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최금숙 회장에게 듣는다
  • 장재진 논설주간
  • 승인 2018.11.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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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동수가 됐을 때 사회는 더 청렴...국회 · 기업임원 남녀동수 이루어졌으면....“

[여성시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1970년대는 무척 암울했다.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는 독재권력에 밟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정의는 없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피 끓는 학생들이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외치며 분연히 일어섰다. 민주화 열기는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최금숙 학생도 일어섰다. 학생들의 저항이 들불처럼 커지자 독재정권은 위수령을 발표했다. 위수령아래서 반독재 민주화 학생운동은 오히려 거세졌다. 온갖 고초와 수난을 당해도 꺾이지 않았다. 와중에 최금숙 학생은 악명 높고 서슬퍼런 ‘남산’에 잡혀갔다. 김옥길 총장이 온갖 힘을 다해 석방시위와 구명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금숙 회장이 바로 그다.
최근 개최한 전국여성대회(10월 31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최금숙(68·법학박사·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회장을 서울 용산역 인근의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관에서 만나 여성운동의 오늘과 내일을 들어 보았다. /편집자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남녀동수가 됐을 때 사회는 더 청렴하다고 하는데, 국회와 기업임원들은 남녀동수가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했다.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남녀동수가 됐을 때 사회는 더 청렴하다고 하는데, 국회와 기업임원들은 남녀동수가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하다가 남산에 끌려가 빨갱이로 몰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셨고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섰는데 그때는 어떠했습니까?
 
그때는 정말 삼엄했어요. 서울 시내에서 총 학생회장들이 다 모여 엄중한 시절에 반독재 투쟁을 하는 거예요. 그때가 위수령 전이었으니까 1971년이었죠. 그 다음이 유신 시대였고. 제가 1950년생이거든요. 그때 여자는 저 하나뿐이었어요. 제 지도 교수님이 운동하는 걸 싫어하셨어요. 제가 석, 박사 과정을 거쳤으니까 공부하는 사람은 그런 거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고, 공부해야 한다고 하셨죠. 제가 나이가 드니까 눈물이 많아져요. 그 당시에 저희보다는 선배신데 지금은 돌아가신 김근태 의원님이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는데, 서울대는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때는 도망 다니며 회의하고 그랬었어요. 어느 날 반독재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장소를 정해서 전격적으로 기자들한테 알려요. 그때 제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니까 이대라는 명예를 걸고 뭔가를 하는 거예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가까운 산에 가서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긴장을 하는 거예요. 보니까 정보원들이 막 오고 있는 거지. 그때 제가 뜬금없이 노래를 막 불렀어요. 정보원들이 쫓아오니까 야유회처럼 위장을 한 거죠. 남자들은 잡혀가면 고문을 엄청 받을 때에요. 김근태 의원도 고문 때문에 돌아가셨잖아요. 나중에 나보고 다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하더라고.

-그때 부르신 노래가?

모르죠. 몰라요(웃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일어나서 무슨 노래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정말 삼엄한 시기였죠. 그리고 얼마 뒤에 위수령이 내렸는데 열 명 이상은 못 모여요. 모이면 다 구속된다고 했었죠. 유신의 전초였어요. 서울 시내를 비상사태로 만들어놓은 거니까. 학교 휴교 조치는 유신 때 내려진 거고. 다른 학교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대는 휴교는 안했었어요. 위수령이 내리고 정보원들이 학교에 잠입해서 다녀요. 연대 고대 학생회 임원들을 트럭에 실고 전부 잡아갔어요. 전 학생이고 여자라고 안 잡아갔는데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엄청난 분노가 생겨났죠. 이런 엄중한 시대에 이화여대가 제 역할을 안 하면 안 된다고 밤새도록 포스터를 만들어 캠퍼스에 붙였어요. 4천명이 모이는 대강당에 사람들을 모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왔죠. 다들 자리가 없어 서 있고. 기독교 학교라 저희는 예배로 위장을 했어요. 애국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면서 구속 학생 석방하라고 성명서도 발표했어요.
그때 학내에 지하서클 새얼에서 학생 운동을 하던 이들이 최영희, 이미경, 장하진이예요. 그 친구들도 다 잡혀갔죠. 외부 서클과 관련이 있다고, 저는 학생회장이라고. 서로 무슨 고통을 받았는지 사실 몰라요. 아직도 그런 이야기는 안 해봤어요.
우리 집에는 경찰들이 들이닥쳐 계속 제 방을 뒤지고 그랬죠. 위수령 때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님이 저는 총학생회장이라고 기숙사에 숨겼어요. 거기에 일주일 동안 숨어 있다가 나와서 한 달을 도망 다니고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집에 갔다가 바로 잡혀 남산으로 끌려갔죠.

