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3년 봉축특집.. 평화의 등불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스님
  • 김 숙 기자
  • 승인 2019.05.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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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군종교구장

 

부처님 탄생지‘룸비니’에‘평화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 자비와 평화의 순례자 선묵혜자 스님, 역사적인 108산사순례기도회 봉행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다시 53 선지식 도량을 순례하며, 한국불교의 희망을 담금질 하고 있다. 스님의 자비와 평화의 대장정은 그래서 아직도 진행형이다. 도선사 주지의 소임을 마치고, 지금은 수락산 도안사에 주석하며, 청정계율의 여법한 도량을 일구고 있는 선묵스님을 본지에서 예방했다.

평화의 상징‘파랑새’수락산에 둥지를 틀다

불교에서는 파랑새를 관세음보살의 전령조라 해서, 일명 관음조라 부른다. 그 파랑새가 수락산 도안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 상서로운 파랑새가 어떻게 절에서 둥지를 틀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남북한 통일과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절실해서 그랬나!’

옅은 미소와 함께 스님의 잔잔한 말씀이 인상적이다. 정말 그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 묘향산에 파랑새 서식지가 있다고 하니, 어쩌면 북한의 묘향산에서 남한의 평화를 갈구하는 파랑새가 수락산 기슭의 도안사까지 평화의 전령사가 되어 날아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파랑새는 4월에 왔다 8월에 돌아가는 철새로 2016년부터 해마다 도안사를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파랑새는 행운을 가져왔다. 파랑새가 도안사에 둥지를 튼 이후, 도안사가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문화재 사찰이 되었고, 스님은 종단의 군종 교구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일반 종교인 신분으로는 군부대에 잘 들어갈 수가 없어 평화법회를 열지 못했는데, 군종 교구장이 되면서 군부대를 자유롭게 들어가 법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분단의 아픔과 평화를 기원하는 스님의 시‘파랑새’로‘윤동주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스님과 일문일답을 통해 스님의 출가의 계기를 물었다. 이에 스님은 13세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에 집안에 한 스님이 계셨는데 “절에 가면 한문 공부도 시켜주고 좋은 부처님 말씀도 배우도록 해준다.”고 하는데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았고 환희심이 났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스님이 될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스님이 되기 위하여 수계를 받던 날, 은사스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말씀을 내 수행생활의 원력으로 삼기로 했죠! 수행자라면 마땅히 하심(下心)하여야 한다. 그리고 시름하는 대중 곁으로 가서 그들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108산사순례기도회는 감동과 환희의 물결로 가득했다. 특히 감동적인 사연이 있었다면?

행사 하나 하나가 다 보람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첫 번째 순례지인 통도사를 비롯하여, 영암 도갑사, 여주 신륵사, 양양 낙산사 등을 방문하여 기도를 마치고 염주를 나누어 줄 때, 상서로운 7색 무지개가 100여 번 넘게 떠서 축하를 해 줄때는 정말 불보살님께서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이 가장 느끼곤 했습니다. 이 외에, 108산사순례기도회회원과 농촌여성 결혼이민자 108 인연 맺기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은사스님이신 청담스님과의 인연은?

청담스님께서는 근․현대 한국불교에 있어서 웅장한 산맥에서 구름 위로 우뚝 솟은 거봉(巨峰)같은 분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평생을 끊임없이 수행하라 그리고 나누고 베풀라!”틈나는 대로 제자들이나 불자들에게 강조하셨고, 또한 이(理)와 사(事)에 있어서도 그 누구보다 밝으신 모습을 보이셨던 분이셨습니다. 특히 엄 할 때는 아주 엄하셨지만 제자들의 신발과 옷을 빨아 몰래 문 앞에 갖다 놓으시기도 하신 항상 상(相)이 없으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진심(眞心)을 일으키시는 일이 없어 인욕보살이셨습니다.

네팔에서 한국으로‘평화의 불’에 대한 소개와 이운 과정은?

