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바쳐도 좋아! 황금처럼 번쩍이는 것이라면...
  • 김유경 (스페인어 전문 번역가)
  • 승인 2018.09.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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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특별전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2018.8.4(토)~2018.10.28(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반세기도 채 되지 않은 1541년경, 유럽 탐험가들 사이에 풍문이 나돌았다. 바다 저편 황금이 가득한 땅, ‘엘도라도’가 있다고. 황금에 눈먼 혹은 호기심에 가득 찬 수많은 탐험가들이 멀고도 험준한 길을 떠났고, 대부분 병에 걸리거나 굶어 죽거나 그도 아니면 원주민들에게 잔인한 죽임을 당했다. 과연 그들이 애타게 찾았던 ‘엘도라도’는 정말 존재한 것일까? 온통 황금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있는 것일까?

‘엘도라도(El dorado)’는 어원적으로 스페인어 정관사 ‘엘(El)’과 ‘도라도(dorado: 황금색의, 황금 칠이 된, 금박)’가 합쳐진 말로, 직역하자면 ‘황금색의 그 무엇’이란 뜻이다. 금을 찾아 남미에 발 디딘 유럽의 정복자들은 그것을 ‘황금 도시’로 해석했지만, 이건 반쪽짜리 진실일 뿐이었다.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엘도라도’의 진짜 뜻은

황금 ‘도시’가 아닌 ‘사람’일 수도...

그 당시 남미 콜롬비아에는 잉카만큼이나 고도의 문명을 지닌 무이스카족(‘칩차족’이라고도 함)이 있었다. 신에 가까운 존재로 여겼던 족장은 즉위식 때 온몸에 금가루를 뿌려 번쩍번쩍하게 치장한 후, 뗏목을 타고 구아타비타(Guatavita)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서 황금과 귀금속을 물속으로 던지는 의식을 거행했다. 여기서 온몸에 황금 칠을 하고 제사를 드리는 족장을 가리켜 ‘엘도라도(el dorado: 황금을 칠한 사람)’라고 한 것이 ‘황금 도시’를 일컫는 말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역사학계는 보고 있다.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칠을 한 사람이 황금 덩어리들을 호수에 던지는 모습은 정복자들에게 온갖 환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로써 신성하고 순수한 원주민들의 종교의식은 서구의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부와 욕망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급기야 유럽의 보물 사냥꾼들은 황금을 찾으려 이 호수의 물까지 뺐고, 1965년에 콜롬비아 정부가 이를 금지하는 법을 만듦으로써 현재는 다행히 자연과 전설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49개국 200회 이상 순회전시

콜롬비아 황금박물관 황금 유물 322점

국내 최초 소개

이 흥미로운 전설 속 무이스카족의 황금 유물이 높디높은 안데스산맥을 넘고 넓디넓은 태평양을 건너 우리 곁을 찾았다. 10월 28일까지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황금 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에서 콜롬비아 황금 박물관의 황금 유물 중 322점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게 된 것. 이 특별전은 이미 지난 몇 년간 영국박물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49개국에서 200회 이상 순회전시가 이루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며, 우리나라에는 2009년 특별전 ‘태양의 아들, 잉카’, 2012년 특별전 ‘마야 2012’에 이어 6년 만에 개최하는 보기 드문 중남미 문명 특별전이다.

신대륙의 발견자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콜롬비아는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전에 5,100명이나 파병한 고마운 나라다. 남한보다 11배 정도 넓어 다채로운 지형과 기후, 87개 부족, 64개의 고유 언어 등으로 매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 중 무이스카족에게 황금은 탐욕의 대상이 아닌, 세상을 비추는 태양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자연과 함께하며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제물로 신에게 바친 것이다. 황금은 심미적 가치뿐만 아니라, 힘과 생명력,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가치가 있었다.

이번 전시는 부의 척도로서의 단순한 번쩍번쩍 금덩어리가 아닌 그 너머의 세계를 찾는 메시지로서의 황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엘도라도, 그 이름만으로

황금을 찾아 헤매고

황금을 위해 싸우고

황금을 위해 죽은

모험가들의 심장이 뛴다!

“엘도라도는 황금을 찾아 헤매고 황금을 위해 싸우고 황금을 위해 죽은 많은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 말이다. 엘도라도는 탐험과 모험을 상상하게 만든다. 아마존강을 지나 안데스산맥을 넘어 잃어버린 황금문명을 찾아가는 생생한 탐험의 길을 떠올릴 수 있도록 4부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했다.”는 전시 관계자의 말처럼, 전시 입구를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과 음향 효과, 전면에 보이는 영상 속 석상 덕분에 울창한 밀림으로 들어가 새로운 문명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제1부 ‘부활한 엘도라도’에서는 국립박물관 최초 첨단 IT 기술로 탄생한 디지털 아트를 시도해 ‘미디어파사드’를 선보인다. 미디어파사드는 건물 벽을 스크린으로 꾸미는 것. 신을 위해 구아타비타 호수에 바친 황금 유물에 대한 7분짜리 강렬하고 웅장한 영상이 펼쳐진다.

