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실(胎室)에 매료돼 태실복원에 올인하는 김득환 서삼릉태실연구소장
  • 장재진
  • 승인 2018.11.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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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관심두지 않은‘문화역사’사재 들여 12년간 연구·자료수집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하려 훼손...“복원통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력”

우리 민족은 아기가 태어나면, 태(胎)를 태항아리에 넣어 땅 속에 묻는 세계 유일의 장태 문화를 계승해왔다. 태를 묻는 풍습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를 받아 항아리에 보존했다. 태를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는 풍속은 왕가뿐 아니라 가산(家山)을 가지고 있는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도 계승돼 왔다. 세계 유일의 장태 문화 태실에 매료된 김득환 서삼릉태실연구소 소장(60. 재야 사학자)은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태실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데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득환 소장을 만나 태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에디터_장재진 논설주간 yerojin@hanmail.net

김득환 서삼릉태실연구소 소장이 재현한 태 항아리를 들고 태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여성시대)
김득환 서삼릉태실연구소 소장이 재현한 태 항아리를 들고 태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여성시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사적 제200호)에는 효릉 희릉 예릉 등 3개의 능이 있다. 그래서 서삼릉이라 부른다. 희릉은 조선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효릉은 인종과 인종비 인성왕후의 쌍릉이고, 예릉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가 잠든 쌍릉이다.
서삼릉에는 왕실의 묘지가 이루어져 명종과 숙종 이후 조선 말기까지 역대 후궁을 비롯해 대군, 군, 공주, 옹주 등의 많은 분묘가 조성돼 있으며, 200여평의 면적에 사방으로 담을 두른 조선왕조의 태실 집장지가 있다.

고양시에서 7대째 거주하고 있는 김득환(60)서삼릉태실연구소 소장은 “태실 집장지야말로 일본 침략자들이 남기고 간 역사 침탈의 살아 있는 교육장”이라며 “서삼릉에 묻혀 있는 태항아리들은 원래의 태항아리에서 모두 바꿔친 것들이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해 묻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인들은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태조의 태실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역대 임금의 태실 22기, 대군 세자 공주 등 태실 32위, 총 54기의 태실을 한데 모아 집단으로 태실에 안치했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고, 왕실에서 사용했던 태항아리를 비롯해 함께 묻었던 부장품들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다. 

민족 정기가 유린된 아픈 과거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서삼릉 태실 집장지,(출처 서삼릉태실연구소)
민족 정기가 유린된 아픈 과거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서삼릉 태실 집장지,(출처 서삼릉태실연구소)

태실연구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저는 고양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우리 집안은 7대째 고양시에 살고 있어요. 살고 있으면서 12년전부터 태실에 반해서, 태실연구에 올인하고 있어요. 2년전부터 모은 자료를 연구정리하여 2016년에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이라는 책을 냈어요. 올해 12월에 2권이 발간되죠.”
서삼릉태실연구소 사무실은 고양시청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연구소 안에는 서삼릉에서 나온 태항아리 재현품이 진열돼 있었다.
“(진열된 태항아리들을 가리키며) 저 뒤에 있는 것처럼 태항아리를 그대로 복원, 재현작업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전시해 놓았죠”
 
태실연구소를 본격 운영한지 3년 넘었다는 김 소장은 우리나라에 태실 연구자가 많지 않다며 울진에 심현용씨라는 분이 태실박사로 한 분밖에 안계시고, 태실연구소를 내고 연구를 하는 사람은 김득환 소장 자신뿐이라고 소개했다.

태실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서삼릉 태실 답사를 갔다가 어느 날 매료가 됐어요. 아! 이런 것도 있었는데 왜 알리질 못했지.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90년 전에 서삼릉에다 모아놓은 게 공동묘지처럼 만들어놨어요. 그래서 이건 진짜 마음이 아팠죠. 그래서 태실연구를 한 계기가 됐어요”

덕혜옹주 태항아리의 형태는 키가 낮고 4개의 고리가 몸체 아래에 붙은 형태를 띠었다.(출처 태실연구소)
덕혜옹주 태항아리의 형태는 키가 낮고 4개의 고리가 몸체 아래에 붙은 형태를 띠었다.(출처 태실연구소)
국보 제125호 녹유 뼈단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출처 태실연구소)
국보 제125호 녹유 뼈단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출처 태실연구소)

