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병상'의 통쾌한 역주행 인생!
  • 김남주 기자
  • 승인 2018.01.0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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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오직 노래로 승부한다
“내 삶의 뿌리는 노래에 있어”

가수 한병상
가수 한병상

 

1981년 제2회 강변가요제 본상을 수상했던 장래가 촉망했던 가수 한병상. 초등학교 때부터 그의 음악·미술·체육 성적은 늘 ‘수’였다. 서울중앙중학교 때는 육상으로 전국구를 휩쓸고, 1977년 KBS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군대 제대 후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미술 분야에서 일했던 그는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로 가수의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모진 인생살이 속에서 음악인생을 포기하고 대리운전기사로 생활한지 7년 째. 기막힌 인연으로 재기할 기회를 만난 그는 남은 인생을 오직 노래하며 살겠노라 말한다. 인생 후반부에 당당히 맞서는 가수 한병상을 만났다.

 

송파구 가락동의 문정로데오 사거리에 있는 라이브카페 ‘발리’에서 한병상 씨를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50대 후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딱 벌어진 어깨와 훤칠한 키가 모델 같았다. 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굵은 목소리는 ‘강변가요제’ 수상자 출신답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가수 한병상은 1981년 제2회 강변가요제 본상 수상자다. 당시 강변가요제는 지금의 ‘슈퍼스타K’처럼 가수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영트리오의 리더로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본상을 수상한 그의 노래 ‘사랑의 뿌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받았지만, 정작 가수로서의 그의 인생은 평단하지 않았다.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 숨길 수 없어

체육·미술·음악에서 두각 나타냈던 10대와 20대 시절

 

한병상 씨의 예술가적 기질은 타고 났다. 3남 1녀의 막내로 자란 그의 형제들 모두 노래라면 빠지지 않았고 외모도 출중했다. 특히 둘째 형은 그 유명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주연이었던 알랭 드롱을 닮았고, 누나도 노래를 잘해서 각종 노래자랑을 휩쓸었다고. 한 씨는 중학교 때 3년 연속 서울시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 전국구를 휩쓸며 각종 상을 수상했다. 당시 넓이뛰기, 높이뛰기, 400계주 3관왕을 차지했고, 중2때는 중등부에서 넓이뛰기 신기록인 5m83cm를 세웠다고 하니 10대 때 체육에서 두각을 톡톡히 드러낸 셈이다.

학창시절 내내 음악·미술·체육에서 올수를 맞던 그는 20대에도 예체능 분야의 끼를 숨기지 못했다. 제대 후 우연한 기회로 종교미술연구소와 한국스테인드글라스에서 제작실장으로 일하며 미술적 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뿌리는 음악에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한 씨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고 그는 퇴근 후 청량리에 있는 청량리무아라는 라이브 레스토랑에서 노래했다. 청량리무아라는 음악감상실이자 라이브레스토랑이었다. 1981년도 MBC FM부장이자 ‘밤을 잊은 그대에게’ 인기 DJ였던 박원웅 씨가 운영하던 곳으로, 당시 음악인들의 아지트이자 가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곳이었다. 회식자리에서 노래를 하면 늘 가수 한 번 해보라는 말을 들은 그에게 청량리무아에서 콘테스트가 열린다는 소식은 절호의 기회였다. “다들 그렇게 잘한다고 끼가 있다고 하니 ‘나도 콘테스트에 한번 나가 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36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좋은 역주행 곡 ‘사랑의 뿌리’

'사랑의 뿌리'를 함께 부른 '영트리오'
'사랑의 뿌리'를 함께 부른 '영트리오'

 

청량리무아의 콘테스트에 나간 한 씨는 연속 1등을 차지하면서 스테이지를 하나 갖게 되었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노래하게 된다. 청량리무아에서의 공연은 특별한 기회였다. 경영자인 박원웅 씨의 눈에 들면 MBC FM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박원웅 씨가 남녀 가수 1명씩 뽑아 서라벌레코드사에서 단독 음반을 내주겠다고 한 것. 그 1명의 남자 가수로 한 씨가 뽑혔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 잡을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 씨는 강변가요제 1회 대상을 차지한 홍삼트리오의 홍우섭 씨에게 받은 곡 ‘사랑의 뿌리’로 앨범을 내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했다. 1달 정도 연습한 상태에서 박원웅 씨는 한 씨에게 강변가요제에 출전하라는 제안을 했고 한 씨는 ‘영트리오’라는 그룹을 만들어 제2회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본상을 받았다. 당시 사회를 보았던 탤런트 임예진 씨가 사적으로 말하기를, 원래 금상감이었는데 음악성이 너무 뛰어나서 떨어트린 것 같다고 전할 정도로 당시 실력이 출중했던 한 씨.

 

가수 임재범의 원초적 사부

서로 힘든 시기에 음악적 영향력 많이 주고받아

가수 임재범과 함께 한 한병상
가수 임재범과 함께 한 한병상

 

사실 한 씨는 가수 임재범의 막내 외삼촌이다. 가수 임재범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한 씨를 친형처럼 따랐고, 한 씨도 친동생처럼 가수 임재범을 아꼈다고. 당시 22살이었던 한 씨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면 옆에는 늘 임재범이 있었다. 한 씨는 임재범의 음악에 있어 원초적 사부였던 셈. 음악적 영향력을 많이 주고받은 친구이자 사부였다.

