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양심적 병역거부' 14년 만에 뒤집힌 판례...개혁인가 특혜인가
  • 김민진 기자
  • 승인 2018.11.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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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 기간 현역병보다 2배 긴 36개월로 하는 방안 논의

2018111. 대법원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신도 오승헌(3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병역법 위반죄 처벌은 합당하다고 판단한 판례를 14년 만에 뒤집은 것. 1968년 최초 판결 이래 처음으로 선고된 무죄 판결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과연 양심적 병역거부란 무엇이고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의 쟁점들을 살펴보자.

김민진 기자(kimonkey2@hanmail.net)

양심적' 병역거부냐? ‘종교적' 병역거부냐?

양심적 병역거부는 ‘Conscientious objection’의 번역으로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적인 신념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전쟁 수행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를 보편적 거부, 특정 전쟁이나 명령만을 거부하는 것을 선택적 거부라 부른다. 다른 나라의 전쟁에 여러 번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 국제법상 불법으로 판명된 이라크 전쟁에 복무를 거부한 예가 선택적 거부에 해당된다. 이 외에도 군사 훈련이나 총을 드는 집총은 거부하지만, 비전투적인 군 복무나 민간 영역의 대체복무는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군복무 뿐만 아니라 대체복무까지를 모두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특정종교의 신도들이 병역거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라고 불렀으나, 2001년 이후로 개인의 신념이나 사상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양심'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선하고 좋은 마음이라고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비 양심적인 인간이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어디까지나 법률용어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에 대한 논란을 예견한 듯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말한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 ‘양심은 그 주체인 개인의 마음의 소리일 뿐, 그것으로 인한 행동이 반드시 객관적 가치기준에서 선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양심이라는 단어가 가진 긍정적이고 선한 뉘앙스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존재한다.

양심적 병역사건 주요 판결 일지
양심적 병역사건 주요 판결 일지

병역기피, 어떤 이유든 '투옥' 등 사회적 불이익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세계적 스타 무하마드 알리
무하마드 알리

국가 간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어떤 이유에서건 병역을 기피하는 이들은 처형, 투옥 등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아왔다. 세계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일정 금액을 내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도 있고, 자신을 대신해 복무할 사람을 보내는 것도 허용이 되는 나라도 많았지만, 세계 대전을 거치며 병역거부는 국가의 의무를 등한시하는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끝나자, 개인의 자유와 국가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고,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병역거부를 제도적으로 합법화하는 시도가 많아졌다. 특히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병역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당시 복싱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의 병역 거부는 세계적인 이슈였다. “나는 베트콩에게 아무런 원망도 없다. 그들은 나를 (흑인비하 표현인) ‘니거라고 부른 적이 없다.” 4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1971년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같은 추세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5년 국제사면위원회(AI) 한국지부에 따르면 유엔 193개 국가 중 57개국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과 법률에 명시하고 있으며 12개 국가는 법적으로 혹은 관행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나머지 88개국은 군대가 없거나 모병제가 도입된 곳이다. 한국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36개국 뿐으로 이 중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는 이가 가장 많은 곳이 한국이다. 한국은 어째서 이토록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되어서는 보수적인 나라가 된 것일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강화 197010월 유신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초기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꽤 합리적으로 다룬 사례가 많았다. 통상 1년 가량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는데,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비전투병과에 배치하거나, 비무장 후방부대에 편입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처리 기준이 없다보니 지휘관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상급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처우가 천차만별이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것은 197010월 유신 이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병무청을 신설하고 입영율 100%’ 달성을 지시했다. 1973년에는 병역기피자와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을 정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짧게는 1, 길게는 7년 이상을 복역했고, 나온 뒤에 다시 잡아가 강제 입영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과거처럼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은 사라지고 병역법에 따라 처벌하기 시작, 통상 1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 병역을 거부하는 이를 처벌하는 병역법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두고 많은 의견이 있었고, 올해 628, 헌법재판소는 현역입영 또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부터 3일이 지나도 불응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881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같은 법 5조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 국회가 20191231일까지 대체복무제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라는 판시를 내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올해 111.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이에 따른 다양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5.16군사쿠데타 주역들.

대체복무제 도입 유럽국가들, 현역 기간의 1.5배 안넘어
한국의
36개월 대체복무는 징벌적 조치라는 의견도 제기

개인의 신념과 사상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양심적 병역거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대표되는 특정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20167월 기준, 전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무죄 판결이 특정 종교의 편의를 봐주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실제로 판결 이후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 문의가 폭주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거기다 주관적이고 가변적인 성격을 지니는 양심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대법관 다수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는 양심은 신념이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고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영향 아래 있으며 좀처럼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구체적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를 심사해야 하고, 이는 성질상 양심과 관련 있는 간접·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빙성을 검사가 탄핵하는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의 신념·가치·세계관 등 주관적 사유를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이는 법률 해석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어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과 강도에 대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여론은 군 복무를 하지 않는 특혜'를 받는 만큼,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강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와 국회 역시 마찬가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병보다 2배 긴 36개월로 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고 논의 중이다. 하지만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대체복무는 군 복무기간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보고서를 낸 적도 있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통상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36개월 대체복무는 징벌적 조치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내려졌다. 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 소송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1031일 기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모두 227건이며 전국 법원에 계류 중인 재판은 1000여건이 넘어간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는 모든 재판에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한 사실.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진로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법관들의 보충, 반대의견

헌법재판소는 최근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를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현역입영을 강제함으로써 과도한 부담을 지운 것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 있어 최소 침해 원칙에 어긋난다. - 이동원 대법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 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 - 박상옥 대법관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 김재형 대법관

국제인권규약에 조화되도록 법률을 해석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사법부가 지켜야 할 책무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측면에서도 당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선수 대법관)

다수 의견은 특정 종파의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범위를 근거 없이 제한했다. - 이기택 대법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수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으며 6·25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헌법은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신성한 사명으로 규정하고 국방의 의무를 모든 국민의 기본 의무로 규정했다. - 조희대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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