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 동양인 모델서 유명 에이전시 CEO로 성공한 써니 채
  • 곽은영 기자
  • 승인 2018.07.0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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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노숙자 구제의 선구자로...“나는 마마써니입니다”

<People&People>

 

미국 최초 동양인 모델서 유명 에이전시 CEO로 성공한 써니 채

이제는 노숙자 구제의 선구자로...“나는 마마써니입니다

 

지난 5월 글로벌원 써니 채 대표가 미국서 한국을 전격 방문했다. 한국시니어스타협회가 주최한 시니어 모델들과의 만남 행사 참석차 방한한 그녀는 자신을 마마써니라고 소개했다. 마마써니는 노숙자들이 부르는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이다. 13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내 최초의 아시안 모델이 된 써니 채는 모델 에이전시 CEO로 대성공을 거두고 최근에는 노숙자 사역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다. 영화 같았던 그녀의 시간을 따라가 봤다.

 

에디터 곽은영 eun-y1007@hanmail.net / 사진 임계훈 inheritz@naver.com

 

 

써니 채 대표가 서울에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로 건너간 것은 1973년 그녀가 13살 되던 해였다. 당시 육군 장성이던 아버지가 알고 지내던 미군 장교의 집으로 그녀를 보내면서 나홀로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한번 생활해 보고 싶던 차여서 싫지 않았다고. 당찬 면이 있어서인지 어린 나이였지만 남의 집 청소와 베이비시터, 타코집 아르바이트, 녹용 판매, 화장품 방문판매 등을 하며 직접 용돈을 벌었다.

 

그러다 11학년 때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도중 손님으로부터 백화점 모델 제안을 받게 된다. 유타에 있던 노스트룸 백화점 본사의 시즌 카탈로그 동양인 모델로 발탁된 것. 이후 유타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지역 지면광고와 텔레비전 광고 모델을 하며 일약 유타주의 스타가 되었다. 당시 백인들만 있던 무대에 아시아인이 서자 한눈에 주목을 받았고 써니 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 내 최초의 아시안 모델로서 그녀는 대형 패션쇼와 유명 컬렉션에 섰다. 서양 모델보다 키는 작았지만 허리가 짧고 팔다리가 긴 신체적인 조건과 단단한 자신감으로 무대에서 센터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스테이지 뒤에서는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다.

 

인종차별에는 답이 없어요. 모델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이 일어났죠. 패션쇼를 나가면 신발이나 속옷을 감추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어요. 어찌나 많이 당했는지. 그럴때면 저는 그래? 너희가 그렇다면 나는 맨발로 나가리라!’라며 맨발로 나가서 제대로 쇼를 보여줬어요. 덕분에 항상 쇼의 첫 자리를 잃지 않았죠. 너희들이 이를 빼 가면 잇몸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각오였어요. 한국인은 순발력이 뛰어나잖아요.”

 

인기 모델에서 유명 에이전시 CEO

 

그녀는 인기와 함께 오는 질투와 위기를 뚝심과 오기로 타파해 나갔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유명 모델에이전시 캐스팅디렉터 어시스턴트 인턴십을 하면서 에이전시 사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익혔다. 모델 양성교육 사업에서 전망을 발견한 그녀는 모델교육 세미나를 시작했다. 1년간 진행한 세미나는 성공적이었고 대학교 졸업 해인 1986년에는 아예 솔트레이크 시티에 써니 채 인터내셔널이란 이름으로 에이전시를 오픈해 본격적으로 모델 에이전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이전시에는 금방 모델들이 모여들었다. 생활매너, 에티켓, 걸음걸이 등 교양수업을 방불케 하는 그녀의 모델수업을 듣기 위해 상류층 자제까지 몰려오면서 에이전시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업이 커지면서 한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시작했다. 1989년 개장을 앞둔 롯데월드에 마술사 및 전문 공연단원을 파견했고, 1996년 마이클 잭슨 첫 내한공연 때는 한국과 미국 대행사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90년대 한국 내에서 활동하던 미국 모델들은 대부분 써니 채 에이전시 출신이었고 90년대 후반 브룩 쉴즈, 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국내 광고 계약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1998년에는 시애틀, 댈러스, 휴스턴, 조지아 등에 잇따라 지사를 열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20019·11 테러로 광고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며 그녀의 사업에도 타격이 왔다. 모든 지사의 문을 닫고 본사를 LA로 이전하면서 사명을 글로벌원으로 변경했다. 토털 매니지먼트 기업인 글로벌원은 현재 LA 다운타운 본사를 중심으로 시애틀, 휴스턴, 조지아 지사를 재오픈 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에이전시에는 10~70대 모델과 배우 5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에이전시 사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녀가 발굴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시킨 사람 중 한 명이 케이트 홈즈다. 14살에 그녀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써니 채는 케이트 홈즈의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오하이오주에만 네 번을 갔다. 결국 설득에 성공했고 케이트 홈즈가 배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원더걸스의 유빈도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써니 채의 수업을 들었다.

 

당시 모델 에이전시는 LA에 있었고 유빈의 집은 샌프란시스코에 있었어요. 차로 이동하면 7시간이 걸리는 거리죠. 그런데 유빈의 부모님이 6개월간 1주일에 한 번 유빈을 데리고 그 거리를 왕복했어요. 2시간의 모델수업을 위해 7시간 동안 이동해 오는 거였어요. 대단한 열성과 노력이었어요. 스타는 혼자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지원으로 만들어져요. 유빈의 경우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게 돼 JYP에 소개해 줬어요.”

 

성공의 열쇠는 나만의 브랜드에 있다

 

써니 채는 모델로서도 CEO로서도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녀는 스스로가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런웨이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델이 런웨이에 섰는데 관중이 모델을 보지 않는다면 그건 모델의 잘못이에요. 시선의 100%를 끌어와야죠. 다 보거나 하나도 보지 말거나예요. 사람들이 무대에 서 있는 나의 브랜드를 보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해요. 자신의 가치를 팔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해요. 누가 당신의 신발과 뺐든 상관하지 말고 나가서 자신의 브랜드를 팔아야 합니다. 팔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예요.”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나갈 때 자신의 브랜드를 알지 못한 채 나간다. 만약 모델이라면 지금 입고 나가는 옷과 디자이너부터 이해해야 한다. 내가 입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해 없이 그저 자기만 나타내려고 하면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이해하고 소화하면 디자이너가 난 저 모델이 너무 마음에 들어, 어쩜 원했던 걸 저렇게 완벽하게 표현해줄까, 감사해, 앞으로도 저 모델과 일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러면서 나를 찾는 디자이너가 계속 생기게 되죠.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가야 해요.”

 

무엇을 하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 써니 채는 그것이 성공의 비밀이라고 했다. 브랜드가 되지 않으면 전체 중의 하나가 될 뿐이다. 오직 하나 뿐인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콘셉트를 잡고 과거를 깨고 자신이 기획한 브랜드에 맞는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한다. 큐 하면 자신의 브랜드가 나올 수 있도록 트레이닝도 필요하다. 써니 채는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마마써니라는 브랜드를 팔 것이라고 말했다. “삶과 연기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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