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文風 때문만은 아니다. ‘변화의 시작’ 6·13 지방선거
  • 박성조
  • 승인 2018.08.0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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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아닌 이변이었다. 지난 6월13일 지방선거는 ‘파란 물결’이 전국을 덮으면서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높은 지지율과 한반도 평화 이슈 속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하리라는 전망은 있었으나 결과로 나타난 민심은 예상을 웃돌았다. ‘샤이 보수’의 결집을 기대했던 자유한국당은 이미 떠나버린 민심을 실망스럽게 확인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진보정당보다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더욱 눈에 띄는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정부를 이끌 17개 광역단체장 중 14명을 당선시켰다. 경북도지사와 대구시장만 자유한국당 단체장이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포함해도 ‘보수 단체장’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은 4곳뿐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선거 내내 “도민 차원에서도 탈당을 권하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한국당 복당 소문에 선을 그은 바 있다. 한국당은 지역적 뿌리인 TK(대구·경북)에 갇힌 형세다.

 

전국 12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더욱 기울어졌다.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은 경북 김천을 제외한 11곳을 싹쓸이했다. 한국당은 배현진 전 MBC 앵커를 전략 공천하며 이목을 집중시킨 서울 송파을에서도 큰 차이로 패하며 민심의 외면을 인정해야만 했다.

기초단체장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국 226곳의 기초지자체의 수장을 뽑는 투표에서 국민들은 민주당에게 151곳을 몰아줬다. 과반을 훌쩍 넘어 전체의 66.8%에 해당한다. 한국당은 53곳, 민주평화당은 5곳, 무소속이 17곳에서 당선됐다.

 

文정부 지지율이 견인…‘평화’와 ‘적폐청산’ 원해

 

지방선거를 관통한 가장 큰 변수는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었다. 국정 지지율이 70% 넘는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에 두 가지로 작용할 수 있었다. 지지율 그대로 정부에 더 힘을 실어주자는 분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권력 남용을 우려해 견제 세력에 힘을 보태겠다는 표심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후자의 이변은 없었다. 지지율은 말 그대로 표심으로 나타났다. 선거 직전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 이슈는 그간 선거 때마다 불거졌던 ‘안보 문제’를 사전에 차단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안보 현안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보수 진영의 ‘무기’로 여겨지던 안보 분야를 민주당의 것으로 만들었다. 선거일 바로 직전에 북미 정상간 비핵화 합의문 서명이 이뤄지면서 싸움의 링을 ‘안보’에서 ‘평화’로 바꿔버리기까지 했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적폐청산과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노력해 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임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번영, 든든한 지방정부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투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에 대한 실망도 이번 지방선거의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정부의 수장을 선거로 뽑는 지방선거는 1995년에 시작해 올해까지 7번 치러졌다. 20년 넘게 지방자치를 경험한 국민들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이 각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깨달았다. 지방정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지방선거에서 ‘생활 민심’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지역의 살림살이를 맡길 사람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가진 유권자일지라도 정작 한국당에 지역 살림살이를 맡기기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비선실세의 존재와 비리로 얼룩진 정부를 탄생시킨 정당이라는 과거에서 한국당은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지난 지방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라면 민주당이 내세운 적폐청산 기조가 자신의 지역에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초의원 후보는 “여기서 또 뭘 해먹으려고 나오느냐고 호통 치는 분들을 여럿 만났다”며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무력한 한국당에 분노한 ‘앵그리 보수’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우위에 있다는 것은 이미 예측됐던 바다. 그러나 한국당은 ‘샤이 보수’, 즉 숨어 있는 보수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는 표를 행사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의 예상을 뒤집었던 것처럼 보수 결집으로 극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경남지사 선거에 나선 한국당 김태호 후보는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26.2%(한국갤럽)에 그쳤지만 실제 득표는 42.9%로 크게 높아졌다.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답하지 않는 ‘샤이 보수’가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수층은 결집하지 못했다. 평소에 정치 성향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하더라도 투표장에는 갔던 보수 지지층이 한국당에 크게 실망해 투표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두고 ‘샤이 보수’가 ‘앵그리 보수’로 달라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적극 지지층과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에 비교해 보면 확연히 나타난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41.08%다. 투표율 77.2%에 대입해 계산해 보면 전체 유권자 중 31.6%가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지지율은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전체 투표율은 60.2%였고 민주당 정당 득표율은 51.4%로 나왔다. 전체 유권자 중 31.87%가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다. 문 대통령 당선 당시 지지율과 비슷한 수치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 지지자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당은 지난 대선에서 23.3%(홍준표 후보)의 지지를 받았다. 대선에서는 절반이나마 따라갔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선 그 지지율조차 유지하지 못했다. ‘집토끼’도 잡지 못한 셈이다.

 

선거를 이끈 홍준표 대표의 기행에 가까운 언행들도 미움을 샀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장 평화쇼’로 평가 절하하고, 북미 정상회담에는 ‘먹을 것 없는 잔치’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평화를 원하는 여론에서 크게 어긋난 장면들이다. 여론이 불리해지자 일부 후보들은 당 대표의 지원 유세를 마다하기까지 했다.

