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천재, 태허(太虛, TAE HUE) 손외경 작가
  • 정숙영 기자
  • 승인 2018.09.11 10: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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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살롱전 Salon SNBA 2017 금상 수상 ‘From the Point’

“우리가 찾아 헤매던 ‘마음’이 바로 여기 있다”는 극찬을 들으며, 2017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살롱전(Salon SNBA 2017) 최고상인 금상 수상, 살롱전에서 이례적으로 작품 판매(1만유로, 약 2,000만원)까지 쾌거를 이룬 한국 작가가 있다. 미술계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혜성처럼 등장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작가, 태허 손외경이다.

당시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일본과 러시아 등지에서 전시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작가는 대구 팔공산 자락 아래, 늘 지내던 자리에서 묵묵히 수행과 작품 활동에 전념할 뿐이다. 외부 세계를 등지고 지내느라 문턱이 높다는 태허림의 문을 수차례 두드리던 중, “차 한 잔 하자”는 답변이 오자마자, 새벽 KTX를 타고 서둘러 대구로 향했다.

에디터 정숙영 jungsy79@naver.com / 사진 임계훈 inheritz@naver.com

약력
그랑팔레 르살롱 데 앙데팡당(Grand-Palais le Salon des Independant)전 입상
2016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살롱(Salon SNBA 2016)전 입선
2017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살롱(Salon SNBA 2017)전 금상 수상
2017 대한민국사회발전대상 수상
두바이 시카아트페어 (Sikka Art Fair) 참가

 

한 개의 점들이 모여 생명체를 만들고
그 생명체가 만나 땅을 이루며 그 땅이 지구촌을 뒤덮어 버리는 이 지구는 보석이다.
초야에 작은 별들이 뜨기 시작하고 은하수 길이 열리는 그곳에 서 있는 나는
가르침이 있는 곳이 있다면 늘 떠나고 싶어 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듯 그리고 또 그린다.
모든 이에게 성스러운 강한 내면을 일으킬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놓는 이로움이 생기도록
점으로부터 한 점과 한 점이 모여 또 다른 완전체를 만드는 이 그림을
마음이라 말하고 싶다.

-작가 노트 中에서

산안개가 걸린 대구 팔공산 자락 어디쯤, 좁은 골목의 단정한 돌담 끝에 작가가 손수 음각한 ‘태허림’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아래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유기견으로 만나 7년째 함께 사는 지산이가 ‘왕왕’ 짖으며 낯선 이들을 반겼다. 그 소리에 손외경 작가가 맑은 얼굴을 비추며 나왔다.
100년 된 집을 옮겨 여기저기 손보아 머문 지 벌써 12년째라는 태허림(太虛林)은 넓은 잔디 마당 한 편으로 ‘○牙地’란 현판을 내건 정자가 있다. 어찌 읽느냐, 물으니 ‘공아지’요, ‘월(月)아지’란다. ‘달빛의 싹이 끊어지지 않는 땅’이란 뜻이다. ‘월(月)’을 ‘○’ 모양으로 그려 놓은 것이 영락없는 작가의 공간임을 드러낸다.

“내 삶을 영화로 찍자고 한 사람이 있다. 내 인생이 공백인데 어느 부분을 찍을 테냐고 물었다. 이제 공부와 작업 외에는 모든 게 공이다. 그림을 언제부터 그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간 것은 알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손 작가는 수행이 먼저 시작되었느냐, 그림이 먼저 시작되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수행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노라고 답했다. 스스로 자유롭고 싶어 선택한 길이었다.

“화려하고 또렷한 색채와 감각이 만나 독특한 점구성을 반복한다.”
“정교함 속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와 내적 세계, 삶 속에 묻어나는 여러 흔적들을 점으로 옮기면서, 화폭에 더욱 큰 에너지가 담긴 자유와 평안, 삶을 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모든 이가 좋아하고 또 행복해 한다. 최고의 그림이다.”
“눈 뜨면 이 그림이 보이고, 이 그림을 보면서 잠들고 싶다.”
“영적인 눈을 뜨지 않으면 이 그림은 볼 수 없다.”

성처럼 나타난 미술계 대형 신인
마음을 그리는 화가, 태허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나, 화가들의 로망인 프랑스 국전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살롱전 Salon SNBA 2017’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한 것은 일대 혁신이었다. 또 살롱전 전시 이틀 만에 작품 1점이 1만유로(2,000만 원)에 팔리는 이례적인 일로 현지에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손 작가는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그랑팔레 르살롱 데 앙데팡당(Grand-Palais le Salon des Independant)’에도 입상한 바 있다.

국내외 무수한 언론들은 이 소식을 뜨겁게 다루었지만, 한국 미술계는 오히려 손 작가를 외면했다. 정식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협회를 통해 공모전에 접수한 것도 아닌 게 못마땅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파리에서는 작가의 학력이나 이력 따위는 필요 없이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했다.

손 작가는 관심이나 무관심 모두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함부로 눈 돌리지 않고, 가려 말하고, 음악조차 듣지 않으며, 공부와 기도에만 힘써 왔던 수행의 결과가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배웠더라면 수준을 보고파 응모 했겠지만, 자신을 그저 시험대에 올려놓고 평가해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자신을 찾아 온종일 파리를 헤맨 아랍에미리트 갑부 여성의 눈빛에서 깊은 목마름을 보았기에 족하다고 생각했다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국립예술살롱전 Salon SNBA

프랑스 정부의 지원으로 매년 12월 개최되는 SNBA의 대표적인 행사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한 유명한 프랑스 시인이자 작가였던 테오필드 고티에(1811-1872)와 루이 마르티네트(1814-1985)에 의해 프랑스 국립미술협회(이하 SNBA)가 1861년 창립한 유서 깊은 예술 살롱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다. 특히 세계적인 조각가 로뎅이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수많은 작가들이 발자취를 남긴 구상계열 대표적 살롱이다.

