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슬픈 역사의 자화상
  • 최경현 기자
  • 승인 2018.09.1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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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국내 첫 기림의 날 지정
- 8월 14일 국내 첫 정부기념식 열려
지난 8월 14일 충남 천안시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하 기림의 날) 첫 정부 기념행사가 열렸 다. 이날 행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시민 400여 명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기념사를 읽으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야 비로소 해 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추모비 제막식과 기념식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비는 총 네 개의 벽으로 고통의 벽·절망의 벽·연대의 벽·승화의 벽으 로 이뤄졌다.

에디터_ 최경현 rplusone@naver.com

기림의 날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 할머니 - 빼앗긴 순정
기림의 날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 할머니 - 빼앗긴 순정

조형물로 남기는 영원한 기억

 

국립망향의 동산은 재외동포 및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의 유골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9명의 유골이 안장돼있다. ‘안식 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 람의 ‘눈’ 형상을 하고 있다.

영혼의 눈, 눈물의 바다를 상징하는 표지석은 위 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시선과 할머니를 위로하고 기억하는 우리들의 시선을 담았다. 또 할머니들이 흘렸던 눈물을 상징한다.

 

27년간의 눈물, 8월 14일의 의미

 

1991년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故)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가 국내 최초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피해사실을 증언한 날이다. 정부는 김학순 할머니의 정신을 이어받아 8월 14일 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27년 만의 일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법정 증언 모습 출처  종군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법정 증언 모습 출처 종군위안부

 

 

“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 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 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 나올 때 좀 무서웠지만 죽 어도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 요.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따라간다고 하겠어요? 무서우니까 안 갈려고 반항을 하니까 발길로 차면서 내 말을 잘 들 으면 너는 살 것이고 내 말에 반항하면 너는 여기서 죽는 거야. 죽고. 결국은 그야말로 참 계집애가 이 꽉 물고 강간을 당하는... 그 참혹한...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못다 하겠어. 이때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1991년 첫 증언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위안부’ 관련 문 헌 자료는 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15일 전수 연 합군에 의한 전쟁범죄 추궁을 회피하기 위해 당시 일본군과 정부에 의해 대부분이 소각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중요한 문건은 일본 정부가 공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술 자료는 당시의 역사복원을 위해 중요한 의의가 있다. 김 할머니의 증언이 있던 당시는 위안부 피해자를 대하는 시선이 따가웠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 자들이 위안부 피해를 숨긴 채 살아야 했다.

김 할머 니의 첫 공개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이 증언들은 일본 군‘위안부’ 문제가 인권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알려지 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 의회(이하 정대협)와 민간단체들이 2012년 12월 대 만에서 열리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 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 안부 기림일’로 정해 기념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2017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일 본군‘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해 올해부터 전 국 각지에서 기림의 날과 관련된 행사가 진행된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27년 만의 일이다.

 

지난 8월15일 수요집회에서 발언중인 이용수 할머니
지난 8월15일 수요집회에서 발언중인 이용수 할머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 관 앞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992년에 시작한 수요시위는 지난 8월 15일 1348차를 맞았 다. 광복 73주년을 맞은 지난 집회에선 36 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3000여 명의 시민 이 모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인 이용수(91) 할머 니는 이날 집회에 참석해 “제가 피해자면 여러분도 피해자이고 우리나라도 청와대도 피해자”라며 “200살까지 살아서 반드시 여 러분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다.

 

 

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27명.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필요

2018년 8월 현재 기준으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총 27명으로 평균나이는 91세다. 지난 2000년 보건 복지부에 등록된 피해자 199명 중 172명이 사망한 수치다. 마지막 사망자는 지난달인 7월에 별세한 故 김복 득 할머니(101세)로 생존자들은 고령과 병마로 사실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 리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인 것일까?

1991년 우리나라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 수송, 관리 등에 개입한 사실을 입증 하는 문서를 발견했고 이 문제에 대해 일본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결국 1992년 1월에 이뤄진 한 일정상회담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문제 해결을 위한 요청에 따라 일본의 반성과 사과가 있었다. 이어 정부는 ‘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을 설치해 전국의 시·군·구청에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1998년 5월 김대중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3,150만 원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했고 위안소와 관련된 일본인에 대해 입국 금지를 시켰다.

박근혜 정부시절인 2015년 12월 28일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 측 의 피해자 지원금 10억 엔(한화 약 111억 원)을 합의했다. 일본측은 이에대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 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당시 정부는 협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 분히 수렴하지 않고, 서둘러 합의를 매듭지었다. 결과적으로 피해 할머니들로부터 매서운 질타를 받았고,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정부 입장 위주의 협상이라는 지적과 함께 한국 정부의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끊 이지 않았다.

2018년 1월,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한 2차대전 당시 미군 보고서(42~43년 작성)에 따르면 'ATIS 연구보 고서 120호'라는 심층 조사보고서(포로심문서)를 통해 일본은 일본군 '위안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 이 밝혀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월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일본 출연금 10억엔,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 당하겠다”며 “위안부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없다. 피해자들의 명예 존엄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8월 10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연구소를 설치했다. 연구소는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국내외 중요 기록물을 발굴, 조사하고 기록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보존 가치가 높 은 기록물은 ‘국가기록물’로 지정돼 관리 한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자료들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e-역사관(www.hermuseum.go.kr)을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미 래세대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객관적 이고 실증적인 연구결과 등을 총괄ㆍ집적하고 후속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총리에게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 내용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 일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면서 “기록의 발굴부터 보존과 확산, 연구지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책무를 다하 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불편함을 마주할 때

정부의 노력과 함께 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커지면서 역사관과 기념관도 늘고 있다.

 서울과 부산 등 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기록을 역사관을 통해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기념의 날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httpwww.womenandwarmuseum.netcontentsmainmain

 

사진)오른쪽 위부터

일본군'위안부'역사관 httpwww.nanum.orgsub2sub1.php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www.joinheeum.com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httpmuseum.ilje.or.krkorMain.do

 

 

 

 

 

 

 

 

 

 

 

 

사진)왼쪽 위부터

 책 ㅣ 흐르는 편지ㅣ 김숨

다큐멘터리 ㅣ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ㅣ 2007

영화 ㅣ 허스토리 ㅣ 2017

영화 ㅣ 아이캔 스피크  ㅣ 2017

영화와 도서를 통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간접 체험할 수도 있다.

 

 

 

 

 

 

 

 

 

 

 

생존자 27명을 도울 수 있는 쉽고 편한 방법들도 늘고 있다.

                                                                                                               

희움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운영기금으로 사용된다
나눔의 집 에서 할머니들에게 후원 봉사 나눔의집관람이 가능하다
나눔의 집 에서 할머니들에게 후원 봉사 나눔의집관람이 가능하다

 

 

 

 

 

 

 

 

 

 

 

 

김미영(45 마포구) 씨는 “광복절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수요집회에 처음 참석했다”면서 “참여자 대 부분이 학생들이라 놀랐고, 작은 참여로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진실한 반성이 화해로 나가는 길이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일본의 태도에 따라 남 아있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뿐 아니라 폭력에 노출 된 세계의 모든 여성인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 으로 예상된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일본의 태도 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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