제2부 ‘자연과의 동화’는 동물 모양 장신구 컬렉션이다. 콜롬비아 원주민들은 동물을 하늘과 땅과 물을 연결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 그 힘을 빌리고자 동물 모양의 장신구를 만들어 착용했다.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 하늘을 상징한다 여겼던 원숭이 모양 귀걸이, 땅과 물을 오가며 두 세계를 중재하는 개구리 모양 목걸이, 새와 네발짐승 모습을 동시에 지녀 환상적인 동물로 여겼던 박쥐 모양 장식, 또 악어와 새와 물고기가 모두 합쳐진 복합 동물 장식 유물들이 있는데, 특히 툼바가(tumbaga: 금과 구리의 합금) 같은 발달된 금세공술 덕분에 더 아름답고 다양한 메시지를 지니게 되었다.

제3부의 주제는 ‘샤먼으로의 변신’이다. 원주민들은 사람과 여러 동물의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샤먼은 많은 영혼 세계를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무당이자 의사였다. 그들은 힘을 상징하는 재규어나 병을 치료하는 물고기 등의 다양한 동물 모양 장신구를 착용함으로써 그 동물로 변신했다. 예를 들어, 초월적인 힘을 지닌 박쥐의 영혼이 필요하면 박쥐 모양의 장신구를 하고 박쥐처럼 밤에만 움직이고 적의 피를 마시는 행동을 했다.

제4부 ‘신과의 만남’은 사로잡힐 듯한 강렬한 붉은색 장식이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샤먼은 신과 만나기 위해 새로 변신하려, 새 가면을 쓰고 깃털로 장식하고 문신을 했다. 치장을 끝내면 코카 잎과 석회 가루를 씹어 환각 상태에 빠져들며 악기를 흔들고 춤을 추며 접신하고자 했다. 이들이 사용하던 문신 도구, 악기, 코카잎 통, 약초 기운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포포로(석회를 담는 통)와 석회막대기들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매우 정교하다. 신의 호의를 얻기 위해 호수에 던지거나 동굴 속에 보관했다는 황금 인형 ‘퉁호’는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본래 유물 중에는 반지도 있다고 하나 이번 전시품 중에는 없었고, 액세서리 중 화려한 코걸이 장식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중남미에서는 얼굴의 중심에 있는 코가 대개 사회적 위치를 상징하기 때문에 얼굴을 거의 다 가릴 만큼의 크고 화려한 코 장식들이 많다. 백금 장식까지 된 코걸이의 주인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을까.

우리문화에서는 낯선 뼈 항아리 유물들도 여러 점 선보였다. 원주민들은 뼈 항아리가 사후 다른 형태로 태어나기 위한 변형의 도구라고 믿었다.

새인간 장식
새인간 장식

그 외 조각상들은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조형미를 지니는데, 단순함 속에 숨겨진 정교함이 정겹다. 특히 환각재인 코카 잎을 씹고 있는 <코카 잎을 씹는 남성상>이 눈에 띄는데,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은 높은 권위를 상징하고, 자세히 보면 오른쪽 볼이 볼록 솟아 있어 코카를 씹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원주민들의 예술성과 재치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황금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아마존 고대 원주민들의 세계관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유물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이야기가 된다. 한마디로 이 전시는 현대 관객과 고대인들, 현대 문화와 수백 혹은 수천 년 전 아마존 밀림 속 문화, 도시 문명과 자연을 순식간에 연결해주는 샤먼 같은 존재이다.

 

 

남미 최고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후손

마리아 알리시아의 강연 성황리에 마쳐

전시 초기인 8월 7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엘도라도의 황금문화’를 주제로 특별 강연이 있었다. 강연자는 고고학자이자 무이스카족 황금제작 분야 전문가인 콜롬비아 황금박물관 관장, 마리아 알리시아였는데, ‘남미식 해악과 냉소를 그려내 남미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후손’이라는 소개 첫 마디에 청중들은 이미 마음을 빼앗긴 듯했다.

고고학적 연구에 집중된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강연 후 열화와 같은 질문이 쏟아졌고, 강연자의 사인을 받고자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한 여대생은 유물에 대한 애정 어린 강연에 감동했다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이러한 국외 전문가 초청 강연이 1년에 서너 차례 있으나, 이번 강연은 보조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리에 이뤄져 기대 이상이라고 전했다.

마리아 알리시아 관장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선으로 자연과 문화를 바라보길 바란다”며 강연을 마쳤다. 이 말처럼 이번 전시는 단지 우리와 무관한 먼 나라, 오래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마음속에 탐욕 대신 이해심을 채우는 순간, 우리에게 금보다 빛나는 그들의 삶이 보일 것이다.

 

김유경 (스페인어 전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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