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여자에게 ‘입혀지던’ 남자에서 스스로 ‘입는’ 남자로
  • 여성시대 Live
  • 승인 2018.09.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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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제니 안

現 ㈜폴란티노, 라프시몬스 수석디자이너
前 구찌(GUCCI) 에스페리언쟈 수석디자이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슈트 한 벌씩은 장만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은 아직 제대로 된 슈트를 고르는 법을 모른 채, 그저 매장 직원이나 아내(혹은 여자친구)가 골라주는 옷을 수동적으로 사서 입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슈트는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한 번 사면 적어도 몇 년은 입기 때문에 다른 옷보다도 자기 몸에 잘 맞는 제품으로 신경 써서 골라야 한다.

최근 남성복 업계에서 맞춤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 패션에 적극적인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자유자재로 코디해 멋 내는 것은 물론, 주문 제작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엄마, 아내가 골라주는 대로 입던 남자들이 취향에 따라 입맛대로 맞춰 입기 시작한 것. 기존 맞춤 시장의 주 고객이 4050 중년 남성이었다면 최근에는 2030 젊은 세대도 ‘나만의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을 반기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맞춤복의 인기는 남성 고객의 취향이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기성복이 어색할 만큼 체형이 몰라보게 변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또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맞춤 후기, 브랜드에 대한 정보 등이 빠르게 퍼지면서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청바지처럼 입으면 입을수록
내 몸에 딱 어우러지는 맞춤복

맞춤 전문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필자의 폴란티노옴므에서는 패션 잡화와 컨템포러리의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는 종합 플랫폼 사이트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목적이 분명한 고객도 있지만 아직 다수의 남성 고객은 맞춤복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처음 왔을 경우 어떤 옷을 하고 싶은지, 언제 입을 옷인지, 얼마나 자주 입을 것인지 등을 일대일로 상담할 수 있다.

직업, 생활습관에 따라 체형도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에야 제작으로 이어진다. 상담과 가봉 과정에서 체형, 피부톤, 얼굴형 등을 고려해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스타일을 제안하는 등 서비스 정신도 철저하다.
맞춤복은 청바지처럼 입으면 입을수록 착용자와 어우러지는 점이 좋다.

슈트의 경우 소비자가 겉감, 안감이 될 소재부터 부자재를 고를 수 있고, 라펠의 너비, 단추가 달릴 위치, 주머니의 모양 등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기성복을 그대로 입으면 소매가 짧거나, 허리 품이 남는 등의 문제를 제작 과정에서 해결해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을 수 있어 만족도도 높다. 각자의 체형에 맞춰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체형 커버도 가능하다.

가격대도 기성복과 대비해 크게 비싸지 않고, 일부 브랜드에서는 더 저렴한 것도 찾을 수 있다. 전부 손바느질로 완성되는 고급 슈트는 완성까지 평균 3주 내외가 걸리나 셔츠, 팬츠 등 단품은 대략 열흘 정도면 완성된다.

사진출처: 레옹(코리아) 제공
사진출처: 레옹(코리아) 제공

남자! 스스로를 설계하다.
깔끔하게만 입으면 다라구요?

남성 패션과 관련된 조언을 보면 ‘깔끔하고 단정하게’라는 팁이 지배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성별 막론하고 누구나 단정하게 입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유독 남성 패션에 있어서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이제까지는 꾸민다는 것을 여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왔지만, 이런 인식도 차츰 바뀌어 가고 있다. 단정함은 좋지만 그것뿐일 필요는 없다. 가능성은 그보다 훨씬 무궁무진하다.

누군가의 취향 말고 ‘나의 취향’
어릴 땐 어머니가 사다 주시는 옷을 입다가, 나이 들어서는 아내가 골라주는 옷을 입는 남자가 많다.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패션에 관심이 적기도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패션에 무심한 것이 당연한 듯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은 ‘그루밍족’이라 하여 남자들도 패션에 관심을 갖고 꾸미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고 직접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꾸민다는 건 사실 별것 아니다. 사소한 포인트로 센스가 발휘되고 그것이 스타일을 좌우한다. 중요한 건 자신을 한층 더 살릴 수 있는 그 ‘사소한 포인트’를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부분이다.

컨템포러리   차콜 그레이 컬러 코디 법을 다르게 한 사진(사진: 폴란티노 옴므 제공)
컨템포러리 차콜 그레이 컬러 코디 법을 다르게 한 사진(사진: 폴란티노 옴므 제공)

요구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원하는 이미지를 찾아라.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과 내가 가장 표현하고 싶은 모습은 어떤 것인가. 거울 앞에서, 옷장 앞에서, 가게 안에서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는 것. 우선은 그게 출발이다. ‘나’를 설계 한다는 것. 고민하면서 내가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은 무척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고 이런 방식이야말로 패션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스타일을 찾는 것은 직장에서 아무 옷이나 마음대로 입고 격식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같은 옷이라도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표현방식이 있고 그걸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패션은 그냥 육신에 천조 각을 두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일을 평생 다른 누군가의 손에 맡기기만 한다면 아쉬운 노릇이다. ‘입혀지던’ 남자에서 ‘입는’ 남자로 가는 길, 그건 아마 상상보다 훨씬 즐거울 것이다.

최근에는 기술을 접목한 맞춤 브랜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맞춤복 시장도 IT기술을 도입한 첨단 맞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폴란티노옴므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소재를 고르면 화면을 통해 완성된 옷을 볼 수 있는 가상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도입했다. 자체 생산라인을 구축했고, 홍보비용을 줄여 원가를 절감했다. 품질은 높이되 거품 뺀 판매가로 입소문을 통해 고객을 유도했고, 3만 5000명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유통망 확장에 들어가면서 볼륨을 키울 예정이다.

또 최근에는 온라인과 모바일에 최적화한 신규 브랜드도 등장했다. 2030 젊은 층을 겨냥한 시스템인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로드테일러가 고객에게 직접 찾아와 무료로 상담을 해 주고, 사이즈를 잰다. 개인별로 생성된 ID에 데이터가 저장되므로 이후부터는 클릭 몇 번 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옷을 받아볼 수 있다. 고객을 보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나이에 관계없이 나의 스타일, 나의 감성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맞춤 전성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하는 남자의 스타일과 그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남자의 스타일은 그 남자의 개성과 생활방식을 보여주며 그 남자의 야망과 성취를 대변한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바로 볼 수 있고 격려하는 여성들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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