2013년이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이었습니다. 당시도 그렇고 현재도 한반도는 동서·남북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죠. 그리고 특히 북한의 움직임은 국민들에게 평화의 정착과 남북한 화해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의 한사람으로 국민의 한사람으로 부처님의 평화사상을 한반도에 널리 펼쳐 국민들이 편안하고 남북이 소통하고 화합하여 평화로운 통일이 이룩되기를 발원하고 부처님 탄생성지 네팔 룸비니 평화의 불을 한국으로 이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평화의 불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네팔 부처님 탄생성지인 룸비니 동산 평화의 호수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1986년 UN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불이지요. 2013년 4월 부처님 탄생성지인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채화(採火)하여 네팔 야다브 대통령으로부터 봉양(奉養) 받은 성화(聖火)입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출발한 평화의 불은 티베트 라싸로 향했지요. 한반도까지의 대장정이 무려 3만여 Km로 1,300여 년 전 구법승(求法僧)들이 불법 구하기 위해 갖던 길을 따라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티베트, 카스, 호탄, 타클라마카 사막, 쿠차, 투루판, 신장 위구르, 돈황을 거치면서 평화의 길을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서안 법문사에 도착 분화(分火)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도에서 뱃길로 서해를 건너 인천항에 도착, 민족의 염원이 서려있는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에서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가정ㆍ남북ㆍ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하고 삼각산 도선사(道詵寺)와 수락사 도안사(度岸寺) 등 108곳에 봉안되어 평화를 기원하며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평화의 불이 어려운 역경을 헤치고 오는 도중에 여러 가지 상서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 번 상서로운 7색 광명 무지개도 뜨고 어려운 고비 때마다 불보살님의 가피로 역경을 극복 할 수 있었습니다.

종단의 군종교구장의 소임을 담당하며, 앞으로의 계획과 서원은?

2018년은 군승파송 5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은사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 당시 채명신 장군(주월사령관)이 도선사로 찾아와 은사스님과 군승파송 문제에 대해 상의하곤 했지요. 그런데 50년이 지난 오늘 제가 군종교구장으로 막중한 임무를 맡았으니, 저에게 주어진 임무인 것 같습니다. 군 법당은 400여개인데 군승법사님은 140여명이다 보니 법사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 법당은 민간인성직자나 민간인포교사 분들이 지원봉사 형태로 군법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불자들이 관심을 갖는 군종교구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행하겠습니다.

네팔 등지에 ‘선혜학교’를 개원하시게 된 계기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룸비니 동산에서, 법회를 봉행하고 한국과 네팔의 우호를 위해 뜻깊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108명의 학생을 교육시킬 수 있는 ‘선혜학교’를 개원하였습니다. 이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인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개혁과 희망에 대한, 평소 스님의 소신과 신념은?

개혁과 희망은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소임을 잘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릇 수행자는 베풀고 나누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 주고받는 보시에 마음의 상(相)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즐겁게 행하다 보니 덕이 쌓이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그 덕을 쌓기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은 진정한 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시 중에 최고의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매 순간 살아감이 지치고 힘들어 누군가의 어깨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보이지 않는 따스함으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 줄 수 있는 말없는 자비의 마음, 주었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는 마음, 댓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무주상 보시 아닐까요. 이것이 바른 불자가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끝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마무리 덕담 한 말씀?

부처님께서 바라는 세상은 중생의 고통을 안락함으로 완성하여 평화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교육을 많이 받았든 그렇지 않든, 사회적 계급이 높든 낮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든 그렇지 않든 우리 모두는 본래 부처님이며 고통을 멀리하고 행복을 구하고자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의 봉축 표어로 ‘마음 애(愛) 자비를, 세상 애(愛) 평화를’이라 정한 것도 서로를 차별하고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부처님의 자비로 보듬어 함께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는 부처님 오신 날의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메시지를 이웃에 전하는 것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불자들의 몫입니다. 이러한 불자들의 나눔과 이타행은 불신을 희망으로 헤쳐 가는 희망의 연등이며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신 참의미를 실천하는 참의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일체의 중생들이 업장의 굴레를 벗어나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나는 부처님 오신 날의 참 뜻일 것입니다. 일체 중생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부처님 오신 날이 이웃에게 행복과 깨달음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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