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복식 연구가 이순화의 작심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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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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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현 문화에 경각심을 지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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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복식 연구가 이순화의 작심 발언
“한복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현 문화에 경각심을 지녀야”

한국의 복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40여 년 가까이 외길을 걸어온 전통 복식 연구가 이순화를 만났다. 한복에서부터 현대 의상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패션업계의 찬사를 받고 있는 그녀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프랑스 스트람스부르, 이탈리아 피티 궁전 등에서 한국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알렸던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그런 그녀가 국적불명의 한복이 무분별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작심 발언을 해 화제다. 

       에디터_ 고정 human4423@hanmail.net / 사진_ 임계훈 inheritz@naver.com
       
최근 고궁이나 전주 한옥마을에 한복을 입고 거니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복의 대중화는 좋은 현상이지만 동시에 심각한 부작용도 함께 생겨났다. 경복궁 앞의 한복 대여 샵이 70여 개로 늘어나면서 한복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 대여료는 7천원부터 시작해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제작된 옷들은 한복이라 부르기 민망할 만큼 고유의 미를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우리 국민들에게 소개된다. 우리 옷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의복으로의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전통 복식 연구가 이순화는 최근 고궁과 한옥 마을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가 없음

 

시대를 반영하는 전통의 복원
그녀가 한복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40여 년 전 20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부잣집 4대 독자 외며느리였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비슷한 환경의 집안으로 시집을 간 그녀는 우연히 접한 한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복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 생각하게 된 그녀는 한복을 배우기 위해 남몰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의 전통 복식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정말 어디든 찾아갔죠. 형태와 바느질, 색상, 소재 등을 연구하고 의복과 관련된 기록들을 찾았어요. 지금까지 남아있는 오래된 의복에 기계가 한 것보다 훨씬 더 견고한 박음질이 되어 있는 걸 보면 너무 놀라웠죠. 그렇기에 저도 제대로 만들려고 더욱 노력했고요. 저에게 전통과 한복이라는 어휘는 그만큼 쉽게 쓰기 어려운 단어들이었어요.”

 

긴 세월 그녀는 아직 세상에 소개되지 않은 분야를 파고들었다. 2003년에는 한국 최초로 무속 의상을 복원해 무속인 300명과 공연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10년에는 한국의 사찰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양주 연화사에서 우리나라에 상주하는 외국 대사들을 앞에 두고 이색 패션쇼를 열었다. 단군 시대의 의복을 선보인 2009년 ‘오천년 역사는 흐른다’도 중요한 무대 중 하나. “단군 시대의 옷들은 오롯이 상상이에요. 고구려 시대의 의복을 살펴볼 수 있는 벽화가 현재까지 남아 있기에 그 이전 시대의 의복 스타일을 유추하며 추적해 간 거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고구려의 선이어서, 흥미롭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현재의 한복이 정립된 것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예요. 전통 의복을 재현하려면 초상이나 그림에 남아있는 의복의 모습을 정확히 캐치하고 그 시대를 최대한 반영해야 하죠.”

 

한복에 천연 염색을 접목해 대중화 시킨 것도 그녀였다. 천연 염색은 사람 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천에 얼룩이 있고 변형이 온다. 한복으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파랗던 잔디도 서리가 내리면 누렇게 변하는데 자연이 변하는 것처럼 천연을 입으려면 변하는 걸 입는 게 맞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옷들로 패션쇼를 열며 ‘값비싼, 귀한 옷은 이처럼 변하는 옷이다’고 했는데, 그 뒤부터 염색한 옷이 높이 평가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전통을 지키며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개척해나간 셈이다.

 

            

한복의 품격은 스스로 높이는 것
일본은 자국의 옷 한 벌을 평생에 걸쳐 갖는 것으로 생각해 굉장히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기모노와 중국의 치파오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변형이 됐음에도 여전히 깊은 품격을 지닌다. 하지만 한복은 최근 급속도로 대중화되면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저렴한 옷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경복궁에서 사람들이 대여해 입고 있는 대부분의 옷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한복 선이 전혀 없어요. 전통에 맞춘 것이 아니라 양장의 방식으로 안감과 겉감을 박았기 때문이죠. 선과 박음질 모두 한국의 것이 아니에요. 한국 고유의 복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선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가 없을 만큼 아름답기에 더 안타깝죠. 한복의 선을 살린 상태에서 새롭게 창조하며 발전해야 바람직하지만, 지금 고궁과 거리에서 쏟아지고 있는 퓨전 한복들은 전통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어요. 이런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하면, 한복의 이미지는 지금의 모습대로 굳어지겠죠. 명품이 빛나는 이유는 비싸고 귀하기 때문이에요. 품격은 스스로 높이는 거죠. 왜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한복을 그렇게 가치 없고 저렴한 7000원짜리 옷으로 격하시키는 걸까요?”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한복의 기준
이런 문제 때문인지 종로구청은 얼마 전 퓨전 한복을 고궁 무료입장에서 제외시킨다고 발표했다. 이 문제는 한복 입기를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는 젊은 층을 비롯해 여러 계층에서 활발한 찬반 논쟁으로 불붙었고 10월에는 국감에서도 논의됐다. 이 자리에는 손혜원 의원과 김수민 의원이  한복 샵에서 직접 빌린 3만 원짜리 한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전통 복식 문화의 절대적 보존이 아니라 효율적인 보존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종로구청이 한복의 기준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경복궁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종로구청에서 책임을 느끼고 있죠. 평소에도 김영종 구청장님은 이런 문제에는 한복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다고 힘을 실어주세요. 국가의 얼이 바로 잡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죠. 종로구청이 한복의 기준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이 질문은 사실 그 국회의원들에게 되물어야 해요. 그날 국감 자리에 입고 온 한복은 화학적인 성분으로 금박 처리가 된 국적 불명의 옷이었어요. 그걸 국회의원이 입고 나와 한복의 대중화를 주장하는 건 창피할 일이죠. 한복의 기준을 가볍게 다루는 건 국회의원들이에요. 어깨 깃선이 아예 없는, 한국의 선이 사라진 옷을 입고 국감 자리에 나왔으면서 어떻게 한복의 기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순화의 색을 담은 최고의 명품
물론 우리나라에도 의미 있는 패션쇼가 열릴 때마다 직접 달려와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얼마 전 그녀가 열었던 광복 70주년 기념 민족대표 33인 패션쇼에도 국회의원 수십 명이 함께 참여했다. “한기호, 이현재, 홍문종, 안상수, 김광진, 노웅래, 한정애, 진성준 등 수많은 정치인들이 역사의 한 자락을 표현해 내기 위해 리허설부터 본 공연까지 수 시간을 함께 했어요. 이런 이들이 있는 반면 한국의 전통에 대해 잘 모른 채 관련 업무를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잃은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한복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한복은 우리의 자존심이예요.”

 

매해 전 세계 곳곳의 무대에 서는 그녀는 앞으로도 당분간 미국과 중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패션쇼를 열며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예정이다. 그녀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자신만의 색으로 해석한 한복 안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메시지를 다양하게 담아내기 때문. 그녀는 수천 년 전에 존재했을 전통 복식과 현재 우리에게 계승되고 있는 한복의 미묘한 차이를 새롭게 해석해내며 한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아울러 더 나아가 샤넬이나 구찌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명품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매번 미래까지 이어지는 가치를 의상에 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언제나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모든 색을 적절하고 자유롭게 매치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자 하죠. 디자이너 이순화의 이름으로, 내가 추구하는 목적과 나만의 색을 담은 최고의 명품 옷을 만들고 싶어요.”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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