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인생을 시작한 여성들
  • 곽은영
  • 승인 2018.08.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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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영희 한복디자이너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향년 82세의 나이였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반평생을 바친 여성이었다. 1993년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파리 패션쇼에 참가했고 저고리 없는 드레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죽기 1시간 전까지 패션쇼를 하고 싶다”고 말할 만큼 한복과 패션을 사랑한 여성이었다. 이영희 디자이너의 데뷔 나이가 마흔 살이었다는 건 그녀의 이력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마흔 살이 넘어서 새롭게 인생의 문을 연 여성들은 또 누가 있을까.

바람의 옷, 이영희 한복디자이너

 

바람의 옷, 색의 마술사, 한류패션 전도사 등 화려한 수식어로 불린 故 이영희 한복디자이너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선보이며 한국 패션의 세계화에 앞장선 여인이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고 졸업 후 결혼을 하며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 1976년 마흔이 되던 해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이영희 한국의상’이라는 한복 가게를 열며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이 또한 아이의 학비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한복 가게를 찾는 이들은 점차 늘어났다. 그녀는 정식으로 의상 디자인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밤에는 스케치 연습을 하고 낮에는 한복 짓는 생활을 하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이후 한국복식연구가이자 민속학자 석주선 선생과 인연이 닿아 전통 한복 탐구를 하며 염색 공부를 위해 47세에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공부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녀는 1980년 10월 한국의상협회 창립 기념 한복 패션쇼에 참가했고 1981년 1월에는 신라호텔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93년에는 한국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 참가해 저고리 없는 한복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 옷은 ‘국적 없는 옷’이라는 비난과 함께 ‘옷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르몽드지의 패션 전문기자는 그녀가 디자인한 한복을 보고 ‘바람의 옷’이라는 별칭을 붙였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바람의 옷을 짓는 디자이너’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기모노로 인식돼 왔던 한복이 ‘Hanbok’이라는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하는데도 그녀의 공이 컸다. 실제 패션쇼 당시 한복을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라고 부르는 현지 기자들에게 이영희 디자이너는 일일이 ‘Hanbok’의 철자를 직접 써주면서 한복에 대해 알렸다. 그녀는 한복의 세계화 문을 연 1세대 디자이너였다.

이후에도 일본 NHK홀에서 7000명을 초청해 한복 패션쇼를 여는 등 세계 각국에서 한복 패션쇼를 진행하며 한국 옷의 세계화를 리드했다. 200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패션 공연, 2004년 뉴욕 이영희 한복 박물관 개관, 2007년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역사박물관 한복 전시, 2008년 구글 캠페인 세계 60 아티스트 선정, 2010년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 쇼에 오르는 등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올해 2월에는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한복 의상을 디자인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죽기 1시간 전까지 패션쇼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온 그녀는 최근 남북 화해 기조를 바탕으로 평양 패션쇼를 구상할 정도로 열정이 식을 줄 몰랐다. 실제 지난 2010년 6월 평양에서 국내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민속의상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병세가 악화됐다는 그녀의 별세 소식에 네티즌들은 “아름다운 한복들 감사했다”는 인사말을 남겼다.

“한복 안에는 우주도 디자인할 힘이 있다”고 말해온 이영희 한복디자이너는 한없이 변화할 수 있지만 언제든 평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옷, 자연의 섭리와 철학을 갖고 있는 옷으로 한복을 정의했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한복에 유난히 회색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고인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한 색이기도 했다.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리고 깊고 깊은 색”이기 때문이란 것. 그녀가 닮고 싶어 한 것 이상으로 이미 그녀는 그 색과 깊고 깊게 닮아버린 듯하다.

 

경험의 관찰자, 박완서 소설가

ⓒ유동영
ⓒ유동영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故 박완서 작가. 그녀는 마흔에 등단한 소설가로 유명하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 작가는 1944년 숙명고등여학교에 입학해 여중 5학년 때 담임이던 박노갑 소설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1950년에는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한국전쟁으로 한 달 만에 중퇴하고 1953년 결혼 후 슬하에 4남 1녀를 두며 20여 년간 육아와 살림에 전념한다.

