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Me too’를 외치다
  • 김유진
  • 승인 2018.04.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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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 세상 밖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 배우, 감독, 정치인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도 성추문논란의 가해자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미국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국내 연극계로 번졌다. 뮤지컬 배우 이명행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주장으로 시작된 문화계를 넘어 정치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공공연히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못지않게, 그 동안 피해자들이 숨죽여 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거대한 가해자 집단이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사회적 양심을 깨우는 발전적인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지금이라서 말할 수 있다

 

미투 운동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작은 고백에 지나지 않았다. 2월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한 동생으로부터 모 배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글이 게재됐다. 처음에는 가해자의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음은 물론, 파장도 미미했다. 그런데 모 배우로부터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사람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 배우는 출연 중이던 연극에서 하차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배우 이명행의 이야기다.

 

나도 당했다는 목소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민기, 조재현, 김기덕, 안희정 등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누군가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털어놓으면, 나도 당했다는 증언이 줄줄이 뒤따르고 있다. 전형적인 미투 운동의 패턴이다. 그만큼 숨죽이고 살아왔던 피해자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들에게 왜 이제 와서 지난 일을 꺼내느냐며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지금이라서 말할 수 있다고 항변한다. 과거에는 피해 사실을 털어놓아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너만 참으면 된다며 입막음하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조민기의 제자였다는 한 청주대 졸업생은 페이스북을 통해 “(성추행 당한 후)수차례 주위에 상담을 했지만 그러게 그 자리에는 왜 갔느냐, 왜 가만히 있었느냐 하는 물음과 질책뿐이었다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리에서 뿌리치지 못한 내 탓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나도 당했다는 말만큼 큰 응원이 없었던 셈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 보기 드물어

 

피해자들의 증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이윤택은 성추행 논란에 대해 관행이라며 자신의 과오를 축소시키기도 했다.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행, 관습적으로 생겨난 나쁜 행태라는 것. ‘관행이라는 표현은 연극계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짐작케 하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아직도 숨죽이고 있을지 짐작케 한다.

 

배우 조재현은 출연 중이던 tvN 드라마 크로스하차 의사를 밝히고 지난달 24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JTBC 보도에 따르면 조재현이 기억이 전혀 안 난다. 피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달라며 기자에게 5차례나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연 사과만으로 끝날 일일까. 일부는 성추문 논란으로 말미암아 법적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상당수의 피해자 진술을 확보, 내사에서 정식 수사로 전환해 조민기의 소환 일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남경찰청 역시 이윤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들을 조사 중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지난 8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하는 우선적 의무라 판단했다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소환해 달라.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유명인의 성추문은 무혐의집행유예로 마무리된 경우가 많았지만,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사법부의 처벌 수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보완대책 발표

 

문화계에 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의혹까지 터져 나오면서 공직사회는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이 지난달 27"권력관계를 이용,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성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심각한 범죄"라고 강조한 지 일주일만이다.

 

정부는 지난달 여성가족부·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정책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3월부터 100일간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록·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온라인 비공개 게시판을 만들어 사건 신고를 접수한다. 신고된 사건에 대해선 여가부가 관계기관에 조치를 요청하고, 기관 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는 등 적절한 보호조치를 지원한다. 또한 친고제 폐지 이후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선 피해자가 원할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 또는 고발 조치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공직자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은 경우에만 당연퇴직 처리했지만,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 성폭력처벌법에 명시된 모든 성폭력 범죄로 즉시 퇴출 대상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이외에도 외부 전문가를 성희롱 고충처리 옴부즈맨으로 배치토록 권고하고, 피해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인사불이익 종합신고센터도 만들기로 했다.

 

이밖에 교육부는 부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성희롱·성폭력 근절 TF’를 구성,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을 대상으로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특별조사반을 꾸려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국회에서도 기존 성희롱 관련 법제에 한계가 있다며 단일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미투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과거에도 장자연 등 성폭력을 고발한 사례가 있었지만, 제대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야말로 묻혔다’. 피해자들은 오히려 손가락질 당할까 두려워 입을 다물거나, 수사 과정에서 수치심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월이 지나면서 유명인에게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졌고, 인권 감수성도 향상되면서 미투 운동에 공감할 수 있는 연대의식이 만들어진 것. “나도 당했다고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헌 집이 낡고 더럽다며 내버려둬서는 새 집을 지을 수 없다. 고름을 짜낸 자리에 새 살이 돋는 것처럼,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법적 처벌만이 피해자의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다. 그 후에야 힐링예방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성평등 사회로 이끄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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