가수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가난했던 한 씨에게 가수로서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노래 밖에 몰랐던 젊은 한 씨는 좋은 곡을 받아서 인기를 얻으면 부와 명예가 따라온다는 것을 잘 몰랐다. 타고난 재능으로 그에게 수많은 기회가 왔지만 음악만 좇느라 기회들을 놓쳐버렸다고.

첫 번째 기회는 1979년에 찾아온다. 그는 임재범의 엄마인 누나의 소개로 서울스튜디오 녹음실에 가서 가수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를 녹음하고 있는 길옥윤 작곡가를 만났다. 길 작곡가는 한 씨의 노래실력을 인정하고, 1000만 원을 주면 스타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집을 팔아도 300만 원 밖에 되지 않았던 한 씨는 가난으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 후 한 씨는 또 한 명의 작곡가 박춘석을 만난다. 압구정에 있던 콘티네탈 라이브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했는데, 박춘석 작곡가가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왔다가 한 씨의 노래를 듣고 명함을 주고 간 것. 그렇게 박 작곡가의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그날따라 박 작곡가가가 일본가수의 곡을 섭외하는 일로 바빠 보여, 한 씨는 혹여 업무에 방해가 될까 사무실 한 켠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나왔다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되고 안타깝죠. 그 많은 기회들을 잡지 못하고 다 놓쳤으니 말이에요.” 특히 독집 앨범을 준비할 때는 과로에 알레르기 비염까지 악화돼 밤새 기침을 하고 피까지 넘어오는 등 생과사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한 씨는 어머니와 공주 마곡사에 들어가 요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씨는 제2회 강변가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이후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통기타 가수로 25년간 활동했다. 그러다 직접 7080 LIVE 카페를 차려서 무대에도 서고, 경영도 하면서 9년간 사업을 하다가 불경기로 파산하게 됐다. 파산 후에는 지난해까지 7년 동안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생활했다.

눈보라와 칼바람을 눈물로 이겨내면서 뛰어다닌 시간이 7년째였다. 일이 없는 날은 길모퉁이에 앉아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면서 스스로를 많이 원망했다고. 지난 7년은 돌아보기도 싫을 만큼 모진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 때 내 길은 대리기사가 아니라 노래에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기회가 왔죠”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막힌 인연으로 가수로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 만나

“제 노래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죠”

 

한 씨는 대리운전기사로 생활하다가 현대자동차 대리점 부장 김상섭 씨의 차를 대리운전을 해주게 됐다. 당시 고려대학교 환경대학원 41기 사무국장이었던 김상섭 씨의 추천으로 고려대학교를 다니게 됐다고. 고려대학교 환경대학원 48기로 들어간 한 씨는 학교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 인생의 길이 트였다고 한다.

48기 동기 한천혜 씨도 이곳에서 만났다. 한천혜 씨는 동기이자 친누나 같은 분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라고 소개했다. 또 김홍식 총재님과 김영길 원장도 항상 용기와 희망을 주는 감사한 분들이라고. 한 씨는 주변에 늘 좋은 사람만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1989년 처음 만난 강남사랑의교회 안수집사님이자 작곡가이신 조운파 선생도 늘 좋은 말씀과 기도를 해주며 염려해 주신다고. 4살 때부터 교회에 다닌 한 씨는 1972년 안양제일남부교회를 거쳐 현재의 송파잠실교회를 다니면서 성가대 베이스파트에서 20년 넘게 찬양봉사를 하고 있다. “제가 꾸는 꿈이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50대 후반의 나이에 가수로 재기하려는 제 노력이 대한민국의 수많은 무명 가수분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어요.”

한 씨는 작년부터 대리기사를 접고 현재 라이브카페 발리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며 인생 후반부를 준비하고 있다. 음반 준비도 새롭게 시작했고 ‘사랑의 뿌리’를 다시 편곡해서 새 앨범으로 낼 예정이라고. 그는 현재 노래를 사랑하는 스폰서를 찾고 있고 기획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9년 만에 불러보는 노래라며 수줍게 노래를 시작했지만, 금세 노래에 몰입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그는 천상 가수다. 남은 인생을 오직 노래로 승부하겠다는 그의 인생이 통쾌하게 역주행하기를 기대한다.

 

면목동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는 한병상
면목동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는 한병상

한병상 가수

현 KBS코메디협회자문위원

현 라이브카페 ‘발리’ 라이브 활동

(라이브카페 ‘발리’

: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108-8 문정로데오 사거리 2층)

 

주요 수상경력

·제2회 강변가요제 입상(1981)

·KBS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1977)

·i-Net TV 열전가수왕 으뜸상 수상(1990)

·송파구 구민노래자랑 대상(2001)

·Young Trio 리더(노래 ‘사랑의 뿌리’)

 

주요 학력

·고려대학교 환경대학원 48기(2018.1.졸업)

 

·연락처 : 010-7767-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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