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YOLO)의 해가 저물고 소확행의 해가 온다
  • 박진아 기자
  • 승인 2018.01.0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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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당신이 꿈꾸는 행복은?

새해를 맞아 빌어보는 소원에는 ‘행복’이 빠지지 않는다. 식상하고 진부하다 해도 행복은 모두의 바람이다. 다만 각자 정의하는 행복의 모습이 다를 뿐. 지난해 행복의 키워드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였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면서 행복을 찾자는 움직임은 냉혹하고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 파급력이 컸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18년을 주도할 트렌드 중 하나로 ‘소확행’을 꼽았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의미다. 주관적인 행복조차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용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덴마크의 ‘휘게’나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이 추구하는 행복의 이미지는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2018년, 당신이 꿈꾸는 행복은 어디에 가까운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기분, 소확행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청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의 한 대목이다. ‘소확행’(小確幸)이라는 표현은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묘사하며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소확행이라고 적은 데서 유래했다.

사실 이 에세이가 발간된 것은 1990년대다.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정작 반향을 일으킨 것은 2010년 이후 경제 불황을 겪던 대만에서였다. 당시 대중가요, 책, 영화, 광고 등에 등장하며 중국까지 전파됐고 중국 고도성장기 이후를 살아가는 세대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2018년 대한민국에 안착했다.

지난 한 해, 우리 삶을 채워온 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 등등. 빡빡해진 살림살이와 취업난, 빈부격차의 심화, 정치적 이슈 등 불투명한 미래 앞에 작고 평범함 속에서 자주 행복감을 느끼자는 소확행이 반가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소확행은 미래보다 지금에 집중하고,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에 주목하며, 행복의 강도가 아닌 빈도를 중시한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즐거움 보다 편의점에서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와 맥주를 사서 편안한 공간에서 만끽할 때의 설렘과 재미를 느껴보자. 평범한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소소한 기쁨이 모이면 행복한 한 해가 완성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덴마크의 휘게

 

덴마크 행복연구소장 마이크 비킹이 저서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에서 정의한 휘게는 다음과 같다.

 

“휘게는 간소한 것 그리고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와 더 가깝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잠옷을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

여름휴가 기간에 친구나 가족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것 등이 모두 휘게다.”

 

우리나라는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세계행복지수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덴마크가 행복비결로 꼽는 것이 바로 ‘휘게’다. 덴마크어로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한다.

마이크 비킹의 저서 발간 이후 BBC를 비롯한 언론이 ‘휘게’를 소개하면서 그 열풍이 전 세계로 번졌다. 콜린스 영어 사전은 2016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인 ‘브렉시트(Brexit)’ 다음으로 ‘휘게’를 꼽기도 했을 정도다.

휘게는 덴마크인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오직 휘게만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가 있을 정도다. 휘게가 들어간 용어도 다양하다. '율레휘게'(Julehygge)는 ‘크리스마스에서 오는 행복’을 뜻한다. 휘게크로그는 책 한 권, 차 한 잔 들고 쿠션과 담요 속에 푹 파묻히기 좋은 공간을 뜻한다.

휘게는 가족과 친구들과 단란하게 모여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소박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물론 가족, 친구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을 균형 있게 배분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스웨덴의 라곰

 

“라곰한 삶은 어떤 상황도 받아들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갖추는 것이다.

균형 잡힌 삶, 규칙적인 생활, 실현 가능한 계획,

나를 아끼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

삶의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라곰의 핵심이다.”

 

<라곰,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의 저자 롤라 오케르스트룀은 ‘라곰’을 위와 같이 설명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상에서 “음식이 라곰으로 간이 되었네”, “밖이 딱 라곰하게 따뜻해”, “내 아파트는 라곰이야” 등 자신에게 딱 맞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설명할 때 형용사나 부사처럼 라곰을 사용한다.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딱 알맞은 양, 적당히, 충분히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만족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사람들은 각각 느끼는 최선의 상태를 추구하며 서로의 필요와 욕망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을 배우게 된다.

라게이트 옴(laget om)의 줄임말로 바이킹 문화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뿔로 만든 잔에 벌꿀술을 채워서 돌려가면서 마셨다고 하는데 공평하게 나눠서 마신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라곰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 즉 ‘라고머’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생각하고 환경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딱 맞는 정도면 되기 때문에 과한 장식이나 낭비를 하지 않는다. 재활용품은 분리를 철저히 하고 창가엔 허브를 키우며, 물을 아끼기 위해 목욕 대신 샤워를 하는 삶을 산다.

이케아는 ‘Live Lagom’ 프로젝트로 라곰 트렌드를 선도한 바 있다. 영국 브리스틀에선 ‘라곰’을 제호로 내세운 잡지가 발간됐다. 국내에서 라곰의 의미를 담은 뷰티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등도 생겨나고 있다.

 

커피 한 잔의 여유, 프랑스의 오캄

 

프랑스인의 생활 방식인 오캄(Au calme) 역시 단어 자체로 ‘고요한’, ‘한적한’을 뜻한다. 그러나 단순히 외부의 소음과 복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고요함과 한적함을 의미한다. 프랑스 인들은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시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런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오캄이라 할 수 있다.

한 사전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심신이 평온한 상태라고 정의되기도 했다. 현실을 즐기자는 욜로도 오캄 라이프 앞에서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을 즐겨야 한다는 압박에서마저 벗어나 스스로 평온한 정신 상태만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장소나 시간도 중요하지 않다. 업무 중에 일이 잘 진행되지 않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잠시 옥상에 올라가 가지는 혼자만의 시간도 오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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