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40년 전통 소문난 맛집 유가호(劉家好) 유은화 대표
  • 이상혁 기자
  • 승인 2018.09.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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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역 앞 구시가지에는 4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지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아온 중국집이 하나 있다. 화교 맛집으로 소문난 ‘유가호’가 바로 그 주인공. 노부부가 욕심 없이 정갈하게 운영하는 ‘유가호’는 이미 지역민들 사이에서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한 지 오래다. 두 내외의 나이를 합치면 145세. 복장은 늘 단정하고 깔끔하다. 말다툼 한번 없이 오붓하고 정겹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노부부는 잘 자란 자식들이 있어 여유롭지만 성실하게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즐겁게 일하는 것이 좋단다. 손수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이 있는 한 가게를 계속 하겠다는 노부부를 소낙비가 내린 8월 한가해진 오후를 틈타 만났다.

에디터_ 이상혁 hyukfilm@naver.com / 사진_ 임계훈 inheritz@naver.com

중국인들은 당신 ‘니’ 자에, 좋을 ‘호’ 자를 붙여, “你好(니하오)!”라고 인사한다.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을 뜻하는 ‘라오쓰’에, 좋을 ‘호’ 자를 붙여 “老师好(라오쓰하오)!”라고 인사한다. 유가호는 유씨 집안을 뜻하는 ‘유가劉家’에 좋을 ‘호’ 자를 붙인 것이니, 유씨 집안이 건네는 인사말 정도로 여길 수 있겠다. 사실 예부터 “진지 잡수셨습니까”를 인사말로 건네 온 우리네 문화를 생각하면,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식당 이름으로썬 썩 잘 어울리는 상호명이라 할 수 있겠다.

유가호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에서 5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통중국식당으로, 중간에 10년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었던 때를 제외하고도 4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맛집으로 인정받아왔다. 화교부부인 유은화 사장님 내외는 벌써 두 분의 나이를 합쳐 145세가 되었지만, 건강하다면 계속 일하고 싶어 꾸준히 가게 문을 연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락앤락 중국법인장이며, 둘째 아들도 이미 대만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어릴 적부터 오랜 단골인 손님, 멀리서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해온 요리로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싶다고.

40년 내공의 주방장의 소신
“음식은 솜씨보다 첫째가 재료!”

노부부는 편안한 표정과 순박한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그 요리만큼은 오랜 경력을 무시 못 할 만큼 화려한 산해진미였다. 신선한 재료들이 특히 돋보이는 새콤한 양장피, 뼈 없는 수입산이 아니라 뼈 있는 국내산 닭으로 매콤하게 요리해낸 라조기, 부드럽고 담백한 꽃빵을 곁들인 화려한 색감의 고추잡채, 씹는 순간 기분을 업 시키는 쫀득쫀득 달콤한 탕수육까지 사장님의 내공이 돋보이지 않는 요리가 없었다. 특히 달콤한 소스로 우리나라 남녀노소 사랑을 받는 탕수육은 고가의 독일 수입 전분을 쓰기 때문에 쫀득한 식감이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만 원짜리 소(小)자가 이렇게 푸짐해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사장님 인심이 후했다.

40년 요리 내공을 지닌 유 사장은 “솜씨도 솜씨지만, 첫째는 재료다. 재료가 좋으면 솜씨가 없어도 맛있다.”라며, 모든 식자재를 국내외 최고급으로 엄선해서 사용한다고 맛있는 비법을 피력했다. 모든 요리에서 신선하고 양질의 재료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히 밀가루에 들깨가루를 첨가해 글루텐 성분을 중화시킴으로써 보다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순식간에 화려한 요리들이 완성되었고, 요리들이 식탁을 하나둘 채울 때마다 감탄사가 쏟아졌지만, 이내 요란한 젓가락질 소리만 들릴 뿐 다들 말수가 줄어들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젓가락질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최초로 짬뽕에 고춧가루 넣고,
고추짬뽕 메뉴도 개발해

중국집에서 늘 이뤄지는 역대급 고민은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결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유가호’에 처음 왔다면 무조건 ‘하얀 짬뽕’을 주문하고 볼 일이다. 푸짐한 채소와 해산물을 듬뿍 올린 하얀 짬뽕은 재료를 충분히 볶아 자연스레 우려진 뽀얀 진국이 특징. 푸짐하고 저렴한 가격의 한 끼로 강추다.

초기 우리나라 짬뽕은 고춧가루가 없는 하얀 국물이었다고 한다. 짬뽕의 원조라고 불리는 나가사키 짬뽕이 하얀 국물인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수긍이 된다. 놀라운 것은 유 사장님이 50년 전 장사 초기 손님들이 우동이랑 짬뽕을 많이 헷갈려 하기에, 확 차이가 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끝에 짬뽕에다 고춧가루를 풀어 붉은 색깔이 나게 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의 ‘이택희 맛따라기’에서 ‘빨갛고 매운 한국식 짬뽕이 탄생한 건 1970년대 이후다. 일본의 한 논문을 보면, “한국의 매운 짬뽕은 1970년대 중·후반 인천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했는데, 위 주장대로 시기를 추정해 볼 때, 고춧가루를 짬뽕에 처음 넣은 것은 유가호의 유 사장일 수도 있겠다.

