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관 변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남긴 과제는?
  • 조순아 기자
  • 승인 2019.05.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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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관 변화가 뒤집은 66년 역사

위헌 인정하면서도, 위헌결정 못 내린 헌법재판소

 

태아의 생명권 존중이냐,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냐를 두고 오랜 격론 끝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현행 낙태죄는 20201231일 이후로는 실효성이 사라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앞으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문 형법 제2691, 270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

 

지난달 11일 오후 2, 헌법재판소는 낙태 여성과 시술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10명의 재판관 중 72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으며 2012년 이후 7년 만에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이로써 낙태죄는 지난 1953년 제정된 이후 사실상 66년 만에 폐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01231일 이후에는 효력이 사라져 국회에서 내년 안에 대체 법을 만들어야 한다.

 

헌법재판관, 낙태죄 위헌 헌법불합치결정

현행 낙태죄는 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수술을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현행법인데, 이번 낙태죄 위헌 판결은 둘 다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헌법불합치 4, 단순 위헌 2명으로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는 데 손을 들었다. 단순 위헌, 즉 낙태죄 즉시 폐지 입장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이미 낙태죄는 형벌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지 폐지하더라도 큰 혼란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린 4명의 재판관은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해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하는데 있어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 가능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의 임신·출산·육아 지원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만약 낙태하겠다고 결정하게 되면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필요한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함을 피력했다. 반면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2명의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먼저라는 입장이다. 처벌을 없애면 낙태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낙태 가능한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

이번 판결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를 놓고 쟁점이 된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였다. 헌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로 인해 과도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재판부는 낙태죄 조항이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등 출산을 강제함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또 현행법이 소득과 남성의 책임 거부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이유에 따른 낙태 갈등 상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회적 혼란을 고려해 내년까지는 현행 낙태 처벌 조항을 유지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폐지 합헌 결정과 함께 낙태 가능한 범위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췄는지를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낙태 가능한 범위를 놓고 태아의 생존 가능 시점을 기준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헌재는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22주 내외라고 판단하고 이 기간 안에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야 하며, 이 시기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이나 정도를 다르게 정할 수 있다는 것. 구체적으로 언제까지를 낙태 가능의 시점으로 볼지는 국회에서 법 개정으로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쟁점은 낙태 허용의 적정 기간, 22주 내외일 듯

낙태죄 위헌 판결에 따라 이후의 쟁점은 태아의 생명권 존중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낙태 허용의 적정 기간이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과 임신부가 임신유지와 출산여부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기를 고려해 결정가능 기간을 정하라고 주문했다.

세계보건기구(WTO)가 인정한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 시점은 임신 22. 임신부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를 판단하고 임신 22주 내외에서 결정가능기간을 정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낙태죄 폐지가 가능해지면 그동안 낙태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구제받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낙태죄가 위헌이라고 판결났기 때문에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궁금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내년까지는 한시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에 당장 적용되진 않는다. 다만 기존에 낙태죄로 처벌받은 여성이나 의사는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

산부인과 의사 씨는 2013년 임신부의 요청으로 임신 5주차 태아를 낙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 재판부는 모자보건법상 예외적으로 낙태가 허용되는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씨에게 징역 6, 자격정지 1년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임신부의 건강이 좋지 않았고 씨도 앞으로 의사 본분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한 점을 참작해 선고를 유예했다.

4년 후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상황임을 감안, 그동안 선고를 미룬 바 있다. 하지만 재심 청구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먼저 위헌 결정이 난 형법 조항이 199512월 개정됐다는 점을 근거로 그 이후 처벌받은 이들이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의견과 7년 전인 20128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합헌으로 결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어서 앞으로 재심 판결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한편, 오랜 논란 끝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은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여연은 재생산권은 성적자기결정권 및 출산의 선택권을 포함하고 그 결정에 있어서 성평등 권리까지 포함한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의 성평등은 물론 공동체와 국가에게도 공동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젠더 관점의 성과 재생산 교육을 포함해 안전하게 성적 권리를 누리고 피임,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한 정보와 보건 의료 시스템에 모두가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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