그러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나목』은 그녀가 막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펜을 들어서 완성한 작품으로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던 스무 살 여성의 시선으로 1.4 후퇴 후 암담하고 불안한 시기 텅 빈 서울에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와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 등을 담아낸 장편소설이다. 이는 박완서 작가 본인이 스무 살 무렵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며 만난 故 박수근 화백을 떠올리며 쓴 소설이기도 하다.

그녀는 40년여 년 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외에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6.25전쟁, 분단문제, 물질중심주의와 여성억압 등의 사회문제를 환기시키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작품화했다. 특히 한국전쟁은 그녀의 의식을 심화시키고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전쟁은 작가 개인에게도 혹독한 시련이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오빠와 숙부를 잃었기 때문이다.

죽음과 상실은 그녀의 삶에 늘 밀착해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오빠와 숙부를 잃은데 이어 마흔이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인 1988년에는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다. 이후 그녀는 신앙생활을 하며 아픔을 슬픔으로 남겨두지 않고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언제나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작품을 집필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세모』, 『부처님 근처』, 『카메라와 워커』, 『엄마의 말뚝』등이 있으며 『엄마의 말뚝』으로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에는 여성억압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살아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등의 장편소설이 대표적이다.

1988년 이후에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너무도 쓸쓸한 당신』등 자전적 소설을 집필했다. 노년에 이르러 박완서 작가의 통찰은 더욱 예리해졌고 필력은 더욱 편안해졌다.

2011년 1월 지병인 담낭암 투병 중 80세의 나이로 별세한 박완서 작가의 삶을 돌아보면 그녀가 언제나 삶의 중심에서 삶을 정면한 경험자이자 관찰자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근현대사의 아픔과 가족사의 아픔도 관찰자의 시선에서 생동감 넘치고 예리하게 써낸 작가는 중년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일상을 소설화하는 데도 능했다. 유려한 문체, 인간관계에 대한 특유의 섬세한 시선, 현실을 생생하고도 안정감 있게 담는 필력으로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편안하게 잘 읽히는 소설로도 손꼽히곤 한다. 관찰과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의 구조는 사실감을 더한다.

박완서 작가는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말했다. “시간은 빨리 흐른다. 특히 행복한 시간은 아무도 붙잡을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즐거운 공상가, 마리아 칼만

마리아 칼만 작가 홈페이지
마리아 칼만 작가 홈페이지

마리아 칼만(Maira Kalman)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화가,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1949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지금은 뉴욕 맨해튼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마리아 칼만은 <뉴요커>의 대표 표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삽화 작가로 2년간 <뉴욕 타임스>에 일러스트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녀는 2003년부터 줄리 사울 갤러리에서 8차례 전시회를 가졌고 2011년 뉴욕 유태인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마티스, 피카소, 샤갈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칼만의 작품은 장난스럽고 소박하며 서사를 갖추고 있다. 그녀의 텍스타일에는 노래하는 새, 코끼리, 웨딩부케 등 200개가 넘는 그림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또한 그녀가 추구하는 즉흥적인 즐거움을 연상시킨다.

마리아 칼만은 디자인 작업 외에 일상의 생각을 담은 그림책을 출판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워낙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산문적인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어릴 적 꿈은 ‘외롭지만 괴짜가 아닌 마음씨 좋은 작가’였다. 그녀는 이 꿈을 40세에 첫 그림책을 출간하며 이뤄냈다. 어린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20여 권의 동화책을 써온 그녀의 글은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구성돼 일상을 환기시킨다.

스스로를 ‘공상하며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들을 내놓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마리아 칼만은 만나는 사람, 머문 장소 등 대상과 마주친 후 느끼는 바를 바로 그림과 글로 표현해 작품화한다. 그녀는 모든 곳을 돌아다니고 사소한 것들과 웅장한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일이자 기쁨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그녀의 이야기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실수에도 관대한데 좋은 일은 실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리아 칼만은 그동안 가장 잘한 일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바로 그만둔 것’을 꼽는다. 대신 즉흥적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오고 있는 그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마라”고 말한다. 너무 많이 알게 되면 방해받게 되므로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더 낫다고도 말한다.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것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마리아 칼만. 언제든 무엇을 시작하든 그것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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