색깔을 달리 하고자 넣었던 고춧가루에 대한 반응이 좋아, 짬뽕에 점점 고춧가루를 많이 넣고 매운맛도 추가하게 되었다고. 놀라운 이야기 하나 더. 지금이야 짬뽕 전문점까지 생기며 짬뽕의 다양화 시대를 이루었으나, 40년 전까지만 해도 짬뽕 종류가 여럿 있었던 게 아니었다. 1980년대 초 출범한 전두환 정권의 최대 국정 목표 중 하나가 ‘물가 안정’이어서, 짬뽕 가격도 고정되어 사장이 임의로 가격을 조정할 수 없었기에, 유 사장이 고안해낸 것이 ‘고추짬뽕’이란 신메뉴 개발이었다고. 다른 메뉴로 인정받아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었고, 다행히 손님들 반응도 좋아 장사도 꽤 잘되었다고.
또 다른 특별한 식사 메뉴는 중국식 냉우동으로 다른 식당에서 흔히 ‘중국식 냉면’이라 불리는 것이다. 쫀득한 면발과 함께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을 들이켜는 맛이 있어 8월의 더위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싹 씻어내려 가게 만들어, 계절과 상관없이 즐기고 싶은 맛이다. 계절 메뉴이지만, 손님이 원하면 못 만들어줄 것 있냐며 호탕하게 웃는 유 사장의 인상이 푸근하다.

40년째 찾아오는 단골고객도 있어

유 사장 내외 부모님은 중국 본토인 허베이성과 산둥성 출신이나, 유 사장 내외는 인천과 북한 원산 태생으로 한반도에서 태어난 분들이다. 80세 이상인 분들은 중국 내륙(대부분 산둥성)에서 넘어온 분들이지만, 그 이후 출생한 화교들은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태어났다고. 그러다가 두 분이 대구에서 결혼하고 원주로 옮겨와 득남하면서 식당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가게 이름은 큰아들의 이름을 딴 ‘득승원’이었다고.

두 아들은 어려서부터 배달을 하며 부모를 열심히 도왔다. 그러면서 “엄마, 얘네들 배고파.”라며 친구들을 종종 데려와 밥을 먹여 달라고도 했다. 많이 베풀었던 덕분인지 이제는 두 아들이 각자 번듯하게 자리를 잘 잡았다고.

사실 유 사장은 59세에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고 10년 동안 식당 일을 쉬었다. 젊어서 무척 열심히 일했기에 좀 쉬려 했는데, 막상 쉬다보니 장사하는 기쁨을 되찾고 싶어지더라고. 그래서 젊었을 때 보다는 쉬엄쉬엄 가게 문을 열며, 그때그때 좋은 재료로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자식들이 아무리 잘 되어도 스스로 벌어 쓰는 기쁨을 가능한 놓치고 싶지 않다고. 그동안 힘들게 고생하여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고 자산을 모았으나 아직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일하고 싶다는 노부부의 바람은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자식들이 다 잘 되었어도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지 않아

“사람이 아무리 잘나도 잘나가지 못할 때가 많고,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 뒤질 때도 많아요.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으니, 돈을 벌고 못 버는 것은 돈과의 인연이요, 돈이 사람을 찾아오게 해야지, 사람이 돈을 찾아다니면 안 됩니다.”

성공한 화교 사업가로 지금의 평안한 일상을 꾸리기까지 한국에서 화교로서의 유 사장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외국인 특히 화교의 경제활동에 있어 높은 문턱을 넘길 요구했던 70, 80년대 한국 정부의 정책들, 큰아버지 중국과 작은아버지 대만이 있어도 어느 한쪽에서도 돌봐주지 않는 화교로서의 삶, 평생 살아온 한반도에서 영주권은 있지만 사회복지 혜택은 전
혀 없는 난민 같은 삶, 미국과 일본 외에는 비자가 거의 나오지 않아 관광가기조차 쉽지 않은 그러한 삶이기에 원망이 많을 법도 하지만, 유 사장 내외는 해 준것이 없어도 조국은 조국이며, 나라가 건재한데 어찌 서운하다고 등 돌릴 생각을 하겠냐며 국적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고 조국애를 내 비쳤다.

모진 세월을 꿋꿋이 이겨낸 두 분이라 그런지 노부부가 일하는데도 식당이 매우 깔끔하고 환하다. 주방일과 서빙일을 원활하게 하려 오픈 주방을 만들었다는 마인드는 노년의 나이가 무색하게 혁신적이다. 요리 과정을 보여 주고 주방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에 자신감이 있기에 나온 자연스런 결정일 것. 노부부의 인심을 한껏 보여주는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 맞은편 넓은 주차장까지, 원주 40년 맛집 유가호를 찾아가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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