치러진 1946년 8월 15일은 해방 1주년이자 민족의 기념일로 자리매김한 출발점이다. 정부 수립을 선포한 1948년 8월 15일 은 독립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1949년 이후부터 8월 15일은 광복과 정부 수립의 의미를 지닌 날로 이어지고 있다.
‘광복’이라는 용어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국권 상실 직 후에 결성된 대한광복회나 서간도의 광복군사령부, 철혈광복 단, 조국광복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재조직한 광복군 등을 통해 일찌감치 활용됐다. 광복군은 1940년에 창설됐고, 이듬 해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가『광복』이라는 기관지를 발 행하기 시작했다. 반면 북한에서 8월 15일은‘해방’을 사용해 서‘조국해방기념일’로 기념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는‘광 복’도 인정하고 있다.

건국절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


건국절 논란은 역사 해석과 관련해 광복절 즈음에 꾸준히 등장하는 화두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이전 정권과 당시 새누리당이 건국을 1948년 8월 15일로 규정한 것을 일축하고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못 박은 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논쟁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광복절을 앞두고 건국 시점에 대해 첨예한 이견을 보인 것. 더불어민주당은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각 임시정부들이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궁극적인 정통성이 상해 정부에 있다는 시각이다. 국제법적 관점에서도 주권 주장, 망명정부 소재지 국가의 승인, 실질적인 국가 행위 등을 갖췄기에 합법적인 정부로 볼 수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이 진정한 건국이라고 주장했다. 임시정부는 주권을 행사할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임시정부 창립일에 대해서도 관점에 따라 날짜가 분분하다는게 이 주장의 근거가 된다. 또 1923년 국민대표대회 실패로 임시정부는 사실상 일개 독립운동단체로 전락한 만큼 국가로서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자유한국당 측은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하는 문재인 정부의 역사 인식과 의도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문재인 정부의 역사관이 염려스럽다”고 성토했다. 이에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은 광복절을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 보수 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유감을 표명하고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생산적 비판과 발전적 협력을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건국절 논쟁은 2008년에도 이미 불거진 바 있다. 당시에는 역사 관련 학회들이 나서 1948년 건국론에 대해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명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부 터 이미 사용됐다”며 “1919년 대한민국 건국은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 라고 강조했다. 또 김 교수는 “1948년이 아닌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해야 나중에 통일이 됐을 때 비로소 한 나라가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행보에 대한 묵직한 반격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혐한 정치로 인한 반일 정서는 광복절에 즈음해 최고조에 이른다. 최근에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에 대한 맞대응으로 한국 국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 이어 한국 관광객의 비중이 많았던 일본 여행업계는 당장 타격을 실감하고 있다. 또 일본기업이 설립하거나 대주주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감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한 한국 국민의 단체 행동은 파급력이 크고 오래 지속된다. 이제는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가 대표적이다. 이 소녀상은 원래 조각가인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의뢰로 제작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세워진 소녀상은 서울을 필두로 구미, 부산, 의정부, 고양, 수원, 세종, 광주 등 국내 여러 지역에 세워졌다. 부산에는 중국인 소녀상도 함께 세워졌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에 강제 동원 된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일본 정부는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주한 일본 대사와 총영사를 자국으로 소환하고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등 보복성 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경기도의회는 독도와 경기도의회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로 하고 모금운동을 하는 것으로 맞섰다. 광명시는 광명시민의 성금을 모아 광명동굴 입구에‘광명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다. 대구2.28기념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 한 대구는 이후 해당 장소를 일본의 경제 보복을 성토하는 기자회견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녀상은 버스에 타기도 했다. 국내 한 버스 회사가 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자비로 소녀상을 만들어 버스 안에 설치한 것이다. 소녀상은 추석 연휴에는 전국 각지로 출발하는 귀향 버스에 태워지기도 했다. 끊임없이 사회적, 정치적 논쟁을 주도해온 소녀상 운동은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시민들의 연대감을 고취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안산의 상록수역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한국 청년들이 침을 뱉고 조롱하는 사건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이 일본어로‘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일본인으로 추정돼 국민들의 공분을 샀지만, 조사 결과 한국인으로 밝혀져 또 한 번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일본말을 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더 모욕감을 줄 것 같아서”라고 경찰에 진술한 이들은 결국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나눔의집 일본 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청년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도록 놔둔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며 이들이 사과하면 고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결국 사과와 함께 사건은 일단 락됐지만, 철부지 청년들의 행동은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의 현재를 보여주는 씁쓸한 예로 남았다..


문화적으로 재현되는 광복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우리에겐 뼈아픈 상흔이지만, 동시에 목숨을 바쳐 독립을 이뤄낸 청춘들의 투쟁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재해석의 소재가 된다. 영화 <암살>이나 <밀정>, <박 열> 등은 일제에 맞서 싸우고 장렬한 최후를 맞은 독립운동 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등장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항일운동단체 불령사 등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활약으로 살아있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


이 시기를 다룰 때마다 등장하는 친일 행적 인사들을 소재로 다룬 영화도 있다. 해방 70여 년이 지났지만 일제 식민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지금,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은 복잡한 심상을 이끌어낸다. < 밀정>이나 <동주>가 그런 영화다. <밀정>의 이정출은 대 놓고 친일을 하는 후안무치한 경찰이지만, <동주>의 윤동주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서 유학을 하는 자신을 평생 부끄러워하며 자책했다는 점에서 인물의 결이 다르다. 오늘날의 청산 문제와 별개로, 영화는 당대를 사는 자의 선택과 행보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관객의 입장을 되묻는다.


일제에 강제 동원된 이들의 아픔을 담은 영화들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군함도>는 1940년대 탄광에 징용 된 조선인들의 고난을 다뤘다. 군함도 문제는 방송에서도 현지에 남은 이들의 사연이 소개되며 시청자들을 울렸다.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귀향>, <눈길>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난 소녀들의 끔찍한 고통과 끝나지 않은 현재를 그린다. 최근에는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연출한 다큐 멘터리 <주전장>이 개봉해 눈길을 끈다. 영화는 피해자들의 이야기 대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기존의 접근법과 거리를 둔다. 또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의 전투를 그린 <봉오동 전투>도 8월 개봉을 앞두고 준비 중이다.


공연에서도 독립과 광복의 투쟁사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군 뮤지컬 <신흥무관학 교>다. 신흥무관학교는 우당 이회영 선생이 항일독립운동 기지의 건설을 위해 서간도 지역에 설립한 독립군 양성학교다. 이회영은 신민회, 헤이그 밀사, 의열단 등 항일 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이 작품은 1907년부터 1920년까지, 국권 피탈의 시국을 배경으로 이회영과 이상룡 등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극적인 삶을 다룬다.


뮤지컬은 역사 속 유명 인물들이 아니라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그 시대 청년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관객의 공감을 자아낸다. 또 여성 투사들의 모습도 조명하며 오늘의 시대정신까지 효과적으로 적용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교과서 속에서 나와 지금의 청년들 가슴에도 절절하게 스며들게 된다.


한때 광복절은 역사에 관심 없던 시민들이 오랜만에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발현하는 날이었다. 또 부정이나 비리로 투옥된 고위 인사들이 연례행사처럼 특사로 풀려 나는 정치적 이벤트의 명분으로 활용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높아진 시민의식과 역사의식의 고취 아래 광복절은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역사적 이슈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실천하는 날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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