여성단체협의회 운동 주제는 통일 평화 번영이고 말하는 최금숙 회장. (사진 임계훈 작가)
여성단체협의회 운동 주제는 통일 평화 번영이고 말하는 최금숙 회장. (사진 임계훈 작가)

김옥길 총장의 석방시위 덕에 하루 만에 풀려나

-남산에는 며칠이나 있었나요?

하루였어요. 제가 들어가 있는데 학교에서도 그쪽으로 계속 전화하고 김옥길 총장님이 본인 차를 남산 앞에 갖다 놨어요. 총장님 자가용을 문 앞에 두고 총학생회장 빨리 내보내라고 계속 시위를 하신 거죠. 그 덕분인지 하루 만에 나왔어요. 남산에 갔는데 저한테 북한이랑 연결되어 있다고 빨갱이로 몰아가기도 하고, 나오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정보원들이 제 뒤를 계속 따라다니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다들 경찰에 끌려가서 조사받고 퇴학당할 상황이었는데, 김옥길 선생님 덕에 다들 졸업하고 교수도 되고 국회의원이 됐죠.

-당시 학생운동이 민주화 발판이 됐다고 봅니다. 여성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학생 때 운동을 하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죠. 학교에서 석, 박사를 하고 교수직까지 하게 되면서 간접적으로 회비도 내고 돕기도 하다가 전공이 법학이니까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여성운동, 가정법 개정 운동, 가정 법률 상담 등을 맡게 됐는데 직접 뛰어들어 하기 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돕는 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도 교수님도 너무 걱정을 많이 하셨고, 저도 공부를 좀 많이 해야겠다 싶어서 법률 공부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 지난 10월 31일 제53회 전국여성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셨는데 여성대회가 갖는 의미와 성과는 무엇일까요?

전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죠. 총 457개의 여성단체 협의회가 있어요. 임원까지 하면 지도자만 5천명이죠. 일 년에 한 번씩 다 같이 모여 마음을 다지고 내년에는 어떤 이슈로 활동할까를 정리해요. 제가 2015년에 처음 취임했을 때 통일을 주제로 잡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동안 공부하면서 북한법과 통일에 많은 관심을 가졌거든요. 대통령이 평화와 번영을 외친다고 여기에서도 똑같이 하냐고 하는데, 사실 우리는 그 이전부터 평화와 번영이 운동주제였어요. 코인이라고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가 있어요. 전 세계에 있는 여성 지도자들을 불러 며칠 동안 대회를 하는데, 올해 8월에 열린 대회에서 제가 주제를 하나 맡아 통일 이야기를 했죠.
작년부터 알게 된 것은 북한은 지금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인다는 거예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에서 앞으로 여성 결의를 합시다하면서 500만 회원이 북한의 유엔 제제를 풀어야 한다고 민족적으로 내는 한 목소리가 트럼프에게 전해지고 트럼프가 제제를 풀게 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죠. 사실 북한에서는 경제가 제일 큰 문제예요.

-여성운동에서 통일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신다면?

여성 운동에서 왜 통일이 중요하냐 이거죠. 현재 북한 연구자 가운데에서 여성이 너무 적어요. 제가 대학 교수일 때 대학원에 북한학 과정이 없어서 처음으로 제가 통일법 강의를 만들어 강의를 했어요. 제 밑에서 석사 과정을 거치던 제자들에게 중국과 러시아 등을 연구하게 하고 박사 과정은 법학 대학이 아닌 북한학 과정으로 가라고 보냈어요. 그 중 한 제자가크게 반발했어요. 나는 지금 법학을 해도 법학전문대학원 시대가 열리기 때문에 좁은 문을 뚫고 연구자로 서기 쉽지 않다. 지금은 어렵지만 북한학은 점점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득해서 보냈죠. 북한학과 북한법은 아주 달라요. 북한학은 정치, 경제, 사회를 가르치죠. 이화여대에서는 그 동안 그런 수업이 전혀 없었어요. 이화여대도 한 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해 이렇게 커졌고 여성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 거잖아요. 국민의 사랑을 받은 만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 우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할을 하는 건 희생이죠.

저로서는 교수이고 박사니까, 공부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거죠. 북한을 연구하는 여성 연구자를 만들어야 해요. 북학법만 공부해서는 안돼요. 한국과 북한의 법은 달라요. 우리는 법치주의지만 북한은 당의 결정이 최고예요. 북한학을 먼저 알아야 북한법을 파악할 수 있어요.  또 하나 통일의 과정에서 이화여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강력히 추진해 이화여대 파주 캠퍼스를 열기로 했었어요. 그게 통일에 가까이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굉장히 애를 써서 거의 통과했는데 마지막에 돈 문제로 무산됐어요. 거기 사시는 분들이 땅값을 올려서 결국엔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어요. 아쉬웠죠.

