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해지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것들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황수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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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해지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것들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는 작품연도가 1620년경으로 17세기 초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이다. 아르테미시아는 로마에서 명성이 높았던 화가 오르치오 젠틸레스키의 딸이다.

 

이 시기에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의 등장으로 긴장된 가톨릭교회에서는 자신들의 종교를 보호하기 위하여 성당의 건축물 내부에 그림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미술품들을 창작하기에 이른다. 성당의 천정화 등의 종교 미술품들이 화려함의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이다. 이 시기를 미술사 적으로는 바로크시대라 부른다. 바로크 미술품에 낭만적 요소를 더한 로코코풍이 파리를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시대사조의 명화들로부터 독립적인 분위기를 지닌 그림에 시선이 고정된다.

남자의 목을 검으로 찌르고 있는 매우 폭력적인 그림속의 두 여자는 화려하고 단정한 의상을 입고 침착한 모습으로 남자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다.

소박함과 우아함을 지닌 여인이 잔혹하며 침착하게 타인의 생명을 앗으려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유디트 모습을 화폭에 담게 된 이 여성화가의 심리적 문제는 최근 미투로 확대 되고 있는 여성혐오, 여성비하와 무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유디트는 베틀리아라는 마을에 사는 아름다운 유대인 미망인으로 이스라엘은 당시 바빌로니아의 왕 네브카드네자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왕은 아시리아 장군인 홀로페르네스를 보내 마을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였으며 아시리아 인들은 너무나 잔인하여 어느 누구도 아시리아 인들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두려움이 못마땅하였던 유디트는 하녀 아브라와 함께 적군의 진지로 숨어들어가 홀로페르네스 장군에게 접근하였다. 장군은 유디트의 아름다움에 흥분하였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검을 들고 그를 덮쳤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와 베틀리아 마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 승전으로 이끌었다.

유디트 이야기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승리이다. 한 사람의 여인으로하여 불가능을 가능게 하는 도전으로 변화시킨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림으로 명성을 얻어내기까지에는 단순한 아버지의 명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르치오는 그 시기 유럽의 일반적인 여성들이 받아야 하는 여성으로서 의무를 시행하기 위한 교육보다 자신의 딸이 지니고 있는 미술에 대한 재능을 먼저 인정하였다. 열 두 살의 아르테미시아는 미술수업을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작업실과 집안에만 있었음에도 아버지가 고용한 조수 타시로부터 평생 지울 수 없는 신체적 가해를 받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현재 우리가 말하고 있는 미투의 사건이 아닌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자산 절도”행위로 다루어졌다.

그 시기 유럽에서 여성들은 낭만적인 로맨스를 삶의 일상으로 누리기 위하여서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재능전부를 포기하여야 하는 것이 사회적 제도였다.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나 남편에게 자산으로서의 존재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인격체를 위하여서가 아닌 아버지의 명예를 위하여 시빌레라는 고문을 감당하여야 하여야 했던 아르테미시아는 그때 10대 소녀였다. 시빌레는 한쪽 손의 손가락들에 링을 끼우고 그 줄을 바짝 당김으로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현대의 거짓말 탐지기 같은 고문방법이다. 화가로서 손가락의 손상이라는 정신적 고통까지를 동반하는 끔직한 고문이었다.

고문과정에서 법원이 던진 모든 질문에 “이것은 진실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를 주장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고 “이것은 당신이 내게 준 반지고, 이것이 당신의 약속이야”라고 외쳤다. 법정에는 아버지의 조수 타시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타시가 파렴치한임이 증명되는 또 다른 사건과 그녀의 인내심으로 타시는 로마에서 추방을 당하는 판결이 내려졌으나 아르테미시아에게는 “사생활이 좋지 않은 여자”라는 낙인으로 로마를 떠나야만 하였다.

영국작가 애나 제임슨은 1882년 아르테미시아의 걸작을 보았을 때 “그녀가 지닌 천재성이 고약하게도 그릇된 방향으로 어긋났음을 보여주는 끔직한 증거”라고 표현하였다.

용감해지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삶에는 항상 존재한다. 제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르테미시아는 시빌레의 고통 외에도 처녀성을 능욕 당했음을 확인하는 두 차례의 산파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치욕스런 고통을 감내하였으나 이 사건은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그녀의 화폭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폭에서 보여 지는 것은 화가가 지니고 있는 내면의 분노이다. 가야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의 길에서 그녀가 선택 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하여 선택된 어느 순간이 죽어도 잊지 못할 분노가 되어 그녀의 생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폭력까지도 예술에서는 낭만적인 사랑과 열정만큼 미화가 될 수 있는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지켜야 하는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눈으로 보여 지는 불편함이다. 외면하고 싶어지는 끔찍함이 아닌 화폭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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