일제가 말살했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말살했을까요?
“일제는 거의 비조직적인 것처럼 조직적으로 말살을 시켰죠. 일제가 여러 가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서 한 일들 중에 명산에 쇠말뚝 박기 그런 것들이 있죠. 아마 그거보다도 더 크게 의미를 두고 한 것이 태실파괴이라고 봅니다. 이것을 조직적으로 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공부하는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들, 교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을 파악하고 거기에 있는 부분들을 거의 도굴정도 수준의 발굴을 하는 거죠. 몰래 가서 도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조선인들에게 도굴을 시켜서 가져오게 하면 그걸 몇 푼 주고 사가지고 나가고 해지요. 태항아리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백자거든요. 그게 분청사기도 있고 백자도 있고 문화재 급들입니다. 조선 왕실의 태항아리는 명품으로써의 가치도 있고 문화재 역할도 하고. 또 일본 정부로서 보면 태실을 파괴함으로써 정기를 훼손시키는 효과를 보는거죠. 그래서 서삼릉 능역 옆에다가 전국에 있는 태실들을 파괴시켜 모아가지고 태실을 이장한 거예요. 일제의 간악함 그런 파괴의 흔적들을 우리가 공부를 해서 후손들에게 알리자 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된거죠.일인들이 또 담장을 쌓을 때도요, 가운데를 나누어서 날 일(日)자를 만들었어요. 하늘에서 보면 일본을 상징하는 날 일자가 보이도록. 그래서 그걸 나중에 다 없애고 지그처럼 하나의 태실로 만들었죠“

태실 연구하는데 있어서 정부나 공공기관 등의 연구지원이 있습니까?
“지원은 일체 없습니다. 그냥 제 사재를 들여 연구하는 것이죠. 비록 사재를 털어 연구하고 있지만, 우리 장태 문화 연구를 남이 안하고 내가 하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태실을 보존하고 원래대로 복원하는데 큰 자부심이 있죠”

현재 전국 태실 실태는 어떤가요?
“역사 복원과 재현. 서삼릉에 태실이 와있는 자체도 굉장히 마음 아프거든요. 지방에 160군데 산재돼서 잘 남아 있어야 되는데 일제가 와서 보니까 우리나라는 아주 정리가 잘 돼 있어서 정기를 끊는다고 하죠. 전부 다 아주 그냥 망가트려 놔버렸어요. 그러다보니까 지금 경북 성주에 세종대왕 자태실이라고 세종대왕의 왕자군이 18명이에요. 18명 것을 한 군데 해놓은 게 있고, 또 명종태실이라고 서산에 가면 잘 남아있어요. 잘 남아 있는 곳이 몇 개 없어요”

김 소장은 태실 복원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3월 1일 서삼릉 태실 위안제 및 태항아리 재현전시회를 개최했다. 조선의 태실을 일제가 강제 이장한 지 90년을 기리는 행사다.
“서삼릉에 태실이 54개가 있거든요. 54개를 편안히 무탈하고 편안히 모셔주십시오하고 토지신한테 제를 올리는 거죠”

태 항아리안의 태는 어떤 형태로 보존되어 있습니까?
“옛날에는 태를 항아리 안에 넣기 위해서 금종이에 태를 백 번을 닦아서 약간 건조시켜서 넣게 되죠. 태가 편안히 잘 있어야 후대가 아주 편안하고, 태가 자연스레 녹아서 가라 앉아버려요. 태는 지방질이기 때문에 녹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무것도 없어져요. 그러니까 거기 편히 계세요하며 태실이 원래 길 방향, 정 방향의 엄마의 가슴처럼 예쁜 산 위에 그 기가 흐르지 않는 곳에 태실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왕가에서는 왕자일 경우에는 태봉지기를 뒀어요. 왕자일 경우에는 500보 바깥까지 접근을 못하게 하고 입장 금지를 시켰어요. 공주일 경우에는 300보였죠”

김득환 소장(우)과 김성호 한국선사문화연구소 소장(좌)이 인터뷰에 함께 했다(사진 여성시대)
김득환 소장(우)과 김성호 한국선사문화연구소 소장(좌)이 인터뷰에 함께 했다(사진 여성시대)

태 항아리는 2중 구조로 외항아리와 내항아리로 되어 있다고 인터뷰에 동석한 김성호 한국선사문화연구소 소장(우측 페이지 작은 사진 왼쪽)이 추가로 설명했다.   

“항아리가 두 개예요. 큰 항아리 외항아리 안에 내항아리가 다시 들어갑니다. 처음에 태를 봉할 때는 김 소장이 말씀하셨다시피 궁궐에서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태실까지 태봉하는 과정 전체를 책임을 지는 도감인 안태감을 둬서 아주 국가의 행사가 되죠, 태가 유기물이다보니까 향온주라고 하는데 알콜 성분으로 소독을 해서 말리는 형태로 해서 잘 꼬아서 싸고 또 싸서 내항아리 안에다가 넣고 그걸 또 움직이지 않게 여러 가지 솜이라든가 집어넣고요 밀봉을 합니다. 꿀 같은 이런 것들을 바르고 묶고 해서 구멍 있는 곳에 끈을 끼워서 매는 거죠.  태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로 접근을 해야 돼요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게 태잖아요. 기본적으로. 태를 소중하게 여기고 태를 보관하고 태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적어도 한 가족이라고 하는 개념과 나라라고 하는, 어떤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중국에도 한두 군데 태봉, 태실 같은 것들이 남아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조선500년 동안 꾸준하게 아주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그런 문화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죠”