통일에 대한 연구도 몇 개 있어요. 일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 있는 피상속인 재산 상속권을 인정하자는 내용으로, 헌법에서 북한은 우리 주민이라는 기초를 갖게 하는 거죠. 우리 민법상 북한 주민은 상속인이라는 거죠. 그들에게 상속을 인정하고 재산을 주는 걸 법으로 만들라고 1999년 가족법학회에 가서 처음으로 인권적인 문제로 말했는데 그 법이 2012년에 만들어져요. 13년 만에 법이 만들어져서 현재 북한 주민에게 남한 주민이 상속할 수 있어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는 못해요. 물론 지금 남북이 특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재산을 다 가져가진 못해요. 생활비, 교육비, 치료비, 주택 수리비 등으로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직접 반출이 가능해요. 저는 직접 반출 범위를 넓히라고 이야기하고 있죠. 통일을 이루는데 통일 기금이 들겠죠. 차관이 든다는 말도 하고 돈이 많이 들어 통일을 반대한다는 말도 하지만 서로 경제가 윈윈이 되어 통일 기금보다 더 많은 경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희망사항이잖아요.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인천에 살던 어떤 분이 백억 정도의 상속 재산을 남겨두고 돌아가셨어요. 북에 있는 자녀가 미국에 살고 있는 누나에게 머리카락과 손톱을 보내 변호사 선임을 하고 남한 법원에 친자관계확인소를 제기해 승소했어요. 승소를 했으니 상속권을 인정해야 하잖아요. 이걸 인정하는 부분에 대해 법무부와 대법원에서 저에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줘야 한다고 말을 했고. 법원에서도 관련 법이 필요하다고 해서 법이 만들어진 거죠.

또 하나는 통일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있어요. 요즘 통일 과정에서 여성이 나타나고 있나요? 북한에 김여정도 있고 강경화 장관도 있긴 하지만 통일전문가로서 통일을 책임질 수 있는 여자가 없어요. 이건 통일을 준비하는 여성 연구자도 적고 여성 지도자도 적은 거예요. 제가 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일 때 양성 평등 기본법을 전면 개정한 게 있었어요. 거기에 여러 사안과 함께 통일을 넣었어요. 제 47조를 보면 통일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한다는 규정입니다.

연구원장이 됐는데, 연구원에 통일 연구자가 없어요. 연구 과제를 제가 세워서 국회에 보내니 국회의원들이 통일부도 있고 통일연구원도 있는데 왜 여기서 통일 연구를 하냐고 하더라고요. 통일과 관련한 가족과 여성 문제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다시피 한데도요. 법적으로 맹점이 있었던 거죠.
현재는 여성정책연구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됐으며 여성가족부가 통일에 대한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여성들이 통일로 동등하게 나갈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가고 있죠.

마지막 하나는 제가 연구원장이었을 때 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금강산이 막혀 있을 때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통해 북한에 제안한 게 있어요. 평양과학기술 대학에 여자가 하나도 없어요. 이화여대 교수라서 그런지 막 열불이 나요. 그런걸 보면. 정부에서 뭐라고 하든지 간에, 당시 개성공단에 부지가 있어서 북에 간단하게 계획서를 보냈어요. 거기 학교 부지가 있으니까 여성과학기술대학을 설치하겠다라는 안을 보냈죠. 조건부가 붙었는데 정부 돈으로는 안 되고 종교 단체나 기업의 돈은 협력하겠다고 답이 왔어요. 그래서 기업과 종교를 다니며 도와달라고 했는데, 사실 이건 성과를 못 얻었어요. 제가 교수였기 때문인지 4차 산업 시대에 여성들이 과학 기술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북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저의 마음이고 앞으로 꼭 성취했으면 좋겠네요.

공직선거법에 ‘여성공천 30% 의무화’ 목표

-올해 2월에 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연임됐는데 앞으로 어떤 비전과 목표로 여성 운동을 하실 건지요?

크게 두 가지예요. 먼저는 남녀동수. 국회의원들도 남녀동수이고 기업의 임원들도 남녀동수가 됐을 때 조금 더 청렴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우리가 청렴하게 나가야만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남녀동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2015년에 회장이 됐을 때 여성 국회의원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고 싶어서 만 명에게 서명을 받았어요. 각 당 대표를 따라다니면서 공직선거법에 현재 여성 공천을 30프로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노력 규정이 있어요. 거기서 노력을 빼고 적어도 30프로를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으로 바꾸는 게 목표죠, 그때 3당 대표를 찾아갔어요. 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였는데 제가 찾아뵙고 저희 주장을 말씀드리니까  하겠습니다하고 바로 협조적으로 해주셨어요.