 

정부 여당 견제론을 납득시킬 만한 이슈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 이슈를 뒤늦게 내세웠지만 지난 보수 정권의 실책이 밝혀지는 상황에서 설득력도 없었고, 시기도 늦었다. 결국 리더십과 전략이 무너진 상황에서 한국당은 선거를 치렀고, 지방선거 이후 6월18일에 중앙당 해체를 선언했다. 어찌 보면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역주의 타파 신호탄 될까

 

전국이 ‘파란 물결’로 뒤덮인 가운데 더욱 눈에 띄는 곳은 PK(부산·경남)지역이다.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던 이 지역에서 민주당은 크게 우세했다. 경남도지사와 부산시장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기초단체장으로도 부산 16개 구청장 가운데 13개, 경남 18개 기초단체장 중 창원을 포함해 7개를 민주당이 차지했다. 울산에선 5개 단체장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경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주당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민주당 기초단체장이 당선됐다는 사실은 선거 역사에 기록될 일이다. 정치권에서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던 대구 또한 많이 달라졌다. 표면적으로는 한국당이 ‘싹쓸이’했지만 예전만큼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여주지 못하고 민주당과 경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두고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모두 “지역주의를 타파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지역에 따라 당의 이름으로 표를 주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다. 물론 지역주의를 완전히 넘어서기 위해선 영남권에서 당선된 민주당 단체장들의 민선 7기 지방정부가 순항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생활정치에 가깝다는 인식이 확인된 만큼 결국 지역 행정에서 역량을 보여야 한다.

 

한국당의 서울 전멸을 막아낸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정당보다 역량’이라는 지방선거의 판단 기준을 증명한 좋은 사례다. 한국당이 민심을 완전히 벗어난 상황에서도 조 구청장은 재선에 성공했다. 서초구 유권자들이 조 구청장의 지난 4년에 만족한 결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인 서초구 주민임을 밝히면서 ‘조 구청장은 뽑아주고 싶다’는 얘기가 흔하게 나올 정도였다. 당이 아닌 자신에 대한 기대를 인식한 조 구청장도 선거 기간에 여야를 구분하지 않는 '서초당(黨)' 소속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 결과 조 구청장은 서초구에서 한국당 정당 득표율보다 17.6%P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당의 정치색보다 인물의 행정 역량을 더 중시하는 지방선거의 달라진 경향을 보여주는 증거다.

 

‘녹색당 돌풍’ 불쑥 다가온 미래

 

민주당의 승리는 예견됐고, 한국당의 몰락은 당연했다. 가장 극적인 드라마는 두 거대정당의 경쟁이 아닌, 전혀 의외의 무대에서 나왔다. 바로 녹색당 후보들의 이슈몰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총 32명의 후보자를 낸 녹색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존재감만은 바른미래당이나 평화당, 정의당 못지않았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신지예 후보는 1.7% 득표율로 4위에 올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이 후보로 나서면서 ‘대선급 빅매치’가 성사됐던 것을 고려하면 4위는 원외 소수 정당에서 차지할 수 있는 사실상 최고 순위다. 원내 정당인 정의당 김종민 후보보다도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신 후보의 선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의 정치화다. ‘페미니즘 정치’의 필요성을 전면에 내세운 신 후보는 선거 벽보에서부터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표어를 강조했다. 한 유명 변호사는 신 후보의 포스터에 대해 자신의 SNS에 ‘시건방진 사진’이라고 썼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페미니스트 이슈가 서울시장 선거 뉴스에 꾸준히 거론됐다. 신 후보의 벽보는 수십 차례 훼손됐고,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 정치가 국내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주목받았다. 당연히 녹색당과 신 후보가 이슈의 중심이었다. 신 후보는 선거 기간 동안 “여성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하지 않고서 한국 사회는 나아갈 수 없다”고 외쳤다.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는 ‘난개발 막는 여성청년 도지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제주 제2공항 계획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 결과 원내정당인 자유한국당 김방훈 후보와 바른미래당 장성철 후보를 제치고 3위(득표율 1만2188표)를 차지했다. ‘동메달’에 그쳤지만 선거 과정에서 개발에 대한 시각을 제시했고, ‘육지 출신’으로서 친족·혈족 문화가 강한 지역 선거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1톤 트럭 위에 서서 유세를 하는 사진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어 정치권 진입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했다.

 

낙선이 확정된 14일 오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 후보는 “몇 년 뒤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고은영이 나올 것이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청년 정치인이 많으며 청소년들도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피선거권을 낮추는 일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녹색당의 선전과 함께 부쩍 다가온 미래를 선언하는 말이었다. 신 후보와 고 후보는 각각 28세와 33세의 청년들이고, 여성이다. 이들이 제시한 화두에 여론이 반응했고, 유권자들은 일부 원내정당 후보들보다 이들에게 표를 주기 시작했다. 투표권이 없는 19세 미만 청소년 931명의 모의투표에서 서울시장 당선자는 신지예였다.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신 후보의 ‘성 평등 계약제’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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