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눔은 가진것을 온전히 내어놓는 것”
  • 이재희 목사
  • 승인 2019.08.0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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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창(窓) : 본지 대표이사 이재희 (성남시기독교연합회 회장, 분당 횃불교회 담임목사, 지구촌선교회 이사장)

‘우리가 돌보는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받은 것 이상을 돌려준다.’   

 이재희 목사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의 말이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베푸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배움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실 자선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땀을 흘려 벌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남을 위해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 다. 원래 물질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 중 하나이기에 누구나 결심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눔의 진정한 의미는 가진 것을 내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덜어 내놓고 나눠주는 것이 아닌 남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온전히 내어놓을 때 진정한 나눔이 완성된다. 또한 나눔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실천해야할 덕목 중 하나 이기도 하다. 보다 낮은 자세로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보다 낮은 곳을 향하는 삶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이다.


성경 속에서도 나눔의 의미를 담은 구절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행전 20:35)’라는 말씀은 나눔의 ‘기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테레사 수녀가 이야기한 돌려받을 것이 바로 이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눔과 봉사는 행복을 여는 도어(door)라고 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고, 모든 게 한때일 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나눔과 봉사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작지만 생생한 이야기가 많이 박혀있다. 크기가 작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바꾸는 변화 라면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쁨을 얻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들의 얼굴에 선 뿌듯함이 번져나고, 주는 이와 받는 이 둘 사이엔 굳건한 다리가 놓이기도 한다. 나눔과 봉사는 바로 이들의 마음 밖과 안을 이렇게 연결 시키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물론 구체적인 인생의 목적을 정하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나눔과 봉사는 결코 쉽지 않은 일로 계산 빠른 사람이 하기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을 얻는 것 에서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나눔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주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지, 받겠다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누어주는 사람, 나눌 줄 아는 사람들에게 성공이 찾아온다.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상호적인 감사와 행복을 공유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눔이 실천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각종 행사에 화환 대신 쌀 기부가 많아졌다고 한다. 화환을 보내면 잠깐 세워놨 다가 수거해서 쓰레기 처리하느라 비용도 들고 환경에도 유익하지 않다. 그래서 그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화환 대신 쌀을 보내면, 그 사람 이 쌀을 모아서 장애 결식아동, 기초생활 수급자나 소외계층에 전달 돼서 착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쌀 보내기 사업은 여기저기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혼탁한 세상에서 덕(德)은 결코 외롭지 않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적을 만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에서 생존경쟁의 삶 속에서 심지어는 행복을 꾸리는 가정의 현장에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화신이 되어 싸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배반, 배신, 실망, 절망, 원수라는 격한 감정과 부정의 노예(?)가 되고 만다. 정말 무서운 적은 바로 내 안에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격한 감정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용서에는 눈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당하고 살아온 울분을 삼켜야 하는 자기 고통의 눈물, 원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잡아야 하는 용기의 눈물, 지난 과거를 깨끗이 씻어내는 회개의 눈물. 그러나 그것은 눈 물이 아니라 참사랑이며 기쁨이다. 진정한 용서의 의미는 상대가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다. 화해는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지만 용서는 상대가 없어도 가능한 내 마음의 용기다.


독생자 예수는 이 땅에 메시아 구세주로 오셨다. 그러나 제자 유다에 의해 은 삼십에 팔리는 배신을 경험하였고, 그토록 믿었던 제자 베드로에게 세 번씩 부인당하는 모멸을 당했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그는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받고 버림과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를 져야 하는 죄인도 아니었고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도 없었던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우리를 대신하여 끝내 속죄제의 제물이 되셨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기를 지시고, 피 흘리시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의 행위를 모르고 죄를 행하는 저들을 위해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참사랑의 표본이자 극치였다. 그의 생애는 용서와 사랑의 결정체였다.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다. 논어(論語) 里仁(이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으로 그 뜻을 풀이해 보면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상대를 무자비하게 물어뜯는 혼탁한 세상에서 청렴과 도덕을 실천하려는 자는 외롭고 고립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를 이해하는 가까운 벗이 생기고, 정다운 동반자와 협력자가 생긴다는 뜻으로, 德(덕)은 도덕(道德)을 행하는 사람을 뜻하며, 隣(인)은 이웃사람이나 동지를 말 한다. 따라서 덕은 결코 외롭지 않다는 뜻으로, 진실과 정의에는 반드시 ‘동지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해석된다.


본지 대표이사로 취임, 여성의 권익보호에 최선을 다할 터


본지의 대표이사로 위촉되어 그 막중한 소임에 책임감이 크다. 부족하지만, 시대적 사명감으로 여기고 여성의 권익보호를 위하여 나름의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문득 111년 전, 미국의 시대적 상황이 떠오른다. 1908년 3월 8일 1만 5000명이 넘는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양성평등을 의미한다. 당시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광장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 양성평등과 여성빈곤을 위한 전 세계적 과제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는 높은 교육수준에도 불구하고 승진, 임금 등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여성 차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111년이 지난 올해, 아직도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는 세계 116위의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고, 한국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100년 전 거리에 나온 여성노동자들의 울분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63.4%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며, 일·가 정 양립의 짐은 물론 간병, 수발 등 돌봄 노동의 짐까지 여성들의 어깨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보다 약간 위에 있을 뿐이며(2018 세계 경제포럼), 한국 여성경제 활동지수(2019 OECD보고서)는 꼴찌에서 두 번째로, 참담한 성적이다.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는 돌봄 노동은 여성들을 경력단절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지만 개선될 조짐은 거의 없다. 여성 노동자의 퇴직 사유 1, 2위가 ‘가정 내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과 ‘자녀 학습활동 지원’이다. 이러한 일, 가정 양립정 책은 여성 과로사 정책으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여성을 출산의 수단으로 보는 구시대적 발상은 심히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보고 있자면 “여성에게 국가란 없다”고 질타한 20세기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저출생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어 저출생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려버린 정부는 과연 시대를 읽고 있는 것일까.


시대변화에 걸맞은 문화, 관행 그리고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대접을 받으며, 당당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얼마 전, 우리는 여성 3명의 죽음을 힘없이 지켜봐야 했다. 여성공 무원이 과중한 업무와 힘든 육아로 인해 과로사 했으며, 통신회사 콜 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은 과도한 노동과 직무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별 뒤, 다시 만나자는 전 남자친구의 요구를 거부한 여성이 그의 구타에 의해 사망한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세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사회 여성이 처한 노동, 육아, 인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로 기억된다.


물론 국가가 앞장서 여성관련 정책이나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 하다. 그러나 여성들의 짐을 덜어주고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제도들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실효성을 제고하고 성평등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비정규직과 저임금 일 자리로 내몰리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 가치를 평등하게 인정받게 해야 하고, 자녀 육아의 독박 굴레에서 여성이 해방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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