대통령께서 그 중 하나로 그때 단계별로 남녀동수로 나가겠다 그 첫 번째로 장관 30프로 이행하신다고 하셨고, 실제로 하셨는데 이제 곧 남녀동수로 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다음으로 중요한 건 경제 문제예요. 남녀임금 격차가 있잖아요.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게 여성 일자리 창출, 중장년 여성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죠. 어쩌면 장관 남녀동수로 만드는 건 쉬워요. 하지만 이건 엄청 어려운 문제죠. 모두가 협조를 해야 해요. 저희도 그렇고요. 여성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전국 17개 시도 회장들이 모여 조금이라도 소득 증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에요. 전국미투지원본부를 제가 만들었어요. 예전에 가정법률상담소에 있을 때 제가 훈련 받은 게 있어요. 상담의 기본은 비밀이라는 것. 미투는 법률 상담이자 심리 상담, 의료 상담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여성 단체들이 잘못하는 게 신원을 공개하고 있어요. 이건 그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에요. 신원 공개를 원하지 않는데, 그럼 상담을 할 수 없다고 한데요. 기본적으로 비밀 상담을 전제로 하는 게 맞아요. 법치주의이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요. 누군가 미투지원본부에서 남자도(상담)하느냐고 묻더라고요.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실에 걸려 있는 #MeToo 로고.(사진 임계훈 작가)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실에 걸려 있는 #MeToo 로고.(사진 임계훈 작가)

"미투 상담의 기본은 ‘비밀’인데,
여성단체들이 잘못하는 것은 신원을 공개하고 있는 것"

 
-현재 보시기에 여성들이 그런 부분에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스스로 지켜나갔다고 생각하세요?

미투 운동이 몇 달 동안 진행되는 동안 남성과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요. 여성들은 사건화 하는 것에 용기를 많이 갖게 됐고 남성들은 더욱 조심하게 됐죠. 지금까지 관행처럼 해오던 것들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많이 바뀐 건 분명해요. 다만 직장에서 나이가 많은 상급자들이나 CEO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에 젖어서 아직도 사고가 나요. 여자들이 윗 사람이니 방어가 어렵죠. 그런데 또 그러면 그런 것들을 왜 방어하지 않았냐고 해요. 심지어 대법원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죠. 남자들이 어떻게든 데리고 가서 느닷없이 공격을 하면 방어할 틈 없이 당하는 거죠. 그런 걸 심리학자는 다 이해하지만 판사나 검사는 이해를 못해요. 많이 바꿔야죠. 예전에는 판사나 검사들이 왜 죽기 살기로 방어하지 않았냐, 소리 지르지 않았냐고 말을 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걸 남자들은 이해를 못하는 거죠. 미투 운동을 통해 모두가 적극적으로 협조해 나가면서 정부나 국회나 여성단체들이 좋은 정책을 내기 위해 공동으로 세미나를 열었어요. 그런 의식을 바탕으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서 법이 시행이 되면 상대방이 싫어할 때는 그러면 안 된다는 인식들이 더 정착을 하겠죠.

-여성만의 공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성 공간과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우리의 삶에서 남녀가 사귀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는 큰 그림이 있잖아요. 그런 와중에 이런 사고가 나는 건데. 가장 큰 그림은 남녀가 서로 사랑해야 해요. 외국에서 어떤 여성이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다 보니 사랑할 기회를 놓치는 것 같다고 쓴 글을 본 적 있어요. 내가 볼 때는 너무 여성들의 공간을 마련 한다기보다 더 큰 틀에서 남성과 여성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위험한 요소들을 각종 장치로 방어를 하며 함께 대책을 마련해 나가되 기본적으로는 함께 손을 잡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내 삶에서 나에게 기회를 준 것도 수많은 남성이거든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어린이집이 많이 만들어져야
사립유치원 해법은 엄마들이 드나들게 하면서 자율성을 갖게 해야"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일단 시스템 적으로 어린이집이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주부들도 의식이 변해야 해요. 남의 아이라도 내 아이처럼 기를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죠. 물론 여기에는 안전하게 보살필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고요. 시스템의 틀은 이렇게 가되, 우선은 절대적으로 어린이집이 많아야 해요.

-최근 논란이 됐던 사립유치원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립 유치원의 문제는 우선 엄마들이 못 들어오게 하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교육에 방해된다는 이유죠. 우선 엄마들이 드나들게 하면서 자율성을 갖게 해야 해요. 그리고 선생님들도 자격이 약한 사람이 많아요. 기본적으로 교육이 약한 사람들이 선생님이 되는 경우가 많아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평소에 많이 걸으려고 애를 씁니다. 저는 신앙이 있으니까 신앙적으로는 입이 꽉 막히면 하나님께 공을 던져 버려요. 모든 것들이 막힌듯 하지만 결국은 큰 흐름을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한 발짝 한 발짝씩 가다 보면 결국은 다 해결 될 거라 믿어요.

/정리 : 고정 기자  사진 : 임계훈 작가 inheritz@navw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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