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그려내려면? 우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 임계훈사진작가
  • 승인 2018.04.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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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심리학

참을 그려내려면? 우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임계훈 사진작가 겸 편집위원/ inheritz@naver.com

잘 아시겠지만 사진(寫眞)이란 한자어를 풀어보면 참(眞)을 베낀다(寫)는 뜻이고 사진의 영어식 표현인 photograph는 빛의 그림이라고 풀어지며 그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온 포토와 그라피의 합성어다.

저 뜻을 그대로 종합하자면 우리 눈에 보이는 참(眞)을 빛으로 그려 내는 게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로서 필자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피사체에 대한 본인의 느낌과 마음까지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피사체가 지닌 참 본질과 맥락까지를 그려 내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것이 사진을 찍으면 찍을 수 록 피사체를 내가 본 그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들자면 우선은 렌즈나 카메라는 사람의 눈보다 훨씬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자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3차원 세계인데 사진은 2차원세계라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2차원의 사진으로 3차원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러나 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피사체의 본질, 어려운 문제다. 4차원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에 빈센트 반 고흐의 <빈 의자>라는 작품의 거래가격이 무려 수백억이라는 뉴스에 놀라 읽었던 평론가의 평이 기억난다. 의자의 본질을 그려낸 작품이다,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라는....

 

그때 필자의 마음을 강타한 것은 그림의 가격보다는 의자의 본질이라는 표현이었다. 의자의 본질을 그려 내었다니 의자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마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무튼 그 후 사진을 찍는 필자의 뇌리에는 피사체의 본질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고 사진가로서의 목표도 첫째 피사체의 본질을 본다. 둘째 그 본질을 그려 내는 것이 되었다.

우선 있는 그대로 보라

필자가 그것을 이루었는지 못 이루었는지를 논하기엔 아직 멀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목표를 갖고 사진을 찍는 자세와 태도 아닐까싶다. 피사체의 본질을 보고자하는 필자의 첫 번째 자세와 태도는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뺀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찍을 때 대상에 따라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을 최대한 배제하여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필자에게는 그 연습이 사진 찍기였던 것이다. 연습하려고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다보니 알게 된 것이다. 그 다음엔 실생활에서 적용이 필요하다.

필자가 즐겨 찍는 피사체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인터뷰사진을 많이 찍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원래부터 인물사진을 찍기를 아주 좋아했다. 어느 정도 좋아하냐면 인물사진을 찍다보면 어느덧 나도 모르게 행복을 느낄 정도다. 그렇다고 아무나 찍을 때 그런 것은 아니다. 전제조건이 있다. 피사체와 마음이 통하여야 한다. 즉 마음의 교류가 있을 때 비로소 집중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무아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거꾸로 마음의 교류가 없을 땐 내 마음과 사진을 찍는 행위는 따로 논다. 억지로 사진을 찍을 때, 마음의 끌림 없이 찍을 때가 그렇다. 그런 사진은 그저 밋밋하다. 생동감이 없다.

마음의 교류는 어떻게 갖는가? 이것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짧은 시간에 그런 교류를 느끼는 관계가 되기는 쉽지 않다. 초면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찍기 전에 말을 시킨다. 짧게나마 대화를 트게 되면 금방 통할 수 있다. 말을 시킨다는 것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럴 때 상대방도 경계심을 금방 허물고 마음을 연다. 필자는 그런 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니 여기에 시비를 걸지는 마라. 말을 시킬 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없어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법이다.

현상이 아닌 맥락을 보라

이 아이는 어떤마음으로 앉아 있을까?
이 아이는 어떤마음으로 앉아 있을까?

 

피사체의 본질을 보려는 두 번째 자세와 태도는 피사체 그 자체만이 아니라 피사체가 속해 있는 공간과 상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가를 본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현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상황 속에 흐르는 스토리를 읽는다는 것이다. 양의학과 한의학이 다른 점을 보면 대개 양의학은 증상의 완화를 진료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그 증상을 일으킨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각각 장단점이 있겠지만 맥락을 본다는 점에선 한의학이 더 마음에 든다. 한의학에서 우리의 인체는 소우주이며 오장육부가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때로는 스토리를 가진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글자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고흐의 빈 의자도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스토리를 보는 것도 나를 빼야 보인다. 있는 그대로를 봐야 작가의 의도와 표현이 보인다.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의 스펙트럼이 있다.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 관점으로만 본다. 진실이 왜곡되는 것이다.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썬 글라스를 벗어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자기가 썬 글라스 낀 것조차 모른다.

한마디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내가 눈 뜬 장님인 줄도 모른다.

사진을 찍을 때 고려할 몇 가지 요소

사진을 있는 그대로 찍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초점과 노출 맞추기다. 요즘 카메라는 자동으로 초점과 노출을 맞춰준다. 그러나 그렇게 맞춰진 초점과 노출은 천편일률적이기 쉽다. 즉 개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일수록 자동보다는 수동으로 조정하는 것을 선호한다. 좋은 사진은 빛과 그림자가 잘 어우러진 사진이다. 밝기만하거나 어둡기만 한 사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 자동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이것을 조명대조법(chiaroscuro)라고 하는데 바로크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와 바로크시대를 연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3-1610)가 이 기법을 많이 사용한 대표적인 화가다. 빛과 어둠이 잘 어우러져야 살아있고 입체감이 있는 사진이 된다. 이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에 white balance 라는 것이 있다. 사진을 찍는 환경에 따라 색을 맞춰 주는 것인데 이것도 자동으로 놓고 찍으면 별 무리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나 색에 민감한 분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색을 맞춘다. 이것을 시도하다보면 우리의 눈이 얼마나 색에 둔감한지 알 수 있다. 내가 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형광등 아래에서의 흰색과 야외에서의 흰색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둘을 놓고 비교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같은 흰색이라고 인식한다. 우리들의 착각과 오해가 어찌 이 것 뿐이랴.

사진의 또 다른 가능성, 포토 테라피 (Photo Teraphy)

때로는 어떠한 선입견도 없는, 마음이 실린 사진은 찍힌 인물의 깊은 감성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기도 모르는 아름다움이 그 사진에 실려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자기를 미워하던 그 녀는 상처에서 회복되고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다. 아니면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일생의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우울한 중년이 된 ‘아줌마’가 자신의 사진에서 잊어버린 여성성을 회복하기도 한다. 사진에 찍히는 것만으로도 우는 분이 있었다. 필자가 놀라 물어보니 이토록 누군가가 자기만을 집중해 준 적이 처음이어 그랬단다. 그 외에도 얼마든지 사진으로 치유된 사례는 많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포토 테라피는 사진심리학의 한 분야다. 그만큼 사진은 인간의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아카데미

사진을 찍으며 깨달은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우선은 어떤 선입견이나 판단없이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선 나를 내려놓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노출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리고 그것을 넘어 현장의 맥락까지 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해보는 게 중요하다.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자세와 태도를 사진 찍을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 적용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달라 질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하고 분석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면 현상의 이면과 맥락까지 볼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 빛 뿐 아니리 그림자까지도 받아들이자. 빛과 그림자는 함께 있을 때 멋지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라 둘 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함께 하는 이들에게 판단과 비판이 아닌 용납과 인정을 선사할 것이며 더나가 그런 사진은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을 선물로 준다.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 여성시대가 앞장서서 그러한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그러기위해 여성시대가 곧 첫 발을 내디딜 아카데미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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