SNBA전시회는 현대미술에 영향을 미친 우수 미술단체 및 개인을 초대해 전시를 열고 있는데, 2017년에는 출품된 전 세계 400여 개 작품 중 태허의 From the point가 금상을 수상해 5점을 선보였다. http://www.salondesbeauxarts.com/에서 태허의 작품이 걸린 전시장을 엿볼 수 있다.

점으로부터 어디에 이를 것인가

수많은 점들의 조화로 우주와 진리를 담아내는 태허의 작품, ‘점으로부터(From the Point)’는 보는 이마다 희열, 슬픔, 고통, 저마다 답을 얻기로 유명하다. 작가는 “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디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답은 각자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 속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과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아 부은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묻는 이들도 많다.

“물질을 완성하는 시간보다,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통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 나는 보았다. 멈출 줄 모르는 희열. 마음 한 조각, 캔버스 위에 놓이는 고요한 순간. 작은 물줄기가 바다에 이르듯, 몸속을 돌던 빛줄기가 캔버스에 쏟아지며 점 하나로부터 시작된 작품이 어느덧 시리즈가 되었다. 내 작품은 스물아홉에 시작한 수행이 삶에 가져다 준 커다란 느낌이다. -작가 노트 中에서

손 작가는 36살 때 미얀마에서 수행하던 중 ‘허공이 깨지는 것’을 보게 된다. 눈에 담은 것을 손끝으로 풀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붓을 들게 되었다. “나의 수행은 나를 붓으로 내어놓은 것이다.”라는 손 작가의 말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게다가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손 작가는 붓을 쥐어야 할 운명이었던가. 니스에서 만난 한 요가 수행자가 손 작가에게 ‘내면에 색깔이 가득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마다 색깔이 있는데, 손 작가도 수행 중 그만의 색깔을 보았고 또 붙잡았다. 다만 다른 것은 붓 끝을 통해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것. 작가가 본 것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색깔이 아니라, 에너지가 깨질 때 보이는 것이었다. 손 작가는 그 이미지를 잡아 3시간씩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와 행복조차 중요치 않은 순간이 온다고. 필자 또한 마음을 치유한다는 손 작가의 그림을 바라보자니, 흩어지고 달리고 요동치던 마음이 어느 순간 멈춤을 느꼈다.

“바라보면서 가고 있다고 느끼면, 내 그림은 가짜다.”

작품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하는 손 작가에게는 그림이 곧 공부요 명상이다.

“점을 찍을 때는 숨을 멈춘다. 숨을 멈추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이다. 죽으면 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세상을 만나기 위해 (인터뷰에 응하기 위해) 어제 밤새 그림을 그리며 죽었다.”

점 하나로부터
내가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듯
이 작품을 만나는 당신도 그러하기를...
점에 완성이 어디 있으며
점에 시작은 어디란 말인가?
처음 호흡하는 그날이
처음 점으로부터 시작하는 날이요
행복의 배달을 모두 마치고
호흡을 멈추는 그 날이
점이 파괴되는 날이라 하겠다.
태어남에 인연이 없었다면
즉 눈 귀 코 입 느낌이 없었다면
마음은 삶 속에서 아쉬움이 남으리라
일어남에는 사라지는 조건이 있듯
태어남에는 죽음이 오는 것이 진리.
영원함이 없는 영원을 노래하고 싶다.
이 순간도 고통을 종식시킨 나의
스승께 손을 모으리라
걷고 걸어도 그대 곁에 이를 수 없으라
-작가 노트 中에서

작품처럼 아름다운
부처님 사리탑 세우고파

주변에선 손 작가를 “안 해”라고 부른다. “밥 먹을래, 차 한 잔 할래? 나들이 갈래?” 등등의 모든 질문에 “안 해.”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져 본 적이 없다.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진다는 건 그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나는 따라가 본 적이 없다.”
손 작가는 아무나 만나지 않고, 그가 머무는 태허림은 밖으로 활짝 열린 곳이 아니다. 세상을 등지고 있어 그는 참 맑았고, 그 맑음이 작품에 깊이 담겨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했다. 맑음을 담기에 얼마나 혼탁한 세상인가.

상복, 승복, 사복을 가리지 않으며 자유로이 걸치는 손 작가는 세상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기를 소망한다. 다만 그에게도 일념(一念)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

“부처님 모시려고 나를 내어놓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림을 원하는 이가 있으면 나누려 한다.”

손 작가는 인도와 스리랑카로 공부하러 다니다가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비어 있는 그이기에 귀한 것을 모실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손 작가는 세상 가장 귀한 것으로 부처님 사리탑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 그리고 그 아래서 쉬지 않고 수행하길 꿈꾼다. 손 작가는 호기심 많은 다섯 살 아이 같기도 하고, 맑은 십대 소녀 같기도 하고, 힘 있고 당당한 청년 같으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중년의 얼굴을 모두 가진 작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결국 나이 따위는 무색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순수하고 아이 같은데, 그림에는 천재다.”라는 말을 괜히 듣는 게 아니었다.

전생이 보이지 않는다며 스님들이 지어 주었다는 이름 ‘태허(太虛)’, 그 이름처럼 그는 충분히 비어 있었다. 그 이름이 그린 그림답게, ‘점으로부터’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을 만큼, 우주가 담길 만큼 충분히 비어 있었다. 손 작가와의 인터뷰는 선문답이 주(主)를 이루고, 필자는 대화라기보다 마치 잠언록을 펼쳐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필자는 작가와 작품에 푹 빠져 어느 순간 그림 속 하나의 점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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