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기념전 개최한 도예가 윤석경
  • 이빛나 기자
  • 승인 2019.05.0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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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흙으로 빚어가다

 

     

 

자연에서 온 흙이 사람의 손길을 만나 빚어지고, 깎아지고, 구워져서 나오는 도자기. 숱한 공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인내의 예술, 도예는 작가의 기법과 불 조절, 유약에 따라 각기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에 다른 예술에선 경험할 수 없는 다양성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이 도예의 매력에 빠져 일흔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매일 도자기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는 이가 있다. 기독교 신앙인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주제로 한 도예 작품들을 제작하는 윤석경 도예가를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그녀의 터전 ‘도자골 달뫼’에서 만났다.
 

시작은 ‘도자골 달뫼’에서부터

윤석경 도예가를 만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그녀의 생활 공간이자 작업 공간인 ‘도자골 달뫼’다. 입구에서부터 꽤 많은 걸음을 걸어야 그녀의 작업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작업실과 전시실, 소작업실 등의 건물이 각각 따로 갖춰져 있고, 야외 잔디밭과 쉼터 등이 마련된 공간은 정녕 ‘도자골’이라 부를 만큼 널찍한 공간이었다. 약 4천 5백 평 정도의 규모다. 그녀가 이곳에 들어와 본격적인 도예 작업을 시작한 건 20년 전. 사실 처음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게 달갑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갤러리를 했는데, 기사를 포함해서 직원들을 여럿 거느릴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했었어요. 그러다 IMF 때 운영하던 갤러리가 잘못되면서 시어머니가 사놓으셨던 이곳에 들어오게 됐죠. 그 때만 해도 주변이 개발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없고, 쥐도 많아서 도저히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제발 땅을 빨리 팔아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것만 바랐어요.”

빨리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그녀의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땅은 생각만큼 쉽게 팔리지 않았고, 그럴수록 걱정은 늘어갔다. 팔리지 않는 땅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고, 그럴 때마다 도예 작업에 매진하게 됐다.

기독교 신앙인인 윤 작가는 밤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형상화 한 도예 작품들을 빚어나가기 시작했다. 작업에 몰두하면 현실적인 부담과 걱정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매일 작업실을 찾았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가 계획한 대로 된 건 아무 것도 없고, 그냥 흐르고 흘러 이렇게 온 거예요. 20년이 지나면서 땅도 옛날보다 시세가 올랐고, 어려운 고비들을 그 때마다 잘 넘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십자가 작업이 아니면 버틸 수 없었던 과정이었죠.”

갤러리를 운영할 때만 해도 종종 그룹전시에 참여했을 뿐 개인적인 작업 활동에 매진하지는 않았던 그녀는 쉰 살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도예 작업을 시작해 뒤늦게 개인전도 개최했다. 지금은 개인전만 18번을 치른 작가가 됐다. 그녀를 고달픈 현실에서 버티게 했던 십자가 작품 작업은 이제 그녀를 어엿한 기독 도예 작가로 자리 잡게 했다.

 

매일을 설레게 하는 도예 작업

윤 작가는 지금도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작업장을 향한다. 찬양을 틀고, 그 날 그날 주어진 작업을 하는 게 그녀에겐 당연한 일상이다. 한 번 시작한 도자기 작업은 중간에 게으름을 피우면 흙이 굳어 못 쓰게 된다. 그렇기에 적당한 시기에 필요한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 모든 작업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 연장선 가운데서 설렘을 느낀다.

“초벌을 해놓고 나면 설렘이 있어요. 이게 어떤 색으로 어떻게 만들어야지 하는 머릿속의 그림이 있는데, 그걸 빨리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이걸 빨리 해야 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장에 와요. 그 때가 제일 행복하고 좋아요.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녀가 지루할 틈 없이 빠져 있다는 도예의 매력은 뭘까. 그녀는 도자기만 줄 수 있는 기쁨으로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을 꼽았다.

“다른 작품은 작가가 완성됐다고 손을 떼면 끝나잖아요. 그런데 도자기만큼은 작가가 아무리 만족해도 불 속에 들어가서 깨지지 않고 제대로 나와야 하거든요. 그런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나왔을 때의 기쁨은 도자기만 줄 수 있는 기쁨이죠. 변화를 겪어야 완성되는 도자기는 작가에게도 기대감과 새로움을 선물하거든요.”

윤석경 작가는 또, 성서에서 흙과 같은 사람이 토기장이인 하나님을 통해 완성되듯 보잘 것 없었던 흙이 자신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 자체가 굉장한 희열을 주는 동시에 신앙적 깨달음을 준다고 고백했다. 하찮았던 흙이 어느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작품이 될 수도, 별 볼 일 없이 머물 수도 있음을 매 순간 느낀다는 것이다.

 

하늘로 향하는 작품

이따금씩 찾아오는 창작의 고통은 그녀를 괴롭게 한다. 흙을 손에 쥐고 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잠시 쉬면서 생각을 다듬는다.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불 속에서 작품의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때 느꼈던 환희들로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낸다. 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흙을 만지게 되면서 신앙과 연결됐다. 그렇게 흙은 그녀의 일상과 마음, 삶을 변화시켰다. 젊은 시절에는 기법과 작품성을 따졌지만, 이젠 기법과 상관없이 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든 마음에 내키는 대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그녀의 작품은 십자가와 부활,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 등을 표현한 기독교 관련 작품밖에 찾아볼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하고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이젠 하늘로 가는 준비라고 여겨지다 보니까 작품도 자꾸 그쪽 방향으로만 가죠.”

고희연을 열자는 자녀들의 제안에 그녀는 전시를 하겠다고 답했다. 마음가는대로 만든 작품들로 고희를 기념한 전시를 열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독 작가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상설 전시관과 선교사들을 위한 숙소를 마련할 계획이다.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