여러형태의 태항아리(출처 태실연구소)
여러형태의 태항아리(출처 태실연구소)

태실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서삼릉 태실연구소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출간하고 그런 게 다 준비죠. 왜냐면 일제에 의해 이게 다 훼손이 됐잖아요. 사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할 수 없는 이유도 훼손이 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장 시급한 것이 원래대로의 모양을 일단 찾아내 복원하는 거죠. 그래야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하지 않을까합니다”

복원하려면 자료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다 확보가 되어 있습니까?
“경상북도에서 며칠 전에 책을 받았어요. 그 책에는 경북에 있는 태실들이 어떻게 어디에 있었고 망가진 것은 망가진 대로, 훼손된 것은 있는 그대로 기록을 잘 해 놓았더군요. 얼마전에 고궁박물관에서 발간한 책도 있어요”

연구와 복원과 관련하여 연계 사업은 하시는지...
“태문화와 관련하여 ‘태 도장’(도장형태의 태보관함)을 구상하고 있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떨어진 아기 배꼽을 말려서 이쁘게 만들어 약품으로 처리한 뒤 조립해서 도장을 만드는 것이죠. 여기에 미니 태항아리와 지석(탄생기록)을 세트로 하여 상품화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태문화 연구와 복원사업을 위해서죠. 지석에는 주인공에 대한 이력과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까지 다 넣어서 드리면 가족의 어떤 이어짐을 상징하는 좋은 물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가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선물이 되리라 봅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세요.
“적어도 태실문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정도로 우리 민족문화의 고유의 가치가 담겨져 있는 장태 문화는 인간으로서 하는 가장 아름다운 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연구 복원활동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서삼릉 태실연구소 연혁(요약)
2016년 6월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 1편 출간
2016년 8월15일 71주년 광복절 맞아 서삼릉 비공개 구역에 대한 역사 답사 및 사진 전시회 개최
2017년 8월15일 72주년 광복절 맞아 서삼릉 비공개 구역에 대한 역사 답사 및 사진 전시회 개최
2018년 1월 서삼릉 태실에서 출토된 조선 역대왕 18명의 태항아리 31개 재현 제작 완료-서삼릉 태실연구소내 전시
2018년 3월1일 제99회 삼일절 맞아 일제에 의해 조선임금들의 태실들이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된 지 90주년을 기념 ‘서삼릉 태실 안위제 및 태항아리 전시회’주최 주관
2018년 8월15일 73주년 광복절 맞아 서삼릉 비공개 구역에 대한 역사 답사 및 사진 전시회 개최
2018년 12월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 2편 출간예정

 

책 소개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태실胎室

김득환(서삼릉택실연구소 소장)저
도서출판 책읽는사람들 刊
369쪽 19,800원

‘세계적인 문화유산-태실(胎室)’은 국내 최초 태실 관련 전문 서적으로,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태실에 대해 체계적으로 집필한 서적이다.

우리나라 태실문화를 연구하고 복원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득화 서삼릉 태실연구소 소장이 잊혀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인 ‘태실’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지키기 위해 발간했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됐다. 태실 문화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돼야 하는 이유, 태실의 유래와 철학, 태실의 조성 절차,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태실, 조선왕조 왕들의 태실은 어떻계 훼손 당했나 등을 담았다. 특히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 태실의 모습과 일제 강점기시절 훼손 사례, 여행지로 추천할 만한 태실 등을 수록하고 있다.

저자는 우린 고유 태실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한 발걸음을 결코 머추지 않겠다며 지속적인 자료수집과 답사를 통해 태실에 관한 족적을 남기겠다고 밝혔다.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태실‘은 지난 2016년 5월 초판이 발해됐으며, 오는 2018년 12월 2권이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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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득환
경기도 고양시 벽제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조선 왕조의 태실들이 집장된 서삼릉으로 소풍을 다녔다. 유년시절 자연스럽게 태실을 접한 후, 태실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양시 생활체육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후,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했으며 경기도 향토문화 연구원 및 조선황실태실 연구소 소장 겸 서삼릉복원추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논문으로는 ‘경기향토사학’ 제12집(2007년)에 실린 ‘서삼릉 능역의 능묘와 태실 등에 대한 고찰’과 ‘경기향토사학’ 제 16집 (2011년)에 실린 ‘지명 유래에 대하여’ (고양 배다리 중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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